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의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그 발자취를 함께 해온 <우리가족>은, 단순한 사보를 넘어 어쩌면 우리은행의 대표적인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의 소식을 알리기 위한 최초의 목적을 넘어 단순한 기록물이 아닌 직원간의 소통 창구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우리은행만의 기업문화를 정착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발간 300호를 맞이하며, 현재의 <우리가족> 이전의 발자취를 ‘우리나라 근대 사보의 역사’와 함께 조명해보면 어떨까?
글. 편집실 사진. 우리은행
회사에서 진행되는 모든 업무의 중심은 역시 임직원들이며, 과업의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직원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직원들 간의 교류와 소통을 보다 원활하게 하는 수단으로, 또한 서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보가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초창기의 사보는 지금처럼 업무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인터넷이나, 기타 통신 장비가 없던 시절에 발간되었기에 업무 및 업계 동향에 관한 정보를 다른 이와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업무 채널이었다. 업무적인 것 외에도 직원들이 직접 쓴 논고, 문학, 사진 작품 등을 실었던 사보는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 단비와도 같은 직원들의 소식통이자 문화 잡지였다.
1)은행 사보의 모태 <천일>과 <흥원>
1949년 4월, 한국상업은행 행우회 문예부에서는 직원들의 문학, 논설, 업무연구 등 원고를 받아 종합 교양 잡지인 <천일>을 창간했다. <천일>은 은행 사보, 즉 행보(行報)의 모태로서 이후 정식 사보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은행 내 정보 소식지의 역할을 하였다.
한일은행에선 <흥원>을 발행하였는데, 직원들의 작품이나 기고 논설 등 일반적인 정보전달보다 더 다양한 직원참여 기반의 내용을 함께 다루며 당시로선 상당한 수준의 잡지의 모습을 보였다.
은행 사보의 모태가 된 <천일>
발행 당시 상당한 수준의 잡지 모습을 한, 한일은행의 <흥원>
2)<천일>과 박경리, 특별한 인연 대한민국의 대표 작가 박경리는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우리은행 용산지점에서 1954년부터 1년간 근무하였다. 시는 박경리의 유일한 위로였는데, 일하는 틈틈이 시를 썼던 박경리는 <천일>에 ‘바다와 하늘’이라는 시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다 퇴직하고 등단한 이후에는 <천일>에 ‘전생록’이란 단편소설을 쓰며 사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3)본격적인 사보의 시작 <행보>, <한일뉴우스> 1953년,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은행 소식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공유하고 자 <행보(行報)>라는 제호의 정식 사보를 창간하였다. 제1호 <행보>는 단 1장짜리 대외비 속보로 발행되었고, 이후 신문 형태로 바뀌며 은행 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내용을 선보였다. 1968년에 창간한 한일은행의 <한일뉴우스>는 6장 분량의 행보로 직원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소통의 장을 형성해 나갔다.
6장 분량의 행보로 만들어진 <한일뉴우스>
1970년대가 시작되며 국내 기업들의 사내보 및 사외보의 발간이 급증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른바 사보의 ‘개화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경제 산업 구조가 급격히 성장함과 더불어 다변화·대형화되면서 기업 대내외적으로 홍보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사보를 기업의 대외 이미지 개선과 기업 대변을 위한 Pr 전략 매체로 활용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은행권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춰 행내외 매체를 더욱 다양화하고, 사보를 통해 유기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코자 하였다.
1)사내보와 사외보 1960년대 상업은행은 사외보 성격의 <상은 Family>와 사내보 <행보>를 발간한다. 이후 <행보>는 <상은가족>으로 제호를 변경하고, 1990년 책자 판형으로 바뀌며 사내외보로 그 성격이 확대된다. 한일은행 또한 <한일뉴우스>를 시작으로 하여 종합교양지 <카네이션>으로 거듭나고, <한일월보>, <한일주보> 등 사내보를 발행하며 임직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하였다.
상업은행의 사외보 <상은 FAMILY>
2)사보의 다변적 기능 1980년대 사보는 단순 사내외 소식을 공유하는 ‘정보전달’의 역할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직원의 교양 함양을 위한 외부인사 기고문이나 일반시사, 문화나 생활 일반을 다루는 등의 ‘교양적인 면모’가 대거 등장하고, 만화나 퀴즈 등 ‘오락적인 부분’을 더하여 친근감을 쌓았다. 또 이 당시 큰 이슈였던 직원고시 문제 등도 실으며 ‘교육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3)은행의 발자취 속 함께하는 사보 1998년 7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안에 합의하여 새롭게 설립한 ‘한빛은행’은, 같은 해 12월 12페이지로 구성된 신문 형식으로 <한빛소식>을 창간하게 된다. 같은 해 11월 확정된 한빛은행의 심볼마크와 로고를 창간호 1페이지에 실으며 ‘한빛은행 사보’의 첫 한 발을 내딛은 것이다. 이어 2001년 5월호에는 임직원들의 참여를 통해 행보의 새로운 이름을 공모받아 <한빛가족>으로 변경하였다. 이 때에 비로소 현재의 <우리가족>으로 이어지는 제호의 스타일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2002년 6월 ‘우리은행’이라는 행명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사보 또한 <우리가족>으로 제호가 바뀌었다.
한빛은행에서 발간한 신문형식 <한빛소식>
격변의 시기를 지나, 2020년대 디지털을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은 사보의 인쇄시대에도 종언을 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21년 7월 <우리가족> 294호는 기존의 인쇄보 형태를 벗어나 전문 디지털 웹진으로 발돋움하며 출퇴근길에도 핸드폰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책보다 웹이 익숙한 현대에 있어 우리은행의 행보 또한 이제 ‘디지털 아카이브’로서의 기능을 부여받게 되었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임직원들의 ‘온라인 소통’의 한 창구로 그 역할을 더하게 된 것이다. 시대와 함께 형태는 변경되었지만 사보의 역할은 명확하다. 직원들 간의 교류와 소통, 그리고 행내의 소식을 전하는 정보전달지로서의 <우리가족>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늘 직원들과 함께 현재진행형이다.
2002년 우리은행으로 행명 변경 뒤 제호가 바뀐 행내보 <우리가족>
현재 발행 되고 있는 <우리가족>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