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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방 정리

글. 삼성로지점 임지현 계장

조용한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엄마가 요즘 내 방 침대가 좋다며 들어와서는 침대에 걸터앉아 방을 휙 둘러보신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시작되는 잔소리! 서랍 속에 꼭꼭 숨겨둔 오래된 잡동사니들을 손수 꺼내 보시며 버리라고 하신다. 오랜만이었던 나만의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왜 들어오셨냐며 툴툴대지만, 불법 점유자를 쫓을 핑계가 없어 일단 시키는 대로 정리를 해본다. 내가 정리하며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계속 방을 둘러보시던 엄마의 한 마디.
“책장에 꽂힌 책 하나하나마다 스토리가 있네! 저 책은 중학교 때 사주었더니 몇 번이고 읽었다고 이야기했었고 이 책은 수험생활할 때 읽었던 책이잖아~”
시간이 지나며 선택의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책장 속 책들의 의미를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계셨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종종 나조차 잊고 있었던 생각과 고민을 기억하고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작년부터 ‘나를 알아가기’는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나와 마주하는 100일 백문백답’ 프로젝트에 참여해 매일 나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갖기도 하고, 책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독립적인 내 모습이 궁금해서 시작했는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엄마와의 관계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엄마와 저녁 산책을 하며 나누는 대화들을 통해 나를 가장 많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시시콜콜한 고민부터 삶의 방향까지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엄마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틈에서 서로를 좀 더 알아간다. 엄마가 기억하는 어린 나의 모습에서 든든한 지지를 얻어오기도 하고, 엄마가 생각해왔던 나의 모습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깨닫기도 한다.
여느 모녀처럼 서로를 가장 힘들게 하다가도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함께 맞추어 나간다. 결국 나라는 존재도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하나씩 정리되어 간다. 엄마는 모든 가구를 하나하나 다 둘러보시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방을 떠나셨다. 엄마가 앉아 계셨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둘러보니 구석구석 엄마의 손길이 안 닿아있는 곳이 없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방이지만 엄마의 흔적들은 계속 남아있겠지. 잘 가꾸어 두었다가 다음번에는 내가 먼저 방문을 열고 초대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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