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브랜드ESG그룹 박해철 과장
결혼 후 한 동네에서만 살다가, 최근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동네가 달라지는 매우 큰 이슈가 있다 보니 이사를 확정짓고 나서도 마음이 다소 싱숭생숭하다. 이삿날이 성큼 다가오자 준비할 것도 많고 바빠지고 있다. 내구성이 떨어진 오래 쓴 가구들은 교체를 해야 하고, 거금을 들여 짜 넣은 붙박이장도 아쉽지만 들고 가기 어렵게 됐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평소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을 하나하나 챙기다 보니 뭔가 재미도 있고 보람도 생기고 있다. “도배할 때 벽지는 무슨 색으로 할까? 가구는 이 브랜드가 좋겠지?”라면서 이런저런 구상을 하며 주말을 꽤 부지런하게 보내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의사결정의 순간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한동안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살아왔던 나에겐 새로운 위기이자 기회가 되고 있다.
최근 모 TV 광고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는 현대인을 비유하여,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춤형으로 상품을 출시하고 홍보하는 것을 보았다. 뭔가 적나라하게 내 생활이 드러났다고 생각이 들었다. 쳇바퀴처럼 일어나 출근하고, 일을 마치면 퇴근해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통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이 TV 광고에 투영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뭔가 굵직한 건들로 나를 바꿀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는 듯 하다.
달리 생각해보면 변화의 이벤트가 꼭 굵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어쩌면 별 차이 없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소소하게 다른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엔 작은 참새 세 마리가 대문 앞 복도 난간에 앉아 있다가 문 여는 소리에 후다닥 날아갔고, 버스와 지하철이 평소와 달리 대기시간 없이 알맞게 도착해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출근했다. 지난주 저녁 달걀을 깨 보니 노른자가 두 개 있는 쌍란이 나왔고, 엊그제는 돼지가 잔뜩 출연하는 엄청 복스러운 꿈을 꾸고 복권을 사 보았는데 5천 원이 당첨됐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곱씹어 보니 조금씩 하루하루는 달랐던 것이다.
어렸을 때 봤던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는 주인공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같은 날 속에서도 꾸준히 스스로를 바꿔나가는 모습이 나온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같은 날이 계속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되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 속에서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낸다. 처음엔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몰랐던 주인공이 꾸준히 반복되는 하루를 이용해서 피아노학원을 매번 다니며 노력을 하더니 영화 말미엔 멋지게 한 곡을 완성해낸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그 모습이 멋있어 보여 박수를 치면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 긍정적인 자극이 될 요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현재 개인적으로도, 또한 행내보 <우리가족>의 입장에서도 변화의 큰 기로 앞에 서 있다. 많은 고민을 거쳐 변화의 한 발자국을 내딛기 전에 그 한걸음이 가져오게 될 긍정적인 변화를 한번 느껴보고자 한다.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내딛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