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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하는 자기계발

글. 김진철(한겨레신문 문화부 책지성팀장)

작가소개 김진철 2002년 입사한 한겨레신문사에서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부서를 해마다 옮겨다녔다. 2010년 경제·언론 분야의 책 두 권을 펴냈고, 기자 지망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왔다. 책 읽고 기사 쓰는 지금을 ‘화양연화’로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기계발서’의 유행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되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상시 구조조정 체제와 이에 따른 ‘각자도생’의 장이 열리던 때다. ‘메가히트’를 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김영사, 1994)이 대표적인 자기계발서이다. 이 책은 1994년 국내에 출간되었는데 정작 불티나듯 팔린 것은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였다. 개인이나 조직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7가지 습관의 종류와 실천 방법을 제시한 이 책은 38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 세계에서 1,500만 부 넘게 팔렸다.

그로부터 꽤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성공’과 ‘습관’이라는 키워드는 연일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의 제목을 이루는 중요한 단어다. 긍정, 기술, 용기, 비밀, 아침, 관계 등도 자기계발서의 표지를 장식하는 키워드들이다. 불평등의 확대와 코로나19 팬데믹 등이 위기감을 높이는 터에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이 각자도생의 고민과 불안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투자지침서나 ‘힐링’심리학과 더불어 자기계발서가 많이 출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자기계발은 ‘잠재하는 자기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 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흔히 자기개발과 혼동되기도 한다. 글씨 모양도 발음도 비슷한 탓이다. 자기개발은 ‘본인의 기술이나 능력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啓(계)는 ‘일깨우다’는 뜻이고, 開(개)는 ‘연다’, ‘깨우친다’는 뜻이다. 굳이 둘의 차이를 견주자면, 자기계발은 잠재된 능력을 밖으로 드러낸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는 반면, 자기개발은 이미 갖춘 능력을 더 끌어올린다는 뜻을 강조하는 게 아닐까.

자기계발서는 잠재되어 있을지 모를 능력을 일깨워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자기계발서는 개인이나 조직의 성공 비법을 가르치고 이를 위해 습관이나 시간 활용을 강조한다. 자신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남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기술도 알려준다. 그런데 정작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는 잘 다루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습관이며 시간 활용인지, 나를 관리하고 남과 좋은 관계를 맺어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자기계발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이 성공인지는 자기계발서가 알려주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은 있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 목표가 빠져 있는 셈이다.

자기계발서에 대한 이러한 의문의 실마리는, ‘통섭’의 주창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의 <창의성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20)에서 발견할 수 있다. “창의성의 궁극적 목표는 자기이해”라는 대목에서다. “나를 이해하는 것”이 목표라는 윌슨의 말은 충분히 일반화되어야 한다. 자기이해는 삶의 목표일 것이다.
정신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날의 인류에게 자기이해란 허영이나 망상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삶이 비단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는 생존, 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투쟁의 과정으로만 여겨진다면 한순간 허무에 빠지기 십상 아닐까. 윌슨은 “우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운명이 앞으로의 역사적 궤적을 결정할지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자기이해라고 했다. 자기이해 없는 자기계발이란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계발을 이룬다 해도 방향 없는 공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자기계발을 위한 자기이해가 최종 목표는 아닐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 우리와 세계에 대한 관심과 앎으로 옮겨가는 것이, 그럼으로써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고 더 많은 것을 살펴보고 공감하고 더 나아가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인간의 생의 목표이자 이유일 것이다. 물론 나와 우리, 세계에 대한 이해는 끊임없이 오가는 반복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남을 이해할 수 있고,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또다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터전이 되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플 신화를 일군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을 ‘연결하는 것’(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이라고 정의했다. 아이폰이 출시되기 2년 전이었던 2005년 잡스는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점들을 연결하기’(connecting the dots)라는 개념으로 창의성을 설명했다. 기존에 존재해온 휴대전화기와 MP3 플레이어,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함으로써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은 창의성이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창의성의 바탕이 되는 연결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 나아가 경험과 경험, 세계와 세계의 연결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경험과 시각, 세계관을 지닌 타인과의 만남과 교류, 이해가 창의성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나를 제대로 아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계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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