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리은행 홍보부 이영호 부부장 사진. 우리은행 브랜드전략부 이희제 과장
“팔을 꺾어서 목을 거쳐 등 뒤로 가져가면, 손끝에 닿을락 말락 하는 곳이 있다. 거기가 바로 울진이다.” 어느 유튜브 진행자가 ‘서울에서 울진이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인지’를 설명하면서 이런 비유를 들었다.
울진은 예나 지금이나 수도권에서 접근이 쉽지 않다. 울진은 해안가 근처의 평지를 제외하곤 높이가 고만고만한 산들이 촘촘하게 들어찬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울진은 수평선
너머로 제일 먼저 해가 고개를 내밀고 산등성이를 따라 빽빽하게 자리 잡은 소나무가 햇살을 한 줌이라도 손에 넣으려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산과 들 사이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물길이 찬연한 매력을 수놓는 고장이다.
조선 시대에는 광화문에서 시작된 큰길–평해대로-이 대관령과 강릉을 거쳐 울진까지 이어졌다. 한 때 이 고장을 관할했던 ‘강원도 관찰사, 송강 정철’은 울진 앞바다의 거친
파도의 매력을 ‘성난 고래’와 ‘은산(銀山)’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해 뜨는 동해에서 보면 울진은 땅의 시작이지만, 서쪽 산자락에서 보았을 땐 이 고장은 땅의 끝이다. 울진에서 서쪽 방향(정서, 서남, 서북)으로 향하는 길은 깊은 산세를
타고 넘어야 하는 험로다. 하지만 촘촘하게 들어찬 산과 산 사이를 연결하는 길 또한 찬연한 매력으로 승화된다.
작년부터 산림청과 4곳의 광역자치단체가 힘을 합쳐 ‘국토횡단 동서트레일’을 조성하고 있다. 태안반도에서 시작한 동서트레일이 끝나는 곳이 울진이다.
우리금융그룹은 동서트레일 울진 구간 개척 사업에 힘을 보태었다. 그리고 산림청은 ‘망양정’에서 ‘불영사 계곡’
까지 이어지는 약 20km 정도의 동서트레일 55구간을 ‘우리금융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가을을 통과하는 우리금융길은 수확의 즐거움과 고단함이 묻어나는 길이다. 겨울
준비하는 자연의 처연한 몸짓이 다양한 빛깔로 펼쳐져 뚜벅이 여행자의 오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 길은 걸음을 내디딜수록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선물한다.
우리금융길은 망양정에서 시작된다. 망양정은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일출 명소다.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태초의 시작을 연상시킨다.
‘빛이 있으라!’
새벽의 외침에 태양은 옅은 구름 사이로 붉은빛을 분산
하다. 말갛게 솟아나는 장엄함을 시샘하는 바다. 바람을 탄 물결 위로 ‘성난 고래’가 하얀 거품을 뿜어내고, 거품은 곧 ‘은빛 산’이 된다. 은빛 산 위로 뿌려지는 금빛
가루는 눈이 아플 정도로 시리다.
망양정에서 바라본 은빛과 금빛 가루의 감동을 뒤로하고 ‘왕피천 하구연’을 따라 서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왕피천은 울진 서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줄기 사이에서 시작된 여러 물길이 모인 짧지만 굵은 유서 깊은 하천이다. 오래전 어느 왕이 전란을 피해 이 물길을 따라 골짜기
어딘가로 피난을 갔다고 해서 ‘왕피천’이란 이름이 붙어졌다.
‘왕피천 하구연’은 동해로 흐르는 하천 하류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드넓게 펼쳐진 범람원의 경작지와 소나무숲, 왕피천 물길과 동해의 파도가 실어 날아 쌓은 모래언덕과 잠시
가로막힌 물길이 만들어 낸 잔잔한 호수 등 잔잔한 듯 단아한 풍경은 보면 볼수록 참 매력적이다.
‘왕피천 하구연’ 근처에는 소금밭의 흔적이 있다. 그 옛날 울진 사람들은 바다에서 물을 길어 올린 끓이고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든 소금은 보부상의
지게에 실려 서쪽 산 너머 봉화, 안동, 영주 등지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정오를 향하는 햇살은 왕피천 물길위로 윤슬을 피워낸다. 이 물길은 은어의 고향이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 알에서 깨어난 은어는 바다로 떠난다. 벚꽃이 필 무렵 바다로 갔던
은어는 왕피천을 거슬러 상류의 계곡 속으로 흩어진다. 여름 한 철 은어는 적당히 살을 찌우며 차곡차곡 결혼할 준비를 한다. 이때가 되면 은어는 제법 공격성을 갖게 된다.
여름날의 은어는 다른 은어의 접근을 극도로 꺼린다. 이때를 기다린 강태공은 은어의 성질 돋워 손맛을 즐긴다.
