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대한 생각

제대로 먹는다는 것

글. 박준우(푸드칼럼니스트) 그림. 오하이오

‘제대로 먹어라’는 훈수

한때 면스플레인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호불호가 크게 나뉘던 평양냉면이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쓰였는데, 남성이 이성에게 거들먹거리며 설명한다는 뜻을 가진 ‘맨스플레인’에서 파생했다고 한다. 면 요리 중에서 유독 마니아적이었던 음식이었기에, 기존의 ‘평냉’ 애호가들이 새로 유입하는 팬층에 꽤 훈수를 두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종종 들르던 평양냉면 전문점에서 밥을 먹으며 옆에 앉은 20대 중후반의 커플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여성은 가게의 차림표를 훑어보려는 눈치였으나, 남성은 그에게 다른 건 읽어 볼 필요도 없다며 물냉면 두 그릇을 주문했다. 여자는 물냉면보다는 비빔냉면을 더 좋아한다고 했지만 남자는 물냉이 진짜라며 비냉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종업원에게 물을 달라던 여자친구에게 남자친구는 평양냉면집에 들어온 이상 목마름은 물냉면 육수의 첫 모금으로 달래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여성은 못마땅한 얼굴을 하였지만, 남성의 말대로 물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냉면을 기다렸다. 그날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보기가 영 불편하여 조금 남은 국수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평양냉면의 폭발적인 유행이 안정세로 접어들며 그런 과격한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은 많이 사라진듯하지만, 식당에서 ‘제대로 먹는’ 방법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이들을 목격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음식

물론 모든 음식에는 그것을 먹는 방법이 있다. 흔히 스테이크는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썰어 먹는다. 짜장면은 볶은 양념과 면을 잘 비벼 젓가락을 이용해 입에 넣는다. 하지만 먹는 사람이 조금 덜 뜨겁거나 덜 차가운 상태로 즐기겠다거나, 색다른 조미료를 첨가하여 조금 다른 방법으로 먹겠다면 그것을 굳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교정해야 할 필요는 없다. 같은 음식이라도 그것을 먹는 사람의 취향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돈가스와 탕수육의 소스를 튀김 위에 부어 먹어야 하는가, 또는 튀김을 소스에 찍어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가장 대표적인 예인데, 어느 방송에서는 한 과학자가 설명하는 탕수육 ‘부먹’의 이유를 익살스럽게 다루기도 하였다. 하지만 과학자가 밀가루 튀김과 전분가루 튀김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소스의 풍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남산 부근 경양식집에서 파는 돈가스와 일본식 수제 고급 돈가스로 나뉘는 제품의 특성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제대로 된 맛에 대한 기준이 있으니 쉽사리 설득되지는 않는다. 결국 음식은 각자의 방식대로 그것을 즐기는 데에 의미가 있다. 사람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음식을 대하는 것뿐이다.

음식 앞에서 행복할 권리

한 번은 유명 푸드칼럼니스트와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군대와 학교에서 사용하는 식판 이야기를 했는데, 그에게 있어 식판은 음식이 아닌, 식기를 담기 위한 쟁반일 뿐이라 했다. 단체생활의 편의를 위해서 쟁반에 음식을 올려두고 먹을 것이 아니라, 식판 위에 제대로 된 그릇들을 올리고 다시 음식을 담는 것이 옳을 것이라 했다. 서민들이 자주 가는 백반집에서 사용하는 멜라민 재질의 식기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그였지만, 차라리 그것이 식판보다는 나을 것이라 했다. 끼니를 챙기며 기왕이면 그럴싸한 식기까지 챙길 수 있다면 어찌 좋지 않겠는가. 음식을 입에 넣는 자세만이 아니라, 음식을 담는 자세까지 제대로 챙길 수 있다면 삶이 한층 더 아름다울 수 있으리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추이를 보면 그의 바람과는 달리 사람들은 식판은커녕 일회용기에 담긴 음식들을 즐기고 있다. 물론 일회용 용기에 밥을 먹는다고 음식의 맛이 대단히 떨어지거나, 먹는 사람의 존엄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간편식뿐만 아니라, 유명 미식 평가서에 등재된 고급 식당들도, 거리가 멀거나 줄 서기가 어려워 입맛만 다셨던 노포들도 일회용기에 담긴 음식을 배달하는 세상이다. 유행과 상황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 푸드칼럼니스트의 식판과 식기에 관한 이야기는 그저 표면적인 행위에 대한 것은 아니었을 거다. 어쩌면 먹는 이 스스로 자신을 제대로 챙기려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 마음이란 내 앞의 음식을 마주하며 그 안에 담긴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닐까.

박준우

푸드칼럼니스트이자 기자. 요리에 관심이 많아 다수의 매체에서 활동 중이다. <마스터셰프 코리아>, <수요미식회>, <냉장고를 부탁해> 등의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셰프로도 활동하는 요리에 진심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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