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VOL.307
text. 박영화 photo. 정우철
연명항을 떠난 배가 하얀 포말을 가르며 푸른 바다 위를 달린다. 시원한 바람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만지도. 선착장 방파제에 적힌 ‘한려해상국립공원 명품마을 만지도’라는 글귀가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만지도는 2015년 명품마을에 선정되었는데, 통영시에 있는 570개 섬 중 만지도가 유일하단다.
주변의 다른 섬보다 주민이 늦게 정착하여 晩(늦을 만), 地(땅 지) 자를 써서 ‘만지도’라고 불리는 섬. 그만큼 사람의 손때를 늦게 타 자연환경이 깨끗하게 보존된 섬이다. 요즘은 ‘지치고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에 만지도’라는 설이 더 유명하다.
물고기와 배, 등대 모양의 그림들이 그려진 방파제를 따라 마을 쪽으로 걸었다. ‘문어와 군소를 잘 잡는 만지도 최고령 할머니 임인아 댁’. 마을로 들어서니 집마다 집주인을 소개한 문패를 내걸어놨다. 할머니 옆집은 만지도에서 직접 기른 전복만 판매하는 ‘전복 생산자의 집’이고, 만지봉으로 오르는 골목 입구에 위치한 천지펜션은 ‘우리나라 최초 3관왕 카누선수 천인식 선수가 태어나고 자란 곳’, 통나무펜션은 ‘양식업으로 대통령 훈장을 받은 어르신 댁’이다. 옆집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에게는 그저 부러운 마을 풍경이다.
만지도연대도유람선(연명선착장)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연명길 30
마을길을 지나 만지산으로 향했다. 산 정상인 만지봉의 높이는 99.9m. 해안도로를 한 바퀴 돌아오는 탐방로는 2.2㎞다. 이 구간을 ‘만지도 몬당길’로 부르는데, ‘몬당’은 산을 넘어가는 고개를 일컫는 사투리다. 말 그대로 정상의 높이가 100m에도 못 미치는 야트막한 오솔길인 것. 그래서 ‘만지산 정도야’ 하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마을길을 걸을 때까지도 그랬다. “만리봉까지 금방 올라갑니다.” 여러 번 만지산을 올랐을 주민의 말에 또 한 번 안심했다. 하지만 웬걸, 이글거리는 태양에 걷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 성큼성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간 걷기 운동을 게을리한 내 탓임을 알고 반성하며 걸었다.
그래도 몬당길에서 만난 나무가, 꽃이, 멀리 보이는 바다가 힘든 산행을 위로해줬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이 흐르는 땀을 식혀주었고,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무성해진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되었다. 섬의 명물인 ‘200년 해송’도 볼 수 있었는데, 해송을 만지면 200년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해 몇 번이고 어루만지기를 반복했다.
길은 해안도로로 이어졌고, 몽돌해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닷물이 너무나 푸르고 맑아 그냥 그대로 빠져들고 싶었다. 바다 위 고깃배에서 한가로이 그물을 정리하는 어부의 모습도 정겹게 느껴졌다. 바닷바람에 온몸이 시원해진다.
출발지였던 선착장까지 오면 출렁다리가 보인다. 2015년에 만지도와 이웃 섬인 연대도 사이에 생겼는데, 이 출렁다리 덕분에 이제 배를 타지 않고 연대도를 걸어서 갈 수 있게 되었다. 두 발아래 펼쳐진 바다와 아름다운 자연이 출렁다리 위에 서니 더 아찔하고 환상적이다.
*만지도연대도유람선(연명선착장)→만지도
15분 소요(8시 30분 첫 운행을 시작으로 30분에서 1시간 마다 운행)
이번 여행의 주 행선지는 만지도였지만, 통영에 오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통영시 중앙동 수산시장 뒤쪽 언덕에 자리한 동피랑 벽화마을이다. ‘동쪽 벼랑’이라는 뜻의 동피랑은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2007년 벽화가 그려지고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찾는 통영의 대표 명소가 되었다.
피랑 벽화마을을 걷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오르막길인 데다가 모양이 구불구불 제멋대로인 탓이다. 그래도 낡은 벽을 캔버스 삼아 알록달록한 색채의 그림을 구경할 수 있으니 지루할 새 없이 오를 수 있다. 동피랑 벽화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는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동포루(東砲樓)가 있는데, 이곳에 서서 항구를 바라본다. 저물어 가는 하늘과 잔잔한 바다, 나란히 정박해 있는 배들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나란히 정박해 있는 배들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동피랑이 벽화마을로 된 지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곳을 방문한 것도 벌써 다섯 번째. 그런데도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건 비바람에 그림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 덕분일 테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느릿느릿 걸으며 만난 통영의 풍경이 벌써 그리워진다.
동피랑 벽화마을 경상남도 통영시 동피랑1길 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