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대한 생각

소극적으로 좋은 이웃 되기

글. 황보름(작가) 일러스트. 오하이오

갑자기 경기도에서 일을 하게 된 바람에 지난 일 년 언니네 집에서 함께 살았다. 방 세 칸 있는 30평대 아파트에서 방 하나를 떡하니 차지해 버린 것. 간단한 옷가지와 노트북 등 최소한의 짐을 들고 언니네 집으로 들어온 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쩔 수 없이 얹혀살게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사람 많고 복작거리는 서울과 달리 한산하고 조용하고 뭔가 좀 부족한 듯한 이 동네가 나는 무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언니네 가족이 처음 분양 받아 이사할 때만 해도 편의점 하나 생기는 것이 사건이던 곳인데, 올 때마다 갈 곳이 늘더니 이젠 제법 생활이 가능한 동네가 되었다. 5분 거리 안에 웬만한 건 다 있었다. 바닐라 라테가 유독 맛있는 카페도, 대형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부족함 없는 중형 마트도, 테니스에서 방송 댄스까지 다양한 운동 시설도. 그리고 5분 거리 안엔, 물론 이웃도 있었다. 그것도 그냥 존재만 하는 이웃이 아닌 ‘진짜’ 인사를 나누는 이웃. 이곳에서 사는 일 년간 나는 매우 오랜만에 이웃의 존재를 의식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집 근처를 걷다가 마주친 누구와도 인사할 일이 없었는데, 이곳에선 객식구인 나도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조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네트워크 안에서 언니가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100배 정도 사교적인 언니를 언니라 부르는 사람들이 나에게도 언니라 부르며 인사를 해왔다. 놀이터에서 조카와 놀다가 인사를 했고, 플라잉 요가를 하느라 해먹에 매달렸다가 눈이 마주쳐 인사를 했으며, 편의점에서 술을 잔뜩 사서 나오다가도 인사를 했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어울릴 때를 제외하고, 일터가 아닌 동네에서 이렇게 이 사람 저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살게 된 건 정말 처음이었다.

객식구인 내가 이렇게 인사를 나누며 살아갈 정도이니, 언니는 사실상 그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일상이 흘러간다고 할 수 있었다. 아이를 등하교시킬 때도, 아이를 줄넘기, 축구 학원에서 데려올 때도, 아이에 관한 상담을 할 때도 언니는 이웃을 만났다. 처음엔 아이 때문에 억지로 만나나 했는데 아니었다. 언니는 그들을 좋아했고 관계를 즐겼다. 그들 또한 그래 보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이웃은 언니의 오래된 절친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언니의 일상을 채워주었다. 오후의 커피, 저녁의 맥주, 밤의 노래방을 함께 하는 이웃. 아이가 사라져 가슴이 철렁할 때 아이의 위치를 제보해주는 이웃. 서로의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 가족 단위로 놀러 다닐 수 있는 이웃. 김치를 나누고 고향 음식을 나누는 이웃. 응답하라 시리즈 속에만 존재할 줄 알았던 이웃이 경기도 신도시 아파트 단지 내에도 존재하고 있던 거였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이웃들 틈에 끼어 나도 가끔 풀어진 마음으로 맥주를 홀짝였다.

지금은 언니네 방에서 나와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살고 있다. 찻길만 건너면 언니네 집인 곳에 살림을 채워 놓고 조용히 살아간다. 물론 이사 온 이곳에선 단지를 아무리 쏘다녀도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다. 택배가 옆집으로 잘못 간 바람에 옆집 이웃을 한 번 보긴 했지만, 아직 그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진 못했고 어쩌면 아마도 이곳에 살 동안 말 한마디 안 나누게 될지도 모른다. 이 세상엔 응답하라 시리즈 속 (내 언니의 이웃 같은) 이웃들도 존재하지만, 나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소극적인 이웃도 존재하는 법이니까.

소극적인 이웃인 나는 그럼에도 좋은 이웃은 되고 싶다. 그러니까 정말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집에서 걸을 때면 발소리를 신경쓰고, 밤엔 영상 볼륨을 줄이며, 의자를 끌지 않고,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엔 세탁기를 돌리지 않는다. 이토록 간단한 것이 잘 지켜지지 않아 이웃을 미워하게 되는 요즘, 나는 적어도 내 이웃의 스트레스 원인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내 집에서 조용히 살았다. 그야말로 있는 듯 없는 듯.

황보름(작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도 매일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지 않고 있다. 최근 출간한 신간 <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밖에 <매일 읽겠습니다>, <난생처음 킥복싱>,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등의 책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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