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엔저 현상
일본 여행을 떠날까?

한국경제 수출 경쟁력은?

text. 정철진 (경제칼럼니스트, 진 투자컨설팅 대표)

“금리를 올릴 생각이 전혀 없다. 일본은 끈질기게 금융완화를 계속할 것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 7월 금융정책회의에서 한 말이다. 지금 전 세계가 기준금리를 올리고 긴축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유독 일본만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일본중앙은행은 -0.1%의 기준금리를 고수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초저금리에 대규모 엔화 양적완화를 이어가면서 장기금리 지표인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도 0%로 컨트롤한다. 중앙은행이 엔화를 찍어 공급하면서 국채를 계속 매입한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엔화 가치는 대폭락하고 있다. 역대급 엔저 현상이 심화되는 이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경제엔 어떤 영향을 줄까.

일본 여행을 가던지, 엔화를 사 모으던지

지난 7월 23일 현재 원/엔 환율은 100엔당 960원대. 지난 2010년~2011년 100엔당 1,500원이 훌쩍 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엔화 약세는 충격적일 정도이다. 엔/달러 환율은 137엔대. 엔화는 24년 만에 달러 대비 초약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다간 지난 1998년의 달러당 147엔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도대체 엔화는 왜 이렇게 약해지고 또 약해지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통화정책이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엔화를 무한대로 시장에 공급해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두려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6월 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2%에서 움직인다. 8%~9%대인 미국과 유럽, 6%인 우리나라에 비하면 확연히 낮은 수치이다.

이렇게 되니까 국내에서 나타나는 즉각적인 반응은 일본 여행과 엔테크(엔화+재테크)이다. 일단 엔화예금을 통해 엔화를 사 모은다. 이후 엔화가 더 떨어지면 이 엔화를 가지고 일본 여행을 떠나면 되고, 반대로 엔화가 강세로 바뀌면 환차익을 얻겠다는 것. 이쪽이든 저쪽이든 ‘꽃놀이패’를 가졌다는 게 요즘 엔화를 사들이는 사람들의 주장이다.(현재 엔화 예금 환차익 부분은 비과세 혜택이 적용된다.) 실제 통계를 봐도 이런 수요를 확인할 수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6월 말 기준 6,068억 엔으로 한 달 새 거의 20% 가까이 늘어났다.

일본증시는 오르는데 한국 수출산업엔 악재

일본 펀드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엔화 약세로 일본 수출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인데 실제 일본 증시는 최근 하락장에서 낙폭이 적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엔저 현상이 한국경제의 수출 경쟁력에 타격을 입힌다는 데 있다. 한국과 일본, 독일, 중국 등은 비슷한 카테고리의 수출군을 갖고 경쟁하는데 달러 대비 엔화의 약세 폭이 크면 달러 표기 수출 가격 경쟁력은 일본이 월등해진다. 가령 자동차 경우 일본차의 달러표기 가격이 더 싸진다.

물론 엔저가 과거만큼 영향력이 큰 것은 아니다. 일본 제조업의 해외 생산이 늘어나 있고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이미 부동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엔저 때문에 우리 반도체 수출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엔저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엔화가 더 큰 폭으로 평가절하 되면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분야에서도 한국경제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대비해야 한다.

금융시장에선 엔저가 ‘묘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바로 ‘엔화 약세=달러 강세’ 현상 때문이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을 괴롭히는 악재 중 하나는 달러 강세, 원/달러 환율 급등이다. 그런데 이렇게 달러가 강해진 데는 미국의 강력한 기준금리 인상도 있지만 엔화가 터무니없이 약해지면서 달러를 과도하게 강하게 만든 것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의 달러 강세를 꺾으려면 달러인덱스 구성통화 중 유로화가 강해지거나, 엔화가 힘을 내야 하는데 엔화는 강해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거 금융 역사를 보면 과도한 인위적인 왜곡은 늘 문제를 발생시켰고, 본래 가치로 되돌아왔다. 아직 의도적인 일본의 엔화 약세 정책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의 수입 물가를 폭등시켜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엔저 정책’ 방향이 순간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24년 만에 만나는 역대급 엔저 현상. 일본의 통화정책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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