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VOL.311
text. 권글 illust. 오하이오
유난히 삶이 지쳐만 가고 하는 일은 잘 안 풀려 인생이 자꾸 삐걱거린다고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자존감 역시 많이 떨어지다 보니 스스로 삶을 결정하기보다는 주변사람의 말에 휘둘리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가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막상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미래는 더 불투명하게 느껴졌다. 공허한 마음에서 벗어나 불안감을 숨길 피난처를 찾게 되었고 그 순간 신기하게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나눔 소리’라는 이름을 가진 합창단의 단원 모집 공고였다.
그전에도 항상 뭔가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늘 바쁘다고, 가진 것이 없다는 핑계로 나눔을 미루고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그 공고를 본 순간 물질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닌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합창단에 지원을 했다.
‘나눔 소리 합창단’은 평소 노래와 봉사 그리고 나눔을 좋아하는 단원들이 모여 음악회, 노래 봉사 등을 통해 후원금을 모집하고 소아암, 희귀난치병 아이들을 돕는 봉사 단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하며 봉사를 하다 보니 불안했던 마음도 한결 안정적으로 바뀌고 삶의 만족도도 많이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처음 호스피스 병동에 노래 봉사를 가기로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선뜻 나도 봉사에 참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었고 신청이 거의 끝날 때까지 대답을 망설였다. 사실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아이들처럼 어린 시절에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원을 했던 이유도 ‘백혈병’이라는 혈액암의 한 종류로 어떻게 보면 내가 봉사를 통해 돕고 있는 그런 아이들이 사실은 과거의 나라고 봐도 무방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놨기에 다시 꺼내는 것이 겁나고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그 기억들은 10년이 넘었고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기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리고 봉사를 하러 가는 당일, 애써 두려운 마음을 숨기며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했다. 병실에 도착을 하자 과거 기억 속 잊고 있던 병실의 풍경과 그 안에 풍기던 냄새들이 떠올랐다. 아득한 저 먼 과거 기억의 만남으로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졌다. 봉사가 시작되고 여러 병실을 돌며 그동안 준비했던 노래를 불렀다.
호스피스 병동의 아이들은 대부분 면역력이 낮다. 외부의 병균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그래서 노래를 불러도 아이들의 제대로 된 표정을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하나, 둘 아이들이 입원해있는 병실을 돌다 보니 마스크 속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다가 아이들의 해맑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너희도 언젠가는 건강한 어른이 될 거야. 그리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 아이들도 나처럼 건강해지길 진심으로 응원했다. 문득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병원에서의 투병생활로 온갖 고통과 공포의 기억들. 사실 내 앞의 아이들은 과거의 나였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말들은 어른이 된 내가 어린 시절에게 나에게 해주는 응원이었을지 모른다. 처음 느끼던 두려웠던 감정이 이내 사라지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난 깨달았다. 나눔이란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아주 사소한 일부라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또 진심으로 마음을 나눈다면, 나누는 순간 분명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하루 하나씩 당신에게 권하는 글을 쓰는 작가 권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이들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를 전하고 있다. 서른을 넘긴 지금은 작가뿐 아니라 가수, 동기부여 강연가, 기획자, 유튜버 등 다양하게 활약 중이다. 자기 삶을 담은 글과 노래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삶의 이유와 살아갈 동기를 부여하며,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게요>, <서른 살 다시 꿈을 노래하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