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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동료는

누구일까?

글. 김창규(직장인, 작가)

작가소개 김창규 입사 22년 차 직장인이다.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의 애환을 SBS 뉴스 ‘인잇’에 연재 중이다.

답답한 사무실에 있다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티션으로 구분되어 있는 팀들 사이로 만들어진 복도를 따라 나가다가 우연히 화가 잔뜩 난 것 같은 신입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황급히 표정을 누그러트리며 눈길을 돌렸지만 난 그의 벌게진 얼굴을 보고 단박에 팀장이나 선배에게 얼빠지게 혼이 난 것임을 직감했다.

밖에 나왔다. 이제 봄이 다가오는 3월이라 그런지 밖의 날씨는 온화했고 시원한 바람에서 상쾌함이 느껴졌다. 이때 아까 열 받은 신입직원이 떠오르면서 과거 내가 신입사원 때 팀장과 동료들 때문에 힘들어 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튀어 나왔다.

나는 입사하자마자 인사팀으로 발령을 받았었다.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일꾼이 될 것을 자신하며 첫발을 내딛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반갑게 맞이할 줄 알았던 팀장과 직장 선배들은 환영한다는 의례적인 말을 건넨 후에는 나를 그냥 방치했다. 할 일 없이 며칠 무위도식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과장이 나를 부르더니 자료 정리 도와달라며 숫자가 잔뜩 들어 있는 엑셀파일을 주면서 이렇게 저렇게 자료를 취합하여 뭔가를 만들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고, 난 그 엑셀작업을 할 줄을 몰랐다. 그 과장은 난처해하는 나를 한심한 눈초리로 보더니 그냥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이후에도 동료들은 업무를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면서 모르면 면박을 주거나 답답하다는 티를 대놓고 해대니 난 그만 팀에서 고문관이 된 것만 같았다. 당시 팀장도 나를 바보로 만드는데 한 몫 했다. 내 잘못을 어찌나 잘 지적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던지…. 그렇게 억울함, 자괴감 및 분노가 분수처럼 솟구칠 때 나도 아까 그 직원처럼 얼굴이 벌게지면서 씩씩댔었다.
그 후로 20년이 넘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제는 당시의 일을 잊을만도 한데 난 아직도 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지난 일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왜 그때 동료들은 나한테 못되게 굴었을까? 인간적으로 나빠서? 그렇다. 그 사람들은 지금 생각해 봐도 좋은 성품의 동료들은 절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난 그 후로 전근 간 다른 곳에서 만난 동료들과는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나름 즐거운 직장생활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맨 처음 만난 인사팀의 동료들은 분명히 나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이 물음에 답을 하기 전,
“회사에서의 동료란 뭘까?”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동료란 같은 직장이나 같은 부문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친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함께 일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벗의 개념이 들어가 있는 친구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좋은 동료는 누구일까?
나를 배려해 주고 친절하게 대하는 동료가 좋은 동료일까, 아니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동료가 좋은 동료일까?
후자이다. 사실이 이렇다면 나를 못살게 했던 그들은 진실로 나쁜 동료가 아니었다. 당시 정신없이 바쁜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내가 오히려 나쁜 동료였던 것이다. 이후 인사팀에서의 혹독한 경험으로 업무에 정통해진 나는 이후 어느 팀으로 가던 대접을 받았다. 왜? 그들은 성격이 좋아서? 아니다. ‘돌아이’ 보존법칙이 있듯이 어느 조직이나 못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내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내가 어느덧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란 물론 일만 잘하는 사람만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간성이 좋은 것도, 팀의 사기를 북돋을 줄 아는 것도,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것도,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도 그것이 뭐든지 함께 일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면 된다. 잠깐 휴식에서 깨달은 이 이치, 즉 “좋은 동료는 도움을 주는 사람”임을 누구에게나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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