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자연과
역동적 산물의 공명
포항

text. 김주희 photo. 정우철

우리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몰입’이 아닐까. 새로운 환경과 경험에 몰입하면서 까맣게 잊고 지내던 삶의 가치를 회복하기 때문이다. 차갑고 무거운 철강의 도시로 알려진 포항이 최근 새로운 콘텐츠를 입고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났다. 천혜의 자연과 역동적인 인공 구조물을 동시에 품은 채 여행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준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고 마침내 ‘감화’를 이끄는 포항으로 떠났다.

자연과 시간이 이룩한 힐링 로드

바다를 곁에 두고 걷는 것은 무감하던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과 다름없다. 시야에 가득 찬 쪽빛 바다와 아우성치는 파도 소리, 살결에 닿는 청량한 바닷바람, 바다 특유의 냄새를 품은 습기까지. 바다는 공감각적 경험을 안겨주며 보행의 즐거움을 증폭시켜준다.

포항 남쪽의 청림 해변에서 상생의 손 호미곶에 이르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에서는 경이로운 자연과 영겁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약 25㎞의 4개 코스로 이루어진 둘레길 중 2코스 선바우길에는 해상 데크길이 이어지는데, 길 왼쪽으로 탁 트인 동해 풍경이 자리하고 오른쪽으로는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무엇보다 이곳을 제대로 누리려거든 걸음을 한없이 늦춰야 한다. 신생대 제3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지형은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장관을 연출한다. 아득한 시간 동안 풍화된 독특한 형상의 바위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하나하나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0여 m 높이의 절벽에서 물이 흘러내린 자리가 그대로 패인 폭포바위를 비롯해 고릴라를 닮은 킹콩바위, 왕관 형상이 두드러진 여왕바위 등등 자연이 만든 조각품이 즐비하다. 백색 절벽인 힌디기는 화산재가 쌓여서 만들어진 벤토나이트 암석으로 형성된 것으로 깊은 운치를 자아낸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호미로 2790번길 20-18

바다 곁 고아한 누각 위에서

차가운 철의 도시로 알려진 포항은 천 가지 표정의 바다를 품었다. 화려하거나 소담스럽거나, 204㎞에 이르는 긴 해안선을 따라 20여 개의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자리한다. 그중 북구에 자리한 영일대해수욕장은 포항역이나 시내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아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콘텐츠가 곳곳에 자리해 요목조목 둘러보는 즐거움이 크다.

이곳을 대표하는 전통 누각인 영일대는 우리나라 최초 해상 누각으로 바다 한가운데 심은 돌기둥 위에 세워졌다. 석조다리와 기와지붕의 목조 구조물이 장엄한 바다와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놓인 영일교를 건너 영일대 2층에 오르면 푸른 바다가 발아래서 넘실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시선을 멀리 보내면 영일만 일대와 제철소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해수욕장 주변에는 장미를 테마로 한 장미원이 자리하는데, 장미 형상의 조형물이나 설치작품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남기기에도 그만이다. 영일대는 해가 지면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낸다. 바다 건너 자리한 제철소에서 LED 조명을 반짝이며 화려하고 신비로운 야경을 선사한다.


영일대는 우리나라 최초 해상 누각으로 바다 한가운데 심은 돌기둥 위에 세워졌다.
석조다리와 기와지붕의 목조 구조물이 장엄한 바다와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일대해수욕장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두호동 685-1


빛을 머금은 소우주

영일대해수욕장 인근에 자리한 환호공원은 지금 가장 사랑받는 ‘핫플’로 거듭났다.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철탑이 우뚝 솟았는데, 공원의 평온한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며 짜릿한 입체감을 선사한다. 바로 도보체험 구조물 ‘스페이스 워크’다. 땅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그 압도적인 장관에 사로잡힌다. 견고하면서도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고, 차가우면서도 신비스러운 풍경을 보여준다. 총 길이 333m, 최대 높이 57m의 트랙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덕분에 직접 두 발로 걸으며 ‘살아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아찔하고 오싹한 느낌이 밀려든다. 마치 우주를 걷듯,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두 발 아래 땅을 거느리게 된다. 거센 바닷바람이 불어올 때면 철제 구조물이 살짝 휘청이는데, 이마저도 짜릿한 쾌감으로 다가온다. 온갖 두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정상에 도착하면 영일대 해변과 제철소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의 클라이맥스 야경이다. 밤이 되면 형상을 따라 빛이 부드럽게 너울지며 이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인공적인 ‘산물’이 빚어낸 독특한 아름다움은 어둑한 ‘하늘’의 존재를 더욱 또렷하게 일깨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인위적인 지점에서 자연의 힘을 새삼 곱씹게 된다. 포항의 밤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철탑이 우뚝 솟았는데, 공원의 평온한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며 짜릿한 입체감을 선사한다. 바로 도보체험 구조물 ‘스페이스 워크’다. 땅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그 압도적인 장관에 사로잡힌다.



환호공원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환호동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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