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사진. 김태환(스튜디오집)
* 원데이클래스는 마스크 착용을 비롯해 개인 위생 관리와 코로나 안전예방수칙을 지키며 진행됐습니다.
열아홉 살에 처음 만나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을 동료이자, 친구로 함께 지냈다. 2015년 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시작한 사회생활.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자기 몫을 해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곁을 지켜준 이는 역시 입행동기들이었다. 같은 서울에 있어도 근무하는 지점이 달라 한자리에 모이기가 어려워 2019년부터는 12월 31일에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모임을 갖고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연수를 받으면서 친해진 네다섯 명의 동기 중에서도 장예진 계장과 박지원 계장의 사이는 특히 각별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언제 어떻게 친해졌는지 구체적인 사건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어느 순간부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어떤 부분이 잘 맞고 잘 맞지 않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둘이 만날 때도 ‘여기 갈까?’ 하면 바로 ‘오케이’ 하고 대답이 나오거든요. 어제도 오늘 어떤 옷을 입고 갈 건지 물어봤는데, 똑같이 검은색 폴라티를 입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이따금 대화할 때도 제가 하고 있던 생각을 종종 먼저 말로 꺼낼 때가 있어서, 신기할 때가 많아요.”
장예진 계장이 박지원 계장과의 인연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금요일 친구’라고 소개한다. 입행 이후 몇 년 동안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함께 시간을 보내온 까닭이다. 중간지점이라 약속장소로 정했던 강남역과 신논현역 일대 곳곳마다 어느덧 둘만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였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소중한 금요일 모임도 최근에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기회가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장예진 계장이 원데이클래스로 그림을 그릴 기회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도 박지원 계장이었다. 2년 전 대학에 입학해 디자인경영을 공부하고 있는 장예진 계장에게 회화는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대학교 학부 과정 초창기에 디자인과 경영, 법학 같은 다양한 분야를 배웠는데, 디자인 관련 수업이 특히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제 전공은 이론에 가까워서 실기 수업을 할 기회는 없어서, 직접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던 장예진 계장이 목소리 가득 기대를 품고 이렇게 말한다. 박지원 계장에게 이번 원데이클래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계기다. 지금은 대학에서 은행 업무와 연관되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고등학교 때는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박지원 계장. 입행 이후에는 한 번도 붓을 들어본 적이 없어 ‘잘 그리고 싶다’라는 마음만큼 ‘잘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예전에 디자인을 공부할 때는 주로 포토샵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주로 활용했거든요. 손 그림은 정말 오랜만에 그려봐요. 개인적으로는 오늘 유화랑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는 아크릴화를 그린다고 해서 더욱더 기대됩니다. 처음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느낌을 생각했는데, 별이 빛나는 밤이 아닌 불타는 밤이 되더라도 용기 있게 제 느낌을 담아보고 싶어요.”
아크릴화는 물감의 풍부한 질감을 표현하기에도, 말끔한 색감을 조합하기에도 좋은 편. 기름을 사용해야 하는 유화와 달리 수채화처럼 물을 섞어 쓸 수 있어 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다양한 시안을 살펴보며 그려보고 싶은 이미지를 머릿속에 다시금 떠올려본다.
작업용 앞치마를 챙겨 입고 본격적으로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는 두 사람. 장예진 계장은 코끼리를, 박지원 계장은 꽃을 그리기로 했다. 거침없이 스케치를 마친 두 사람 앞에 주어진 다음 과제는 색칠이다. 어떤 색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풍기는 느낌도 달라질 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 이때, 두 사람은 다가오는 봄을 상상하며 화사한 색감으로 그림을 채색하기로 했다.
단순히 선에 맞춰 색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만의 감각으로 붓과 스틸 나이프, 물감을 조절해 색을 조합하고 표현해야 한다.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그림 하나를 완성하려면 붓을 잠시도 멈출 수가 없다. 그림에 집중하느라 점점 말수가 적어지는 두 사람. 물감을 조절해가며 그러데이션 효과를 내는 일도, 스틸 나이프로 질감 있게 꽃잎을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 가는 그림을 보고 있으니, 소박한 보람이 밀려든다.
똑같이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음에도, 장예진 계장의 그림은 수채화 같고, 박지원 계장의 그림은 유화 같다. 이렇게 완성한 그림은 두 사람의 6년 우정을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매개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