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뜨겁기만 했던 햇볕도 따사로워지고, 불지 않을 것 같던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온다. 바깥의 온도가 가을임을 가리키는 지금, 모처럼 동네를 걸어볼까.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책장을 넘겨도 좋다. 지난여름, 무더위에 시달리느라 잊고 지냈던 익숙한 풍경이 새롭게 다가올 테니.
10월호 우·동·소 사연
서울 구로구 항동에 마실 가듯 다녀오기 좋은 수목원과 책쉼터가 있어 소개합니다. 먼저 푸른수목원인데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고, 옆으로는 기찻길이 있어
운치를 더해요. 근처에 브런치 카페가 많은데 브런치 즐기고 수목원 산책을 해도 좋아요. 두 번째는 천왕산 책쉼터입니다. 정원도 잘 꾸며져 있고, 조용해서 쉬다
오기 안성맞춤이에요.
- 우리은행 연금사업부 한윤 차장 -
상상이나 했을까. 서울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라고는. 구로구 항동에 있는 푸른수목원에 대한 이야기다. 아파트 단지 옆에 자리해 있어 처음 찾은 사람은 ‘동네 공원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여느 공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기는 서울시 최초의 시립 수목원이자, 2018년 서울시 1호 공립수목원으로 지정된 의미 있는 곳이기
때문.
초입에 나 있는 항동철길은 푸른수목원의 매력을 배로 끌어 올려준다. 항동철길은 화물 수송을 하기 위해 놓여진 철길로, 지금은 운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푸른수목원이 생기고
나서부터 걷기 좋은 길로 사랑받고 있다. 철길과 나무가 어우러진 쭉 뻗은 길이 매력적이라 포토존으로도 인기라고. 길이가 짧은 편은 아니라서, 수목원 산책을 마치고 수목원
오른쪽 끝에 있는 문을 이용해 항동철길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하면 푸른수목원에서 항동철길로 이어지는 코스를 전부 걸을 수 있으니까. 날씨가 좋으면 잠깐 걷는
것만으로도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으니, 시간과 여유가 허락하는 만큼 누리다 오면 된다.
항동철길을 뒤로하고 푸른수목원으로 향해본다. 본격적인 산책이 시작되기도 전에 입구에 있는 잔디광장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다. 항동저수지와 버드나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그림 같았기 때문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장미원, 오색정원, 야생화원 등의 주제정원을 만날 수 있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든 곳이 더없이 좋지만, 이곳의 백미는 단연코 항동저수지 근처의 나무데크길이 아닐까 싶다. 오리와 잉어 등 다양한 생물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저수지를 타고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운치를 더해준다. 딱 이맘때의 분위기가 절정이라 더 좋았던 푸른수목원. 찰나의 가을이 가버리기 전에 산책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
푸른수목원을 나와 구로스마트팜 방향으로 걷다 보면, 천왕산책쉼터를 만날 수 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도 깨끗하다.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곳이 지향하는 바는 공공북카페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작가와의 대화’ 같은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진행하지만, 어린이 생태 드로잉 수업, 주민과 함께하는 플로깅 등 자연 속에서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더 많기 때문.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덕분에 이용객들은 한 번 오면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간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바깥으로 나가 돌멩이를 쌓거나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사실 이런 풍경이 완성되기까지 시행착오도 있었다. ‘도서관인데 왜 이렇게 떠드느냐’라는 의견이 나왔던 것. 절충안을 찾은 결과, 오전에는 주로 조용히
독서를 원하는 어른들이, 오후에는 학교를 마치고 온 아이들이 책도 읽고 마음껏 뛰노는 공간이 되었다. 오후쯤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면 어른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해준다고. 모두가 만족스럽게 책쉼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제로웨이스트 카페에도 눈길이 간다. 제로웨이스트 물건들을 한편에 전시해 놓는 등 지구를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 시원하게 트인 통창으로 보이는 숲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쉬었다 가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특히 기가 막힌 일몰 감상 포인트로도 사랑받고 있다.
푸른수목원 인근에 있는 브런치 카페다. 브런치 메뉴가 다양해 선택하는 즐거움이 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창 너머로 보이는 푸른수목원을 바라보며 브런치를 즐기는 것 자체로 힐링이다. 실제로 동네 산책을 나왔다가, 요기도 할 겸 들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