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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숲에서,
길을 잃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어느새 마음이 부풀고 들뜹니다. 이제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여름의 거대한 숲 한 가운데, 너무 깊어 길을 잃을 것 같은 숲의 한 가운데서 기세등등했던 전염병의 시절에 손을 흔들어 봅니다. 우리는 이제 다음의 계절로 가겠습니다.

글. 이현아 사진. 마리안 블로거(네이버블로그 ‘마리안의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언제부터인가, 수목원이 그리운 순간이 생겼습니다. 사람에 치이고 혼자인 나 자신이 그리워질 때가 그렇습니다. 애초에 수목원이라는 것은 관찰이나 연구의 목적으로 식물을 수집해 재배하는 시설을 이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공간에 어떤 종류의 위로가 존재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격하게 혼자이고 싶어지는 순간 수목원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목원에서 꽃과 나무 사이를 하염없이 걷노라면 아주 긴 시간 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결국 언제라고 길의 끝이 나타나기야 할 테지만 그 시간 동안의 인적 드문 적막을 만나는 경험은 매우 소중하고 희귀합니다. 하염없이 멀어지는 길과, 그 사이에 꽃과 나무들이 살뜰한 친구가 되어주는 공간. 그곳에서 우리는 아주 잠깐이나마 타인의 필요를 덜 느끼며 온전히 혼자가 돼 볼 수 있습니다.

조용해서 더욱 귀가 즐거워지는, 바다향기수목원

안산 대부도의 바다향기수목원은 인적 드문 고요를 더욱 짙게 느낄 수 있는 수목원 중 하나 입니다. 방문자센터를 지나 나타나는 벽천폭포의 시원한 소리는 수목원에 진입했다는 하나의 신호가 됩니다. 50종 이상의 식물이 살아 숨 쉬는 전시온실 옆으로 더위를 싹 걷어갈 정도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는 이 수목원의 규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벽천폭포 맞은편에 자란 보리는 넓은 보리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초여름 물소리와 보리향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이 공간은 많은 방문객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바다향기수목원은 지난 2019년 개원한 신생 수목원 중 하나로 1천여 종이 넘는 식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러 종의 식물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마 어마한 종류의 식물이 각양각색으로 뽐내는 식물의 살아 숨 쉬는 소리와 향이 방문객을 압도합니다. 대중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19 시절에 접어든 바다향기 수목원은 비교적 인적이 드문 수목원에 속하기도 합니다. 혼자 혹은 둘이서 고독한 시간을 즐기기에 적당한 공간인 이곳은 숲에서 길을 잃는 듯한, 현대인은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뜻밖의 경험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10개 이상 축구장 붙여 놓은 것만큼 넓은 부지의 바다 향기수목원을 평일 낮 시간대에 서성이다 보면 드넓은 수목원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말로 수목원에서 길을 잃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방문객들이 길을 잃었나 고개를 갸웃할 때쯤 연꽃으로 가득한 심청연못에 당도합니다. 바다를 짐작케 하는 생태연못 심청연목은 대흥산 계곡물로 조성되었습니다. 봄이면 연못 주변으로 하도 화려한 꽃들이 피어서 보는 이를 감탄케 합니다. 여름에도 연못에 쉼 없이 공명하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부서지는 햇볕이 좀처럼 감탄을 멈출 수 없게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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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자극하는 수많은 경험들과 이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한적함을 매력으로 가진 바다향기수목원은 현재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무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바다향기수목원

• 주소 :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황금로 399
• 전화 : 031-8008-6795

버려진 외딴 섬에서 시작된, 천리포수목원

서울에서 2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되는 태안 천리포수목원은 국내 수목원 중에서도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수목원입니다. 당연히 보유한 수종 역시 그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던 시간만큼의 관록을 자랑합니다. 애초에 버려진 외딴 섬에 심었던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된 이 수목원의 역사에는 한반도에 나무가 가득하기를 바랐던 한 귀화미국인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여전히 인적이 드물고 우거진 나무 그늘이 한껏 고독과 적막을 극대화하는 천리포수목원.
이름만큼이나 큰 숫자의 막연함이 천리포수목원 전체에 은은하게 번져 있습니다. 천리포 수목원의 매력은 역시 최근 생긴 수목원과는 달리 손때 묻은 시설들과 장식되지 않은 자연의 결입니다. 데크가 깔려 있지 않아 흙의 질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샌가 닿는 바다의 모양 또한 화려하지 않고 그대로 자연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천리포수목원에 맞닿은 천리포해변은 모세의 기적이 펼쳐지는 바다와 그 너머의 낭새섬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낭새섬이라는 이름은 낭떠러지에 집을 짓고 살아 ‘낭새’라는 이름이 붙은 ‘바다직박구리’를 이르는 이름입니다.
봄철 목련으로 이름을 날린 천리포수목원의 여름은 수국의 계절이 됩니다. 탐스러운 수국이 한 차례 피었다 지면, 한층 더 짙어지는 녹음과 갓 비가 내린 것처럼 젖은 흙냄새가 천리포수목원을 방문하는 방문객을 사로잡습니다.
분홍색으로 야무지게 피어나는 배롱이꽃이 활짝 필 때쯤이면 천리포수목원의 여름도 절정에 달합니다. 여기저기 앉거나 쉴만한 혼자만의 장소가 꽤 많은 천리포수목원은 혼자만의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입니다. 민병갈 원장이 머물렀다고 알려진 가옥 한쪽의 마루나, 천리포해안을 내다볼 수 있는 해먹도 천리포수목원을 찾는 이들이 변함없이 애정하는 장소입니다. 물론 곱디 고와 여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하는 천리포해안의 모래사장도 빼놓을 수는 없는 지점입니다. 우리은행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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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수목원은 4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7월 17일부터 8월 14일까지는 1시간 늦은 오후 7시까지 수목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성인 9천원, 어린이 5천원의 입장료가 있는 점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천리포수목원

• 주소 : 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1길 187
• 전화 : 041-672-9982

천리포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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