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의 날씨, 분위기 못지않게 맛이 오랫동안 여행지의 기억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은 오랫동안 불변의 법칙으로 통하는 것은 아닐런지….
그 불변의 법칙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맞아떨어진다. 여행지에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때에 여행지의 맛으로 입과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특히나 봄의 맛은 겨울 동안 지친 입맛과 감각을 깨우기에 적합하다. 봄에만 누릴 수 있는 맛으로 입맛도 살리고 여행의 아쉬움도 달래보자.
글. 편집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사진장소. 광양 매화마을
섬진강 별미 벚굴
봄 하면 꽃, 꽃 하면 빠지지 않는 곳을 꼽으라면 바로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일 것이다. 섬진강 강줄기를 사이에 두고 왼쪽 전남 광양에서는 매화가 봄소식을 알린다. 그리고 좀 지나지 않아 오른쪽 경남 하동에서는 벚꽃이 피어난다. 뿐만 아니라 광양 섬진마을의 매화와 구례 산동 산수유가 매화와 앞다투어 피기 때문에 3월 중 구례를 찾으면 산수유와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 매화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 매화마을을 찾았다면 당연히 산수유마을도 들러야 한다. 꽃과 나무, 산길, 탁 트인 강변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면 이제 섬진강의 별미를 맛볼 차례다.
벚굴
꽃을 피워내는 건 육지만이 아니다. 섬진강도 봄이면 꽃을 피워낸다. 남해와 만나는 섬진강 하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벚굴’을 피어낸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맛이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봄에만, 섬진강 하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굴은 크기가 거짓말 약간 보태어 성인의 얼굴 크기 만하다. 일반 굴의 10배 크기가 난다고 보면 되겠다. 일단 크기로 마음을 빼앗고 거기에 민물과 바닷물이 고루 섞인 맛이다. 짭짤한 일반적인 굴과는 맛이 달라 생으로 호로록 먹었을 때의 맛은 상상과 직접 맛보는 것에 맡기겠다.
광양·섬진강변 여행코스 매화마을▶돈탁마을▶망덕포구▶배알도 김시식지
봄바다의 맛, 가자미
산, 바다, 호수를 모두 갖춘 국내 여행지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봄 여행지로 속초를 추천한다. 속초는 속초에 진입하는 속초IC부터 시내에 이르는 노학동 관광로에서 온천로 도로에도 오래된 벚나무들이 장관을 이뤄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또한 속초의 대표 관광지인 설악산의 벚꽃터널은 665m 길이의 산세와 어우러진 명소다. 드라이브로 벚꽃을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 속초만 한 곳이 없다는 이야기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속초를 방문할 때에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과 가까운 한국전력공사 정원의 벚꽃과 영랑호의 벚꽃으로 드라이브의 아쉬움을 달래도 좋다. 산으로, 바다로, 호수로 벚꽃을 즐겼다면, 별미로는 해산물을 즐기는 게 ‘진리’! 새콤매콤 입맛을 돋우는 가자미식해를 속초 봄의 맛으로 소개한다.
가자미식해
가자미는 계절과 관계없이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생선이지만, 가장 맛있는 철은 3월이다. 제철 맞은 가자미는 싱싱한 회로 먹거나 매콤한 식해로 만들어 먹는 것. 지금 속초에 가면 포근한 봄 바다의 정취를 즐기며 가자미를 맛볼 수 있다. 속초의 향토음식인 가자미식해는 본래 함경도 지방 고유의 저장 음식이다. 고춧가루 양념에 가자미를 삭혀 만든 일종의 ‘젓갈’이다. 속초사람들에게는 매일 먹는 김치처럼 익숙하다. 가자미식해를 아바이순대에 곁들이는 밑반찬처럼 생각하면 되겠다. 속초 중앙 갯배 선착장 근처에서 가자미식해를 곁들인 아바이순대와 함흥냉면을 맛보자. 함경도 음식인 가자미식해가 속초의 향토음식인 데에는 피난 내려와 고향 가까운 청호동에 자리잡았다가 돌아가지 못한 함경도 출신들이 그리움과 향수를 달래며 만들어 먹은 음식이 순대, 냉면, 가자미식해였던 것이고, 아바이마을에 순댓집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속초 여행코스 설악산▶갯바위▶영랑호▶속초관광중앙시장
솔숲,갯벌에 부는 봄바람 꽃게
태안은 바다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소소하게 찾는 한적한 지역이다. 너른 송림과 수백km에 이르는 해안, 아담한 해수욕장에 사구까지 품은 실은 알고 보면 알짜 여행지다. 바닷가 솔 숲길을 따라 바다로 나서면 갯바람이 불고 천리포수목원에 봄꽃이 피어난다.
특히나 천리포수목원의 경우에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비대면 안심 관광지로 선정될 만큼 생활 속 거리두기가 가능한 힐링 여행지 25개소 중 하나다.
게국지
봄기운 가득한 시장은 어떤 때보다 생동감이 넘친다. 봄이란 기운에 설렘이 배가 되나보다. 봄 제철 먹거리로 꼽히는 또 다른 맛은 꽃게다. 살도, 알도 꽉 찬 봄 꽂게는 서해안 암게가 그 맛을 자랑할 때다. 봄 꽃게 맛은 4~5월이 최고로 게장이나 찜도 좋지만, 서해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 ‘게국지’로 봄의 달큰함과 시원함을 느껴볼 것을 추천한다. 태안군의 안면도 지역에서는 게장에서 건더기를 건진 후 남은 국물은 보관했다가 갯벌에서 잡은 게를 더 넣어 게장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여러 차례 게장을 담가 진해진 국물은 김치를 담글 때 양념으로 이용한다. 이 김장이 익어 맛이 들면 겟국의 짠맛과 호박의 달큰함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게국지가 탄생됐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