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와
커피 한 잔

text. 성호철(기자) illust. 오하이오

작년 10월에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를 만났습니다. 백팩을 멘 그녀는 언제나 경쾌합니다. 킬힐만큼이나 도도한 백팩이랄까. 미국 명문대인 웰즐리대학을 나왔고, 골드만삭스, 맥킨지앤드컴퍼니, 테마섹홀딩스, 베인&컴퍼니를 다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이 모두 의사고요. 누구는 그녀를 성공한 창업가라고 부릅니다. 정작 그녀는 “대체 뭐가 성공의 조건인가요?” 하고 되물을 것 같지만.

“창업 2년차 때인데요”라고 말했습니다. “투자 유치 피칭을 100번 넘게 했어요. 100번요. 모두 실패했어요. 시리즈A 될까 말까 한 시점인데 돈은 다 떨어졌어요. 불러만 주면 무조건 피칭하러 갔어요. 한 번은 벤처캐피털을 찾아갔더니 오피스도 못 올라가고 1층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는 나왔어요. ‘아는 분이 소개해서 만나긴 했는데, 미안하다’라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어떤 투자자는 김 대표가 여자라서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게 저라서 미안합니다” 하고 돌아섰답니다. 한 번도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는 건 그녀의 습관인 듯했습니다.

세상 모든 스타트업을 응원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쫌아는기자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서 벌써 창업가 70여 명을 만났지만 당최 모르겠답니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뭐가 다를까요?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인 벤 호로위츠는 숱한 창업가에게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느냐’를 물었더니, 고만고만한 최고경영자(CEO)들은 자신의 뛰어남을 자랑하는 데 업(業)을 이룬 사람들은 “그만두지 않았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어느 책에 썼습니다. 김슬아 대표는 수백 번 넘는 탁월한 판단을 했을 테고 고비 때마다 운(運)도 따랐고 좋은 지인들을 곁에 뒀을 테지요. 하지만 진이 쏙 빠지는 피칭을 한 번만 경험해 봤다면 알 겁니다. 회사 통장에 잔고가 없는데 100번이나 피칭을 실패할 때의 심정이 어떨지. 100번쯤 그만두고 싶었겠지요. 김슬아 대표는 학창 시절 추억처럼 얘기했지만.

두세 번 만난, 퍼블리의 박소령 창업가는 대뜸 “수도승처럼 살아요”라고 합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괜히 던졌다 싶었습니다. “매일 밤 12시쯤 일을 마치고, 석촌호수를 뛰어요. 3km정도요. 땀이나요. 맥주 한잔 마시고 2시쯤 잠들었다가 8시에 일어나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오늘의집 이승재 창업가는 “순례자처럼 일한다”라고 합니다. 오늘의집은 창업 후 30개월 동안 매출이 ‘제로’였습니다. 순례자가 아니면 견디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야기가 샛길로 샜는지도요. 기고 요청받을 때 에세이 주제가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다른 이유’였습니다. 답요? 물론 창업자의 능력과 운, 인재와 돈(투자금)입니다. 하지만 진짜는 그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또 견디는 창업자, 그 자체가 아닐까요. 친한 벤처캐피털 대표가 사석에서 전한 말입니다.

“나는 말이야, 투자 결정할 때, 창업자가 중간에 포기할 사람인지, 끝까지 버틸만한지만 봐. 그 스타트업이 망해도 끝까지 버틴 창업가라면 또다시 창업할 테고 그때 다시 투자한다고. 결국 그들은 돈을 벌어다 주거든.”

성호철 기자

고등학교 때는 시인을 지망하다 대학은 국문과를 들어갔지만 현실은 20년째 신문 기자를 하고 있다. 문화부도 아니다. 주로 삼성전자나 네이버, SK텔레콤과 같은 테크놀로지 분야를 담당했다. 작년에 신문사 동료와 함께 ‘쫌아는기자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스타트업 창업가를 만나, 그들의 고민을 날것으로 다른 창업가에게 전하는 일이다. 의외로 많은 호응에 쫌아는기자들 취재팀이 놀랐다. 현재는 도쿄 특파원이지만 여전히 쫌아는기자들 프로젝트에 빠져있다. 서른살때 멋모른채 테크놀로지 번역서 <손에 잡히는 유비쿼터스>를 냈고 10년차 기자 때는 <소통하는 문화권력 TW세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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