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VOL.307
text. 정철진 (경제칼럼니스트, 진 투자컨설팅 대표)
지난 7월 23일 현재 원/엔 환율은 100엔당 960원대. 지난 2010년~2011년 100엔당 1,500원이 훌쩍 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엔화 약세는 충격적일 정도이다. 엔/달러 환율은 137엔대. 엔화는 24년 만에 달러 대비 초약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다간 지난 1998년의 달러당 147엔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도대체 엔화는 왜 이렇게 약해지고 또 약해지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통화정책이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엔화를 무한대로 시장에 공급해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두려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6월 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2%에서 움직인다. 8%~9%대인 미국과 유럽, 6%인 우리나라에 비하면 확연히 낮은 수치이다.
이렇게 되니까 국내에서 나타나는 즉각적인 반응은 일본 여행과 엔테크(엔화+재테크)이다. 일단 엔화예금을 통해 엔화를 사 모은다. 이후 엔화가 더 떨어지면 이 엔화를 가지고 일본 여행을 떠나면 되고, 반대로 엔화가 강세로 바뀌면 환차익을 얻겠다는 것. 이쪽이든 저쪽이든 ‘꽃놀이패’를 가졌다는 게 요즘 엔화를 사들이는 사람들의 주장이다.(현재 엔화 예금 환차익 부분은 비과세 혜택이 적용된다.) 실제 통계를 봐도 이런 수요를 확인할 수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6월 말 기준 6,068억 엔으로 한 달 새 거의 20% 가까이 늘어났다.
일본 펀드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엔화 약세로 일본 수출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인데 실제 일본 증시는 최근 하락장에서 낙폭이 적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엔저 현상이 한국경제의 수출 경쟁력에 타격을 입힌다는 데 있다. 한국과 일본, 독일, 중국 등은 비슷한 카테고리의 수출군을 갖고 경쟁하는데 달러 대비 엔화의 약세 폭이 크면 달러 표기 수출 가격 경쟁력은 일본이 월등해진다. 가령 자동차 경우 일본차의 달러표기 가격이 더 싸진다.
물론 엔저가 과거만큼 영향력이 큰 것은 아니다. 일본 제조업의 해외 생산이 늘어나 있고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이미 부동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엔저 때문에 우리 반도체 수출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엔저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엔화가 더 큰 폭으로 평가절하 되면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분야에서도 한국경제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대비해야 한다.
금융시장에선 엔저가 ‘묘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바로 ‘엔화 약세=달러 강세’ 현상 때문이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을 괴롭히는 악재 중 하나는 달러 강세, 원/달러 환율 급등이다. 그런데 이렇게 달러가 강해진 데는 미국의 강력한 기준금리 인상도 있지만 엔화가 터무니없이 약해지면서 달러를 과도하게 강하게 만든 것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의 달러 강세를 꺾으려면 달러인덱스 구성통화 중 유로화가 강해지거나, 엔화가 힘을 내야 하는데 엔화는 강해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거 금융 역사를 보면 과도한 인위적인 왜곡은 늘 문제를 발생시켰고, 본래 가치로 되돌아왔다. 아직 의도적인 일본의 엔화 약세 정책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의 수입 물가를 폭등시켜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엔저 정책’ 방향이 순간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24년 만에 만나는 역대급 엔저 현상. 일본의 통화정책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