추석이 지날 무렵 은어는 결혼과 합방을 서두른다. 은어는 곧 생명을 잉태하고 힘겹게 마련한 보금자리에 수많은 생명을 남긴 채 짧은 생을 마감한다. 생을 마감한 은어는 다른
물고기와 물새들을 살찌운다. 비록 짧지만 사계절을 알차게 보내는 은어의 고결한 생명력과 책임감도 이 고장의 숨은 매력이다.
은어의 매력은 왕피천을 생태여행의 메카로 만들었다. 장마가 끝나면 왕피천 생태탐방을 즐기는 트레킹이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길은 어느새 왕피천 기슭 석회암 동굴인
‘성류굴’로 이어진다. 성류굴 주변에 내려앉은 산자락
으로 ‘적벽’을 닮은 검은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람과 빗물에 씻겨 형이상학적인 모습을 한 바위 무리는 이곳이 석회암 지대라는 것을 말해준다.
길성류굴을 지나면 길은 제법 조용해진다. 사람도 차도 왕래가 드물다.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는 조용한 길이다. 심심하면 등장하는 우리금융길 이정표가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덜어준다.
가을걷이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들판 위로 고소함이 묻어난다. 조각조각 흩어진 구름은 파란 하늘의 점과 면이 된다. 점점 짧아지는 그림자는 등줄기를 따라 ‘땀길’을 만든다.
마을 어귀의 평상과 정자는 ‘쉼’을 허락한다. 숨을 돌리고 잠시 소박한 풍경을 담아 보라는 의미가 담긴 열린 공간이다.
우리금융길은 바로 옆 아스팔트 도로를 내버려 둔 채 마을 안길을 통과하여 대나무 숲을 스치더니 어느새 나지막한 산을 타고넘는다. 형형색색 야생화와 초록을 덜어내 한결
가벼워진 나뭇잎이 가을과 이별을 손짓하는 숲길이다. 길은 커다란 트럭 한 대가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만, 오르막인지라 잎 사이를 일렁이는 햇살 앞에서 숨은
점점 거칠어진다. 때마침 찾아온 바람은 순간 등줄기에 새겨놓은 땀길을 바싹 말려 버린다.
고갯마루를 지난 언덕길을 내려가니 왕피천 기슭의 아담한 마을이 등장한다. 역시나 우리금융길은 아스팔트를 내버려 둔 채, 활처럼 휘어져 마을 안쪽을 향한다. 길을 따라
가지런히 놓인 농가 주택은 하나같이 남향이다. 입구를 지키는 강아지들은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는다.
담벼락 너머로 뻗어 나온 나뭇가지에는 수확을 기다리는 감이 주렁주렁이다. 가지 끝에 걸린 홍시 하나가 입맛을 자극한다. 하나 따서 반으로 쪼개어 달고 부드러운 속살을 맛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셀프 내부통제’가 뚜벅이 여행자의 감성을 제어한다.
마을 어귀 왕피천 둑방을 내려가 모래톱으로 향한다. 왕피천은 캔버스가 되어 주변의 낮은 산을 품는다.
바닷모래와 달리 강모래는 제법 단단한 탓에 발이 푹푹 빠지지 않아서 걷기 그만이다. 물색은 청명한 초록색... 말 그대로 명경지수! 곳곳에서 윤슬이 피어난다.
왕피천은 거칠어진다 싶으면 잠시 여울이 되어 한숨을 돌린다. 돌멩이 몇 개를 집어 들고서 명경지수 위에 물수제비를 띄운다. 재료는 훌륭하지만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한참
모자란 탓에 물수제비 맛은 별로다. 형편없는 물수제비가 아쉬운 듯 왕피천이 속삭인다.
“I Am 깨끗합니다.”
우리금융길은 왕피천과 마을에게 잠시 이별을 알리고 서북 방향의 ‘천축산’을 향해 방향을 꺾는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한티재는 우리금융길의 절정이다. 한티재 입구부터 고갯마루를
지나 불영사 계곡 입구까지 약 6km에 이르는 구간은 스마트폰도 LTE도 5G도 말을 듣지 않는 오지다. 오래전 어느 이동통신 회사의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문명을 떠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준비를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이 길 어딘가 ‘자연인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은 곧 설렘이 되고, 서낭당과 아름드리 팽나무는 무심하게 뚜벅이 여행자를
내려다본다. 서늘한 바람이 한낮의 열기를 가라앉힌다. 산도 숲도 하늘도 구름도 고요하다.
고갯길 옆으로 펼쳐진 기암괴석이 고요의 방점을 찍는다. 덩달아 뚜벅이 여행자의 마음도 고요해진다. 계곡을 파고든 물길은 아담한 폭포가 되어 제법 용맹한 소리를 뽐낸다.
폭포의 물소리는 고요 속에서도 생동하는 자연을 읽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짙은 소나무 향기 사이로 마른 잎 향기와 촉촉한 내음이 교차한다.
