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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파 폭설과
눈오리

글. 브랜드전략팀 박해철 과장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전화영의 Life & Cool Science’

밤사이 잔뜩 내린 눈 때문에 출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집을 나서는데, 집 앞 놀이터에 이른바 ‘눈오리’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다. 올 겨울 가장 핫한 아이템인 ‘눈오리 집게’로 누군가 작품의 세계를 펼친 모양이다. 작은 오리 눈사람들이 출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인사하고 있었다. 미끌거리는 바닥에서 균형을 잡겠노라며 총총거리고 걷는 사람들이 역으로 오리들 입장에선 꽤 재밌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여유로이 아파트 놀이터를 지키는 그들을 뒤로 한 채, 단단히 무장을 하고 출근길에 나선다. 비록 교통체증이 지하철까지 넘어와 잦은 멈춤과 신호대기를 면치 못했지만, 오리 친구들의 배웅 덕분인지 기운내서 출근을 잘 마칠 수 있었다.
퇴근길, 혹시 아직 그들이 남아있나 싶어 놀이터로 돌아오니 되레 그 수가 늘었다. 이젠 한 눈에 새기 어려울 지경이다. 크기가 좀 다른 걸로 보아 다른 예술가가 작품 활동에 합류한 게 분명하다. 분명 말 못하는 눈오리들인데, 코로나19로 꽁꽁 얼어붙던 놀이터가 모처럼 시끌시끌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구도 없고, 장갑도 없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아쉬운 밤이다. 춥지만 나도 감히 도전해 본다. 오리는 됐고, 2021년을 맞이해서 소를 한 번 만들어보겠노라고 힘껏 눈을 뭉쳐 보았다. 마침 흰 소의 해라고 하니 잘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게진 볼과 장갑 없는 손이 무감각해질 때 쯤 정신을 차려보니 분명 흰 소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흙 묻은 눈덩어리가 하나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수습은 포기한다. 내 미술 실력은 어렸을 때부터 별로였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적당한 타협 끝에 옆에 있는 오리같은 형태로 ‘성형’을 해 준다. 그래도 소라고 만들었던 터라 꽤 덩치도 있고 뿔도 두개나 달려있다. 군압일우(群鴨一牛)를 머리에 그리고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결국 흙 묻은 혼종을 탄생시키고 말았다. 날이 좀 풀리면서 귀여운 오리들도, 내 건장한 흙뿔오리도 녹아 자리를 떠났지만 올 겨울은 작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흰 손님이 종종 찾아오고 있다.
덕분에 일하다가도 창 밖에 눈이 펑펑 내리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작년 이맘때는 겨울에 비가 온다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작년의 ‘덜 추운 겨울’은 올 시즌 등판한 ‘정통파 폭설’로 자연스레 과거의 추억으로 묻혀 간다. 한 해를 잘 여물어 정리하고, 씩씩한 새로움을 시작하는 시점에 서며 올해는 모두의 마음속에 코로나 블루를 이길 수 있는 ‘갬성’ 넘치는 눈사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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