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브랜드ESG그룹 박해철 과장
최근 입사지원 이력서 속 자기소개 트렌드는 가족이나 제3자에 기대어 나를 표현하기보다, ‘나’ 자신이 함양한 능력에 대해 확실하게 나타내는 것이 추세라고 한다.
개인적인 역량을 중심으로, 확장된 의미에서의 사회 생활 적응능력을 평가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득 한창
‘글짓기’에 매진했던 구직 시절이 떠오른다. 방법론적인 차이는 있지만 그 때에도 결국 ‘나’를 얼마나 잘 소개하는 문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가장 고민했던 것 같다. 표현을 참고하고자 선배들의 지원서 샘플을 뒤적이다 보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게 된 표현이 종종 보였던 기억이 난다. 작성자에 따라 다소 내용이 디자인되기는 했지만 ‘훌륭하고 근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부족함 없이 화목하게 큰 ‘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정형화된 틀 속의 문구지만 내재적으로는 현재의 나를 성장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이란 존재에 대한 부각,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물’로서의 나 자신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결론적으로 ‘가족’을 나타낸 것이다. ‘나’라는 인물이 가족으로부터 받은 영향과 이를 통해 ‘회사’에 어떤 이바지를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표현방식이었던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력서로 만난 인생 선배들은 업무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이력서에 가족을 거론했다. 전통적 가치의 가족이 갖는 의미를 회사에 부여하며 나는 올바른 교육을 받아왔으며 이를 통해 회사의 업무 수행의 시스템 규범 안에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음을 피력한 것이다.
‘가족’의 의미는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지만 식도락을 삶의 큰 가치로 여기는 나에게 있어 가족이란, ‘맛있는 음식을 가장 먼저 함께 먹고 싶은 사람들’이다.
전통적 ‘식구(食口)’의 확장형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동료들을 통해 알게 된 맛집은 꼭 기억해놨다가 같이 가고, 유명한 가게에서 오래 줄 서야 구할 수 있는 맛있는 간식은 꼭 같이 먹어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각자의 ‘가족’은 다양하나 본질은 결국 ‘공동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감성적 교류가 결국 가족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전통적 의미의 가족도 그와 다르지 않다. 개인과 사회의 중간에 위치한 체계로 혈연, 인연, 입양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 가운데 친족원의 범위를 한정하는 개념이 가족이라고 했다.
다만, 현대에는 유학이나 취직 등 외부적, 사회적 요인으로 공동생활을 영위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생활하기도 하므로 여기서는 ‘심리적 공동체’ 로 칭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많은 변화 키워드의 핵심에도 ‘가족’이 있다.
비대면 일상이 강화되면서 집에서 이뤄지는 많은 사회생활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나 또한 부서 내에서 교대로 재택근무를 진행하며 새로운 업무적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집과 일의 경계가 다소 모호해지는 단점은 있지만, 중식시간에 집에서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한 후에 오후 업무를 시작하는 삶, 퇴근 시간이 되면 업무PC를 끄며 밥솥에 밥을 얹힐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
퇴근할 배우자를 기다리며 요리를 하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따뜻한 밥 한 술 일찌감치 같이 나눌 수 있는 묘한 공존에 서 있는 삶이다.
본격적인 막바지 봄, 5월은 부쩍 ‘가족’과 관련한 날이 많다.
5월 5일은 자녀를 챙기고, 8일은 부모를, 17일은 성년이 된 이들을 축하해주고, 21일은 부부의 날을 기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대구에 계신 할머니의 생신도 이 시기에 찾아온다. 생각이 난 김에 글을 쓰다 말고 할머니께 영상 통화를 걸어본다. 전화 목소리는 잘 듣지 못하시기에 얼굴을 보여드리려고 영상 통화를 걸었는데, 할머니는 간만에 보는 손자 얼굴을 보셔서 그런지 몹시 신이 나셨다.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는데, 할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으신다.
그저 손자와 손자며느리의 인사가 기쁘실 따름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따뜻한 봄이 가기 전에 얼른 대구에 계신 ‘가족’을 뵈러 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