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광

text. 최선주 photo. 정우철

종종 꽃을 싫어한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그들은 온갖 화려한 것들에 시각이 무뎌져 그렇게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붉디붉은 색감에, 오묘한 생김새의 이 꽃을 보고도 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송이 자체로도 시선을 압도하며, 흐드러지게 핀 군락으로 발길을 절로 멈추게 하는 꽃. 상사화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런 영광이 또 있으려나.

만나서 영광입니다

멀기도 멀다던 영광을 가게 될 줄이야. 영광을 목적지로 정한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상사화였다. 언젠가 우연히 본 사진 속 상사화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잘 보지 못할, 이 상사화가 천지에 널려있다니! 멀지만 모험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멀지만 사실 영광은 KTX를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광주송정역에서 차로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니까.

축제장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불갑산 상사화 축제가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축제인만큼 곳곳에서 안내원들이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다.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싶어서 불갑산 상사화 축제가 열리는 마지막 날 찾았지만, 웬걸. 축제 마지막 날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로 축제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붐비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축제 기간을 피해 방문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싶다.

불갑산 전남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로 450

신비로운 상사화를 보며 걷는 길

불갑사 주변은 꽤 오래전부터 전국 최대 상사화 군락지로 입소문이 자자했다.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고. 축제장을 들어서면 모시송편, 막걸리 등 영광의 각종 먹거리를 판매하는 상인들의 부스를 만나게 된다. 복작거림을 뒤로하고 열심히 걷다 보면 붉은 빛을 드러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사화를 만날 수 있다. 산으로 들로 눈길이 가는 곳마다 핀 상사화의 모습에 나오는 건 감탄사뿐. 몇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개화 시기가 끝날 때쯤이어서인지, 시들어 색이 바랜 꽃들과 사람들에게 짓밟혀 꺾인 꽃이 많았다는 거였다. 안내원들의 말처럼 눈으로만 담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의 욕심에 짓밟힌 상사화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상사화는 생김새만큼이나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때는 잎이 없다는 것. 이 사실을 알고 바라보니 만개한 꽃들은 신기하게도 잎 없이, 꽃줄기를 타고 피어있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꽃말이 ‘애틋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생각하기 때문에 붙여졌단다. 꽃말을 알고 보니 뭔가 더 애틋하고 처절해 보이기도 했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초록 숲에 상사화가 가장 아름답게 어우러진 포토존이 나온다. 이미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소문난 스폿이어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대기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걷고 쉬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불갑사에 도착했다. 불갑사를 지나면 등산객들을 위한 등산코스가 있지만, 일정이 촉박한지라 잠깐 목을 축이고 내려오는 걸 택했다. 애초의 목적은 상사화였으니까.

아직 한 번도 당신을 직접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어긋나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
- 이해인 <상사화> 中 -

상사화만큼이나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상사화 반, 사람 반이었던 상사화 축제장을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로 갈 차례다. 숲에서의 오전을 즐겼으니 바다를 보며 쉬어가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하여 다음 코스를 백수해안도로로 정했다. 백수해안도로의 길이가 무려 16.8km. 영광군 백수읍 백암리에서 대신리를 거쳐 길용리까지 이어지는 긴 해안도로다. 영광 칠산 앞바다의 구불구불한 해안을 따라가야 하기에 어느 정도의 운전 실력을 갖춘 사람이 운전대를 잡길 바란다.

불구불한 도로를 달리며 해안절벽, 모자바위, 거북바위, 암초, 칠산도, 안마도, 송이도 등을 볼 수 있다는 게 백수해안도로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마냥 달리기만 하면 재미없을 텐데, 중간 중간 쉼터도 있고 산책 코스도 만들어 놔서 주차를 해두고 마음에 드는 코스에 오래 머무를 수도 있다. 특히 노을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서, 일부러 일몰 시간을 맞춰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해안도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영광에서의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어 대신등대 근처에서 노을을 기다렸다. 날은 좋았지만, 넓은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 탓에 ‘환상적’이라던 노을을 담지는 못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긴 도로를 달리며 마음에 드는 곳에서 머무르다가, 달리다가를 반복하며 그보다 더 멋진 풍경들을 담을 수 있었으니까.

붉은 상사화 이끌려 붉은 노을을 기다리며 마무리했던 영광에서의 하루. 보통 때보다 일찍 시작된 하루에 조금은 피곤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여행지의 모습을 알게 되어 마냥 좋았다. 영광이 뭐 별건가. 좋은 기억 하나 남기고 가면 이게 바로 영광이지.

백수해안도로 전남 영광군 백수읍 구수리 419-5

“백수해안도로의 길이가 무려 16.8km.
영광군 백수읍 백암리에서 대신리를 거쳐 길용리까지 이어지는 긴 해안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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