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6일 한국은행이 전격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연 0.5%에서 0.25%p 올린 연 0.75%가 된 것인데, 시장에선 연내 추가 금리인상도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1월, 연 1.5% 에서 연 1.75%로 올렸던 게 마지막이었으니 이후 2년 9개월만에 이뤄진 금리인상이다.
특히, 한국이 선진국 중 가장 먼저 금리인상을 치고 나간 것이 눈에 띈다.
미국은 5%가 넘는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금리인상은 커녕 ‘테이퍼링(시중 유동성 공급을 축소하는 것)’도 망설이고 있는데 말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번 금리인상에 대해 “물가, 가계부채, 그리고 집값을 고려했다”고 총평했다.
글. 정철진(경제칼럼니스트/진투자컨설팅 대표)
돌아보면 지금의 저금리와 ‘양적완화’라는 엄청난 유동성 공급은 지난 2008년 말 터진 세계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2009년부터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이 유동성 파티는 2~3년 내에 끝날 줄 알았다. 현재까지 무려 12년간 이어질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물론 중간에 긴축시도는 있었다. 2013년에 양적완화를 끝내려 했지만 시장이 곤두박질하는 일명 ‘긴축 발작(테이퍼링 텐트럼)’을 겪었고, 2018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엔 금리를 전격 인상해봤지만 이후 주가폭락에 모든 것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리고 터진 코로나19 사태. 긴축은 커녕 제로금리에 추가로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제 그 끝이 보이고 있다. 현재 채권, 주식, 부동산, 원자재, 암호화폐, 예술품 등 지구상의 모든 자산시장엔 역사상 최대 거품이 부풀었고, 인플레이션이란 복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게다가 이젠 많은 전문가들이 “이젠 그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돈을 풀수록 자산시장만 커지고 실물경제는 더 초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은 파티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데 핵심 고려대상은 인플레이션, 바로 물가관리이다. 이것은 중앙은행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명분을 보면 높은 물가도 있었지만 ‘가계부채와 집값’이라는 추가적 이유도 있었다. 필자는 오히려 여기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의 가계부채는 1800조 원이 넘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90%가 훌쩍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이중 70% 정도는 부동산과 연관이 돼 있고, 엄청난 빚과 유동성이 부동산에 유입되며 집값 상승은 이미 통제범위를 넘었다. 전국 아파트 중위가격(가격 순서로 나열했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가격)은 5억 원을 넘었고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10억 4667만 원이 됐고 수도권도 7억 5000만원이 넘었다. “웬만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7억~8억 이상이다”란 말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됐다.
이런 집값 폭등의 핵심은 역시 유동성 때문인데, 그래서 결국 한국은행은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물론 아직 기준금리는 0.75%이고, 시중 주택담보대출금리도 3%대 수준으로 집값 잡기엔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추세이다. 한국은행이 연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고 시장에 “2022년에도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라는 뉘앙스를 던지면 이제 시장금리는 급격하게 튀어오를 수 있다.
우리는 한 가지 지표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인플레이션, ‘소비자물가상승률’이다. 이미 지난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6%가 됐다.
물가상승이 지속되고, 상승폭이 더 커진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긴축’의 강도가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로존의 경우 지난 8월 3%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나왔고 독일은 무려 3.9%를 기록했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우리나라도 3%를 향해간다면 기준금리 인상 속도나 인상 폭은 커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장금리는 더 빠르게 올라갈 것이고 연 4%가 넘는 주택담보대출금리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부동산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인플레이션은 명백한 위험신호이다. 이는 빠르게 유동성 파티가 끝난다는 뜻이고, 자산시장 거품이 꺼질 것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집중할 부분은 바로 빚 관리이다. 종종 “물가가 오르면 화폐가치가 떨어져 빚 진 사람이 유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다. 강력한 물가상승 구간에는 소득증가 속도가 가장 느려 채무부담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변동금리 대출이라면 원리금 부담도 빠르게 커진다. 지금 매달 갚는 원리금이 한순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젠 뭘 더 많이 벌기보다 나의 빚 부담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 역사상 유동성 파티는 반드시 끝났으며, 그 마지막은 매번 충격을 동반했다. 이번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막연한 낙관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이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