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흐르는
부산의 가을

text. 김주희 photo. 정우철

가을의 정석은 단풍이라고 했던가. 해마다 오가는 계절이라지만 저마다의 경험과 정서에 따라 단풍을 맞는 감흥의 깊이는 매년 다를 것이다. 올해 부산의 가을은 어떤 얼굴일까. 붉게 물든 숲과 황금빛 갈대, 청명한 바다, 부드러운 대지까지 충만한 계절을 드리웠다. 위드 코로나 시대, 답답함을 벗고 숲길에서, 바다 곁에서 함께 거닐어보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린 풍경, 부산의 가을 속으로.

가을 앞에서 자연은 가장 아름다운 작품

숲은 계절을 가장 진솔하게 기록한다. 그 안에서 철 따라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는 나무는 가장 자연스럽고 고귀한 ‘작품’으로 자리한다. 기장군에 자리한 용소웰빙공원 또한 한껏 가을 색채로 물들었다. 농업용수로 사용되던 용소골 저수지와 그 주변을 자연생태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으로 걷기 좋게 단장되어 있다. 아담한 저수지에 빙 둘러진 나무 데크 길을 따라 느긋하게 산책할 수 있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붉게 물든 자태와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리한 습지를 가만가만 둘러보는 소박한 즐거움을 누린다. 짧은 출렁다리 구간을 지나면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즐비한 길과 산 방향의 흙길로 나뉜다. 어느 쪽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산책을 즐기면 그만이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둑길 전망대에 다다른다. 탁 트인 하늘과 숲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저수지, 잔잔한 수면의 파동에 몸을 맡긴 배 한 척 그리고 시야 끝에 걸리는 고속도로 교량까지. 다채로운 요소가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는 정자와 벤치, 나무 그네가 자리해 원하는 곳에서 이 모든 것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한적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비일상의 즐거움을 한껏 고취해준다.

용소웰빙공원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서부리 산7-2

순수한 생태를 간직한 갈대 사이로

부산의 바다를 화려하고 웅장한 해운대나 광안리로만 기억했다면 다대포해수욕장은 확연히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낙동강 줄기와 바다가 만나는 지역 특성상 순도 높은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생태 탐방로인 고우니 생태길을 온전히 즐기려거든 온몸의 감각을 활짝 열어둔 채 걸어야 한다. 사방으로 펼쳐진 드넓은 갈대밭 사이사이를 거닐면 계절을 낱낱이 실감하게 된다. 선선한 가을바람의 방향에 따라 유려하게 몸을 뉘는 갈대가 황금빛 물결을 이룬다. 사각사각 갈대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까지 더해진다. 갈대밭 너머로 언뜻언뜻 바다가 보이고, 공항과 가까운 덕분에 시선을 줌 아웃하면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낭만적인 풍경도 담을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거닐다 보면 해수천을 발아래 두게 되는데, 구멍이 송송 뚫린 갯벌 사이로 엽낭게와 달랑게들이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재첩, 조개, 해수식물, 철새 등 다양한 생명체들의 움직임에서 역동적인 생명력이 느껴진다. 일순 자연에 대한 경이감이 밀려오면서 우리와 자연의 공존이 얼마나 귀중한지 깨닫게 된다.

다대포해수욕장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하늘과 바다를 수놓은 온화한 노을

다대포해수욕장은 자갈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모래 지형으로 순한 풍경을 자아낸다. 해변 쪽 갈대밭 사이를 드나들면 바다를 배경으로 갈대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일몰 명소로도 유명한 이곳에서는 해 질 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바다와 하늘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며 지는 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두 눈으로 힘껏 껴안아볼 것. 평범하고 무감하던 일상이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다. 다대포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꿈의 낙조 분수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맞춘 라이트 쇼가 진행되는데, 다채로운 빛깔이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누군가는 만추를 겨울에 다다른 결핍의 계절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을은 한 해를 열심히 살아낸 자연이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는 풍경이기도 하다. 단풍 또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한 해를 위한 겨울 채비의 과정인 셈이다. 이 숙연한 계절을 눈으로만 즐기는 것을 넘어 만추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다 보면 은근한 감동이 밀려올 터. 가을이 흐르는 부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만추를 겨울에 다다른 결핍의 계절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을은 한 해를 열심히 살아낸 자연이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는 풍경이기도 하다.
단풍 또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한 해를 위한 겨울 채비의 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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