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진짜 봄이다. 얼마 전까지 내뱉었던 춥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햇볕은 따사롭고, 황량하던 세상은 봄의 색을 입고 사람들을 반긴다. 이런 날, 집에만 있기에는 무료하지 않은가. 그럴 땐 일단 가벼운 산책길에 나서보자.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
4월호 우·동·소 사연
“최근 중학교 2학년인 딸과 함께 청운문학도서관을 다녀왔습니다. 안국역에서 내려
설렁설렁 걷다 보면 한옥으로 지어진 도서관이 나오는데, 그곳이 청운문학도서관입니다.
작은 폭포를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멋진 곳이더라고요. 도서관에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스위스가정식 레스토랑 가서 맛있는 식사로 마무리했네요. 추천합니다.”
-우리은행 고강동지점 양수경 과장-
안국역이나 경복궁역에서 내려 천천히 걷다 보면, 봄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산책로 ‘인왕산자락길’이 나온다. 코스가 생각보다 넓어서 다 걷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나들이
삼아 짧게 구간 구간을 걷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디로 갈지 갈피를 못 잡겠다면 청운문학도서관-초소책방-무무대-수성동계곡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걸어보면 어떨까. 가장 부담 없이 걸으며 각 포인트에서 얻어 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종로구 최초의 한옥공공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으로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일대 산책에 나선 사람들은 보통 인근의 윤동주문학관을 들렀다가 청운문학도서관을 찾는다.
거리상으로 가깝기도 하고 비슷한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가 가장 큰 이유인 듯싶다.
단 윤동주문학관은 매표를 해야 하고, 사진 찍는 게 제한적인 반면 청운문학도서관은 거주지가 서울시로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원증을 발급받은 후 도서 대여를 할 수
있다. 물론 꼭 대여를 하지 않아도 들러서 쉬다 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도 장점.
게다가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지붕기와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수제기와를 사용하고,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기와 3천여 장을 재사용해 건축되어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준비해 회원 및 방문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한옥도서관’이라는 별칭답게 이곳에는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가 많다. 가장 인기 있는 포인트는 작은 폭포가 보이는 별채.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폭포소리를 벗 삼아 책을
읽으면 보통의 도서관에서는 누릴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작은 폭포가 보이는 별채를 보러 일부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그밖에 소박하고 정겨운
담벼락, 대나무숲이 마련되어 있는 열람실도 청운문학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 중 하나다. 곳곳이 워낙 특색 있고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지만,
도서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람실에서는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민폐를 줄 수 있으니, 조용히 눈에 담고 즐기다 오는 매너를 갖추자.
청운문학도서관 주차장 쪽으로 나오면 청운공원이 보이는데 그 초입의 이정표를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산책길에 오를 수 있다. 다만 개나리, 진달래, 홍매화, 벚꽃의 모습을
보느라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서두르지 말고 즐기길 바란다. 봄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이자, 여유로움이니까.
그렇게 급할 것 없이 산책길을 따라가다 보면 더숲 초소책방을 만나게 된다. 인왕산 자락의 북카페로 입소문을 탄 이곳은, 2020년 늦가을 문을 열었다. 산자락에 책방이
자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색적인데, 사연을 들여다보면 더욱 의미가 깊다.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건축되어 50년 넘게 경찰 초소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책방’으로 꾸몄기 때문.
통유리로 된 실내 공간, 멀리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야외 공간은 이곳의 자랑. 좋은 뷰 덕분에 앉아있다만 가도 힐링이 된다. 거기에 커피와 다양한 마실 거리,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한 빵도 판매하며 등산객들과 시민들에게 사색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초소책방에 이른 아침 산책길에 오른 고단함을 묻어두고 다시 걸음을 옮겨본다. ‘초소책방에 더 있다 올 걸’하는 아쉬움은 초소책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무무대(無無臺)에서
바로 잊게 된다. 멋진 서울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다.
‘아름다운 풍경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을 간직한 이름처럼 무무대에서는 그저 원 없이, 아름다운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야경도 기가 막히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저녁에 와서 야경을 보는 것도 좋겠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고 쉬기를 반복하면 어느덧 수성동계곡에 다다른다. 수성동계곡은 인왕산에서 흘러 내려와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계곡인데, 계곡의 물소리가 크고 맑아 조선시대에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다고. 겸재 정선이 북악산과 인왕산의 경승 8경을 그려 담은 ‘장동팔경첩’에 속할 만큼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곳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맑은 계곡물을
볼 순 없었지만 사람들 곁에서 쉼터로, 산책로로 오래오래 자리하기를 바라본다. 물론 수성동계곡까지 오는 동안 마주했던 곳들 역시도. 그렇게 되려면 깨끗하게 즐기고 머물다가는
우리들의 노력이 꽤 많이 필요할 것이다. 부디 모두의 노력으로 매년 빛나는 봄이 찾아오기를.
경찰 초소의 흔적인 철제 출입문, 기름탱크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자연 속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게 매력적이다. 거기에 맛 좋은 커피와 빵까지 곁들인다면, 최고의 힐링.
윤동주문학관 인근에 있다. 아는 사람은 아는 곳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만두 맛집. 특히 만둣국은 평양냉면과 같은 느낌을 준다. 손수 빚어낸 정성스러운 만두 요리를 즐기고 싶다면 방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