하늘로 빨려 들어갈 듯 곧게 뻗은 아름드리 금강송은 숲의 주인이다. 아름드리 금강송 밑동 주변으로 검은빛이 역력하다. 몇 해 전 산불의 흔적이다.
산불의 상처를 덤덤하게 이겨내고 가지를 뻗는 금강송의 처연한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이다. 걷기의 고통을 유익함으로 이겨낼 힘이 있다면 한티재의 금강송은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금강송 숲 주변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붉은 끈을 얼기설기 엮은 펜스가 자주 등장한다. 금강송 밑동 소나무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곳에 ‘송이(松耳)버섯’이 자생한다. 혹시나
‘송이버섯 향기라도 담을 수 있을까…’라는 서툰 기대에 코를 벌렁벌렁하지만, 내공이 한 참 모자란 탓에 코끝을 스치는 향은 습기를 머금은 소나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덕분에 송이버섯은 구경조차 못 한다.
송이버섯은 금강송 숲이 허락한 산촌의 주요 소득원이다. 사시사철 구경할 수 있는 ‘새송이버섯’과 달리 ‘리얼 송이버섯’은 가을 한 철 구경할 수 있는 귀한
식재료다.
1킬로에 18만원... 최상급 한우 갈빗살보다 2~3배 정도는 비싸다. 예부터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소나무숲은 부모 형제 자식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숲 입구를
둘러싼 붉은색 끈은 ‘송이버섯밭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아라’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송이버섯 채취꾼을 위한 움막도 등장한다. 투명 비닐로 얼기설기 엮은 움막 안으로 생수병, 라면, 휴대용 버너 등 세간살이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움막은 야음을 틈타
‘송이버섯을 훔치려는 이들을 감시하는 초소 역할’도 겸한다.
한티재 고갯마루를 지나 불영사 계곡을 향해 걷다 보면, 동화책 속에나 등장할 법한 옹달샘을 만난다. 이곳 사람들은 이 옹달샘을 ‘찬물내기’라고 부른다. 옅은 ‘철(Fe)’ 맛이 스며든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얼굴과 목덜미 눌러앉은 먼지를 씻어준다. 샘물 덕분에 피부가 매끈매끈 부드러워졌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제주산 생수가 들어있는 페트병을 비우고 ‘찬물내기’에서 솟아나는 물을 채운다. 내려 가는 발길이 한결 가볍다.
한티재에서 만난 또 다른 세상을 즐기고 감상한 지 두 시간 반쯤 지났을 때, 저 멀리 구불구불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눈에 잡힌다. 간간이 들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도 귀를
사로잡는다. 또 다른 세상에서 잠시 먹통이 되었던 스마트폰도 제 기능을 되찾는다. 돌길 위에 내려앉은 낙엽 덕분에 한동안 신경을 곤두서고 차분하게 발길을 옮긴다. 계곡의
경쾌한 물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앙증맞은 징검다리가 뚜벅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물속에는 제법 굵은 다슬기가 가득하다. 계곡을 둘러싼 기암괴석에서 부처의
그림자를 찾지만, 보는 눈이 부족한 뚜벅이 여행자에게 ‘바위는 그냥 바위요, 계곡은 그저 물이 흘러가는 길’일 뿐이다.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계곡엔 가을치곤 유량이 제법 풍부하다. 혹여나 미끄러질까 봐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딘다. 불영사 계곡을 건너 버스 정류장에서 벤치에
지친 몸을 기댄다. 우리금융길, 동서트레일 55구간은 여기서 서쪽으로 1.5km 가야 끝이 난다. 아쉽게도 아직 길이 다 완성되지 않은 탓에 걷기는 이곳에서 끝을 맺는다.
동서트레일은 울진에서 봉화, 영주, 예천, 상주 등 경상북도 북부를 가로질러 속리산 넘어 충청북도로 이어진다.
충청북도에 세종특별시로, 세종특별시에서 충청남도
로 계속 이어진 길은 태안반도에서 끝과 시작을 알린다. 구간은 총 55개라고 한다. 길은 어렵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가고, 당신이 가고, 우리가 가면, 길이 된다. 굳이 애써 이야기를 만들려 하지 않아도 길가에 숨 쉬는 생명과 사물의 속삭임 속에서 이야기가 엮어진다. 앞으로
태안반도까지 어이질 동서트레일이 어떤 이야기를 쌓아 나갈지 궁금해진다.
수녀
와 넘 멋집니다. 우리금융길 꼭 걸어보고 싶네요~ ^_^
가을
단풍의 절정 시즌에 잘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진도강진여행
이영호부부장님의 글귀와 이희재 과장님의 사진이 넘 좋네요^^
걷기가취미
우리금융길 가보고 싶어요..!!! 부럽+_+
오오오
우리동네 근처네요. 우리금융길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산티아고
1년 중 걷기 가장 좋은 때네요. 울진이라.. 너무 멀긴 한데 가보고 싶어요 우리금융길이라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