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천사를 만나다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나눔천사의 목소리 고객센터 허성호 과장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나눔천사의 목소리

가끔은 아무 용건 없이 울려오는 안부 전화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꼭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더라도 잘 지내는지, 밥은 먹었는지 안부를 물어주는 그런 전화가‥.
고작 전화 한통이 어려워지고, 고민이 되는 시대를 사는 요즘. 안부 전화로 어르신들을 기분 좋게 하는 천사를 만났다. 고객센터 허성호 과장이다.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에, 어르신들의 반가운 미소가 아른거린다.

글. 최선주 사진. 이승헌

Q. 나눔천사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보건복지부 산하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와 각 기업들이 협약을 맺고 고독사 방지를 목적으로 독거노인들에게 전화로 말벗을 해드리는 활동입니다. 우리은행도 협약을 맺었는데요. 그 협약에 따라 제가 나눔천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나눔천사가 하는 일이 궁금해요.

A.

협약을 맺은 기업의 직원을 나눔천사라고 부릅니다. 그 나눔천사들이 일주일에 1~2회 전화로 독거노인 분들에게 안부를 확인하고, 말벗 서비스를 지원해요. 그리고 통화가 끝나면 독거노인지원센터 홈페이지 안의 상담시스템에 기록합니다. 보통 통화연결이 3일 동안 되지 않을 경우 센터로 긴급출동을 요청할 수 있어요.

Q. 나눔천사 활동기간이 궁금해요.

A.

2012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4년간 활동했어요. 그리고 2년 후인 2018년 8월부터 지금까지 활동 중입니다. 대략 7년여 동안 활동하고 있네요.

Q. 나눔천사로 활동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A.

2012년 7월, 고객센터 안에서 직원만족팀으로 부서이동을 했어요. 부서이동을 계기로 독거노인사랑잇기 사업의 기업관리자 겸 나눔천사 활동을 하게 되었죠.

Q. 나눔천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남는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A.

부산 해운대에 사시는 권금자 어르신(79세)과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납니다. 하루는 대뜸 제 나이를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몇 살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딸이 둘 있는데, 제가 친딸들보다 나이가 많다며 큰딸하자고 하시더군요. 그말에 냉큼 “네 어머니~”라고 했더니 “딸이 또 생겨서 너무너무 좋네”라면서 기뻐하셨어요. 예쁜 딸이 셋이나 된다면서요. 저도 괜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요즘은 전화를 걸면 “우리 큰딸 전화왔네” 하시면서 반겨주세요. 반겨주시는 게 감사해서 저도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Q. 나눔천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잊지못할 순간은 언제였나요?

A.

3년 동안 통화했던 어르신께서 고독사로 생을 달리하셨을 때가 기억에 납니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게 되어 유가족 분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 하다가, 어르신께서 생전 하셨던 말씀들을 유가족에게 전달해 드렸죠. 슬픈 순간이었지만 이렇게라도 나눔천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목소리만으로 교감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어떠셨나요?

A.

어르신들과 처음 전화할 때는 당연히 어색했어요.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드리니 퉁명스럽게 받으시는 어르신들도 많았고요. 그럴수록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가며 통화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밝아지더라고요. 점차 저에게 마음을 열고, 밝게 대해주시는 걸 보고 뿌듯했습니다.
지금은 어르신들이 오히려 저를 기다려주세요.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 걸 아니까 나눔천사 활동에 소홀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명감도 느껴지고요. 전화를 끝낼 때 쯤에는 “전화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졌어요. 그 말을 들으면 괜히 저도 가슴이 뭉클해지곤 해요. 그럴 때마다 “저도요~ 어르신께서 반갑게 맞아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라며 마음을 전합니다. 서로 응원의 말도 전하고요.

Q. 나눔천사 이외에 앞으로 해보고 싶은 봉사활동이 있으신가요?

A.

나눔천사를 시작하면서 노인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거든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쪽으로 활동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격증과 관련된 여러 자원봉사 사이트를 참고해보려고 합니다.

Q. 독거노인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제가 안부 전화 마지막에 어르신들게 꼭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르신~ 오늘도 좋은 생각 많이 하시고요. 식사 잘 챙겨 드시고, 30분 걷기! 꼭 하셔야합니다”인데요. 더 바랄 것 없이 제가 늘 드리는 말씀 명심하시고 하루하루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랑 꼭 약속해요! 어르신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한 후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나눔천사 수기공모 최우수상 수상

인생 친구

우리은행 고객센터 허성호 과장

2018년 8월, 밀양에 거주하는 80세 김상기 어르신의 첫 말씀. “내가 혼자 죽게 되면 확인하려고 전화하는 거죠?.”

부드러우면서도 초연한 듯한 말씀에 살짝 당황되었지만, 안부 전화의 의미보다 고독사 방지의 의미가 크기에 “네, 그렇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답변드렸다. 이렇게 어르신의 첫 통화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은 보건복지부와 연계하여 독거노인의 고독사 방지를 위해 안부 전화를 하는 일이다. 여러 어르신과 통화를 하였지만 유독 김상기 어르신이 가슴 한구석에 깊게 자리 잡은 이유는 인상깊은 첫 만남과 함께 몇 해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이 쌓인 것 같다.

어르신은 감성이 충만한 분이시다. 독일 유학생 시절부터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시작하셨는데, 지금도 아침마다 “커피 내음을 맡으며 커피를 내릴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며 앨범 속 제자들의 모습을 회상하셨다. 아마도 학생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을 선생님이셨을 것이리라.

