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VOL.308
text. 최선주 photo. 정우철
봉평은 ‘메밀꽃’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동네다. 사실, ‘메밀꽃이 다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메밀꽃과 관련이 깊은 곳. 특히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조금은 애매한 시기인 9월 초부터 ‘평창효석문화제’를 열어 메밀꽃의 절정을 보여주기에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효석문학관과 효석달빛언덕 일대에서 열리는 평창효석문화제는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방문할 정도로 이름난 봉평의 전통 축제. 자연과 문학이 함께하는 특별한 콘셉트로 나만의 책 만들기, 백일장과 시화전, 봉숭아 물들이기, 뗏목 타기 등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양한 즐길 거리로,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프로그램도 으뜸이지만, 그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코 문학관 앞에 펼쳐진 드넓은 메밀밭. 축제가 열리는 시기에는 밭이 전부 하얀 메밀꽃으로 꽉 채워져 메밀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축제의 80%는 즐긴 셈이다.
오죽하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이런 구절이 나오겠는가.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처럼 이제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로 평창효석문화제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축제는 올해도 취소였다.
코로나19로 2년여간 열리지 않아서 올해는 개최될 거란 소식에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었지만, 폭우와 작황, 코로나19 재확산 등의 사정으로 취소를 결정했다는 게 개최 측의 이유였다.
여행 직전에 축제 취소 소식을 들었지만,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이 궁금해 그래도 봉평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있는 그대로의 여행을 받아들이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니던가.
지나가는 주민의 말에 의하면, 올해는 메밀꽃 파종을 두 번이나 했지만 예쁘게 열리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봉평은 처음인지라 이전의 메밀꽃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2022년의 메밀꽃도 나쁘지 않았다. 찾았던 날에 비가 내린 걸 감안하면 이만한 메밀꽃밭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게 반가울 정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사람들은 문학관 앞에 만개한 메밀꽃밭에서 사진을 찍기 바빴다.
메밀꽃밭을 한참 바라보다 보면, 가산 이효석 작가가 절로 생각이 난다. 그의 일생이 담긴 이효석문학관과 효석달빛언덕이 있기 때문.
사실 마을 곳곳이 ‘이효석’ 혹은 ‘메밀꽃’ 이름 석 자가 붙지 않은 곳이 없기에 이효석의 작품을 읽지 않았어도 절로 호기심이 생길 정도다. 이효석문학관에서 효석달빛언덕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매표를 하고, 천천히 그의 일대기를 되짚어 봤다. 문학관에서는 한국 현대 단편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메밀꽃 필 무렵>부터 <개살구>, <고사리>, <들> 등 그의 다양한 작품들과 삶을 살펴볼 수 있고, 효석달빛언덕에서는 그가 살았던 생가를 비롯해 <메밀꽃 필 무렵>의 소재로 나왔던 나귀외양간, 이효석이 평양에서 거주하던 집을 재현한 푸른집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공원처럼 넓은 부지에 다양한 볼거리를 구성해 놓은 효석달빛언덕의 모든 공간이 매력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이효석이 평양에서 거주하던 집을 재현한 푸른집이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이효석은 붉은 벽돌에 담쟁이넝쿨이 둘러싸인 이 푸른집에서의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라고. 푸른집을 빠져나와 연인의 달, 꿈꾸는 정원, 하늘다리, 근대문학체험관을 지나면 효석달빛언덕에서의 산책도 마무리된다.
메밀꽃으로 시작해서 이효석으로 마무리되는 봉평 여행을 누군가는 ‘별것 없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족족 저마다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곳의 면면을 알아차렸다면, 결코 별것 없는 여행이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