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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소

영양에서
걷는 기쁨

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시끄럽지 않다. 다시 말하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영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고요함을 벗 삼아 걷고 또 걸으며 깨달을 수 있는 기쁨과 재미. 경북 영양에는 이런 재미가 있다.

2월호 우·동·소 사연
“인구가 적고, 조용한 경북 영양을 아시나요? 정신없이 바쁜 도시의 삶과 대조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우리은행 본부감사부 이강진 차장 -

낯설지만 반가운 곳

영양은 지리적으로 북쪽은 봉화군, 울진군, 동쪽은 영덕군, 울진군, 서쪽은 안동시, 남쪽은 청송군과 접하는 곳이다. 인근의 크고 작은 동네들의 이름이 익숙해서일까. 처음 영양을 접했을 때는 낯설기도 했다. 신호등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인적이 드문 이곳이 알고 보니 한국 근대시의 시초인 조지훈의 생가가 있고, 별을 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겼다.

‘오지’라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한 번에 가는 방법은 없다. 서울 기준으로 자차를 이용하거나, 청량리역에서 안동역까지 KTX를 타고 이동한 후 다시 안동역에서 차로 약 두 시간을 더 가면 된다. 운전면허가 없다면 안동역 바로 옆에 있는 안동터미널에서 영양행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이동의 편의를 고려한다면 안동역에서 차를 렌트해서 가는 것이 좋다.

영양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영양을 둘러볼 차례다. 검색의 힘을 빌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영양의 여행지들을 둘러봤다. 경북 내륙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일월산, 사계절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선바위, 자연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죽파리 자작나무숲 등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들이 많으니 계절에 어울리는 곳을 선택해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죽파리 자작나무숲까지 가는 길

곧고 흰 나무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은 게 매력적인 자작나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이산화탄소 흡수 효과가 탁월해 환경적으로도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다. 언제고 꼭 직접 봐야지 생각했는데 이 자작나무숲이 영양에 있을 줄이야. 마침 겨울인 데다가 날씨 예보에 눈 소식까지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울지…. 보기 전부터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으로 불리는 영양 자작나무숲은 1993년도에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 인제 자작나무숲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관과 생태적 가치가 우수하고 숲 여행하기에 좋은 명품숲에 선정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으로 가려거든 ‘산림청 숲길 안내센터(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527-2)’ 또는 ‘죽파 장파경로당(영양군 수비면 상죽파길 99-8)’을 검색하면 된다. 경로당 바로 앞이 안내센터라 어느 곳을 목적지로 두고 와도 손쉽게 입구를 찾을 수 있다. 도착했을 때 알게 된 재미있는 점은 전기차를 운영하고 있다는 거였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었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나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도종환 <자작나무>-

노약자나 어린이들을 위해 운행하고 있는 전기차는 정규 시간이 있지만, 손님이 오면 바로바로 탑승할 수 있도록 운영 중이다.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산책로가 워낙 잘 되어있기 때문에 도보로 숲까지 가는 것을 추천한다. 여유롭게 2시간 내외로 힘들지 않게 갈 수 있고, 가는 길목마다 황홀한 자연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발할 때 “올겨울, 딱 제일 예쁠 때 보고 가겠네요”라는 안내센터 직원의 말을 떠올리며 펑펑 내리는 하얀 눈을 밟고,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조심조심, 천천히 한참을 걸었을까. 서서히 자작나무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 가니 자작나무숲의 웅장함이 실감이 났다. 가히 사진작가들과 트레킹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을만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을 향해 쭉 뻗은 흰 자작나무가 빼곡하게 산을 메우고 있는 모습은 웅장하다 못해, 황홀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사진에 이토록 황홀한 모습이 담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다.

숲에서 한참 서성이다가 눈이 더 많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겨울의 자작나무숲을 눈에 담았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며.

사람들은 보통 잡념에 사로잡히거나 일상의 고민거리가 있을 때 걷는 걸 선택하곤 한다.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그 사이 마주하는 자연을 보며 깨닫는 게 많아서가 아닐까.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겨울, 혹시 어지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면 죽파리 자작나무숲을 걸어보자. 장애물 없는 숲길을 따라 걷고, 빼곡한 자작나무숲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간 답이 없던 고민과 생각들의 답을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

죽파리 자작나무숲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산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