어르신은 고향 선산을 돌보며 조상님을 모시느라 가족들과 따로 사셨다. 명절이면 손수 시장보고 음식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며 정성으로 조상님을 모시는 일이 어르신의 사명인 듯 싶었다.

어르신은 목요일마다 병원을 방문하셨다. 무릎 수술을 해야 할지 고민하셨는데 의사 선생님은 “어르신, 연세가 많은데 해야겠냐”며 수술을 권하지 않으셨다. 물건을 손에 들거나 한쪽 어깨에 메면 힘들다고 하셔서, 두 손이 편한 배낭을 권해드렸더니 그조차도 꺼내기가 힘들다고 마다하셨다.

어르신은 예의가 바른 분이시다. 어르신의 기력이 떨어진다고 할 때는 친구 분과 함께 추어탕으로 몸보신을 권해드렸더니 친구가 항상 밥값을 낸다고 부담스러워하셨다. 그냥 친구니까 같이 드셔도 좋을 텐데 친구 사이에도 너무나 깔끔한 분이셨다.

어르신의 가족 사랑도 남다르셨다. 자녀 이야기를 하면서 “두 딸은 무조건 엄마 편이냐?”고 물으시며 모녀간의 조건 없는 사랑 그리고 가족의 사랑,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어르신과 매주 소소한 일상을 나눴다. 어르신은 전화를 받으시면 “오늘이 금요일인가요?”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바빠서 낮에 통화를 못 할 때는 퇴근길에 전화를 드렸다.

어르신과 찐 친구로서의 대화는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날이 갈수록 어르신의 목소리에서 기력이 떨어지고 힘들어 하시는 게 역력했다.

2021년 5월 3일 16시. 어르신의 마지막 목소리가 생생하다. “먹는 것도 너무 힘들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전화 받는 것도 이제 힘들게 움직여서 받아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수화기 넘어 어르신의 고통스러움이 내 가슴에 전해져 왔다.

‘밀양에 내려가서 어르신을 뵈어야 하는데, 어디에라도 연락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고작 서울에서 안부 전화만을 드린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이날의 전화가 어르신과의 마지막 통화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5월 6일. 안부 전화를 드렸다. 안 받으신다. 미수신 4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5월 7일. 오전. 오후 몇 차례 전화를 드렸다. 받지 않으신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5월 10일.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 어르신의 안부 확인을 요청했다.
5월 11일 18시 24분.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며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흐르며 소리 없는 오열이 온몸을 감쌌다. 지난주 어르신의 힘없는 목소리로 통화했던 기억만이 떠오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내 가슴을 짓누르며 어르신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만 들었다. ‘그때 병원에만 가셨어도......’

5월 13일. 어르신 생전의 모습을 유가족께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어르신 댁에 가족이 계실 것 같아 댁으로 전화를 드리니 할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모르는 여자로부터 전화가 오니 의아해하셔서 보건복지부 연계한 안부 전화의 취지와 지난 3년간 어르신과 통화했던 내용들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어르신의 가신 날짜를 여쭈니 8일 어버이날에 사촌 동생이 어르신 댁에 들렀을 때 이미 운명하셨다고 한다.

3일 날 마지막 통화할 때 어르신께서 너무나 힘들어하셨다고 말씀드리니 가신 날짜를 5월 5일로 추정할 뿐이었다. 어르신께서는 정말 혼자 가셨다.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홀로 가셨다. 가슴이 아리다.

할머니께서는 “우리 할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에 이야기 동무가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을거에요. 가족도 아닌데 그동안 전화해줘서 고마워요” 하시며 고마움을 표시하셨다. 지난 3년여 동안의 어르신 이야기를 할머니께 전해드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가끔, 어르신의 낮은 음성과 소탈한 웃음소리가 귓전에 전해온다. 어쩌면 어르신도 나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그래서 조금이나마 외롭지 않게 하늘나라로 가셨다면 고마울 뿐이다.

김상기 어르신께서 가신 후, 다른 어르신께 안부 전화 드리려고 수화기를 들면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나서 며칠 동안은 안부 전화 드리기가 겁이 났다. 마음 다잡기를 며칠 또 며칠, 굳게 마음먹고 평소 제일 반겨주시는 이용우 어르신께 첫 전화를 드렸다. 잘 지냈냐며 반가워하는 어르신의 목소리를 듣자 다시금 용기가 생겼다. 지금은 여러 어르신과 또 다른 인연을 쌓으며 안부 전화를 드리고 있다.

어르신들과 통화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소중하지만, 어르신들께도 매우 귀중한 시간이다. 어르신의 마음을 알고 진정한 도움이 되려면 더 배우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에 등재된 스크립터와 서적도 보고 출·퇴근 시에는 인터넷 강의도 들었다. 드디어 노인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어르신들과 목소리로만 통화하게 되면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함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자격증 취득 후에는 든든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하다.

7년여 동안 독거노인사랑잇기 활동을 하면서 어르신들과 인연은 공감을 넘어 교감으로 다가온다. 어르신들의 목소리에서 일상의 소소함과 나눔의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삶의 방향을 준비하게 되었다. 퇴직 후의 인생 3막을 열어가는 나의 삶에 그리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제 삶에 친구로 오셨던 김상기 어르신~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시겠죠?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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