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유 1인당 2개까지만’. 지난 5월 국내 대형마트에 붙어있던 문구이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다. 주요 이커머스(E-Commerce)에서도 10개 이하로 식용유 구매제한을 걸었다. 대체 식용유에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가. 비단 식용유뿐만 아니다. 밀가루 역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졌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이상기후, ‘수출 금지’, 여기에 사재기까지. 일부에선 “‘자원의 무기화’가 시작됐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특히, 이런 상황은 안 그래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더 악화시키는 중이다.
글. 정철진
(경제칼럼니스트,
진 투자컨설팅 대표)
식용유는 우리 식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재료이다. 보통 콩기름, 해바라기유, 카놀라유, 올리브유, 포도씨유 그리고 가공 업체에서 주로 사용하는 팜유 등을 ‘식용유’라고 통칭한다. 그런데, 지금 이 식용유의 수급이 깨지면서 공급이 부족하고, 그 결과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식용유 대란의 시작은 우크라이나 사태이다.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유 최대 수출국으로 전 세계 사용량의 5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전쟁으로 이 물량이 막히자 나머지 식용유들의 수급이 연쇄적으로 깨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콩’ 자체의 공급이 최근 2년 넘게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콩 생산국들은 남미에 포진돼 있고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데 지난 2021년 극심한 가뭄과 이상기후로 콩 농사를 망쳤고, 올해도 출하량이 대폭 줄었다. 이렇게 콩기름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면서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가 결정타를 날렸다. 지난 4월 말 전격적으로 팜유 수출 금지령을 선포했기 때문이다.(이후 한 달여 만에 수출을 재개한 상태이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와 함께 세계 팜유공급의 80%를 담당한다. 우리는 팜유의 절반을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팜유는 가정용 식용유는 아니지만 사용처는 매우 광범위하다. 라면을 비롯한 각종 인스턴트식품, 과자와 빵 아이스크림 등은 물론이고 화장품과 비누, 샴푸 등의 세제 그리고 양초에도 이 팜유가 쓰인다. 팜유에서 수급이 더 악화되면 본격적인 소비자물가 급등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식용유 가격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A사 콩기름(900㎖)의 5월 평균 판매가격은 전년동기대비 33.8% 올랐다. 다수의 식용유 가격도 연초 이후 10% 넘게 상승했다.
다만, 정부는 현재까지 무슨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대 4개월치 재고를 확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금지 사태에도 업소용·가정용으로 사용가능한 ‘대두유’를 미국·아르헨티나 등으로부터 조달하고 있다고 한다. 식용유 제조사들도 “추가적인 가격인상은 없다”면서 소비자들의 우려를 잠재우고, 유통업계도 “지금 대형마트 등에서 실시하는 구매제한은 심리적 차원이지 공급에는 아직 문제가 없다”라고 했다.
즉, 식용유 공급차질 이야기에 사재기와 매점매석이 극심해지면서 ‘구매제한’으로 선제적 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당국도 지금 매점매석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엔 밀가루가 또 도마에 올랐다. 인도의 ‘밀 수출 금지’때문이다. 밀가루도 식용유와 비슷한 패턴이다. 밀가루 세계 1위 수출국인 러시아, 5위인 우크라이나의 밀가루 물량이 부족해지면서 수출 8위(생산량 2위)인 인도가 자국 물량을 확보를 위해 밀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한 것. 또한 주요 밀 생산국들인 미국과 캐나다는 최근 2년째 극심한 가뭄으로 작황이 나빠지고 있다. 이미 국제 밀 가격은 최근 1년만에 41%가 올랐는데, 세계은행은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1년간 추가적으로 40%가 더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사료용 밀가격도 덩달아 올라 사료를 먹는 육류 가격이 함께 오르면서 전반적인 먹거리 가격을 다 끌어올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제2의 인도네시아, 인도가 또 나올 수도 있다. ‘자원의 무기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첫걸음으로 원자재와 농산물의 대외 수급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