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대한 생각

정원에서 배운다

글. 나태주(시인) 일러스트. 오하이오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원의 일처럼 지향 없고 끝이 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만큼이면 됐다’ 싶어 일손을 멈추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미처 하지 못한 일이 남아있고, ‘오늘은 끝이다’ 싶어 일을 끝내고 내일 다시 와서 보면 미진한 일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풀들이 우북하게 자라나 있고 낙엽이나 쓰레기같이 불필요한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원의 일을 하려면 그저 쉼 없이 돌봐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정원의 주인이 되어 살려면 정원의 종이 되어서 사는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정원의 일을 하면서 배우고 새롭게 느끼고 깨닫는 것들도 많다. 무엇보다도 계절의 변화를 알게 되어 기쁘고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되어서 좋다. 흔히들 인간과 자연이 대립관계인 것처럼 알고 있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나 자연 안에서의 인간이다.

봄은 찬란한 탄생의 세기(世紀). 날이 풀리고 햇살이 따스해지면 온갖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하지만 식물을 두고서도 인간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잡초네 화초네 그러는 것도 인간 편에서 화초로 보이면 화초가 되고 잡초로 보이면 잡초가 된다.

봄이 와서 가장 무성하게 자라는 풀은 민들레와 개망초다. 환영하지도 않는데 문학관 여기저기에 뿌리를 내리고 잘도 자란다. 특히 잔디밭 틈새에서 잘 자라는 것이 민들레다. 다 같이 초록이기 때문에 보통 때는 구별이 안 된다. 그러나 꽃을 피웠을 때 민들레는 사람 눈에 들키게 된다.

“나도 꽃을 피웠어요!” 손을 들면서 피어나는 것 같은 민들레. 하지만 그런 민들레를 그냥 둘 수는 없는 일. 어제도 나는 점심 무렵 잔디밭에서 민들레를 몇 개를 호미로 캐어 그늘에 놓아둔 일이 있다. 오후 늦게 그 민들레를 찾아갔을 때 아주 놀라운 변화를 보게 되었다.

글쎄, 뿌리가 잘린 민들레가 그동안 꽃을 다 피운 다음, 깃털 씨앗을 만들어 매달고 있지 않은가! 이거야말로 경이(驚異)다. 모성의 거룩함이다. 저 자신은 죽어가면서 다음 세대를 온전히 준비하다니! 이런 민들레를 보면서 나는 인간의 일을 반성하게 된다.

과연 우리네 인간은 저러한 자연물인 민들레만큼이라도 자식 세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고 최선을 다하는가.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는 부모에 의한 자녀 학대 사건을 상기하면서 심히 부끄러운 마음을 갖는다. 나 자신도 젊은 시절, 아이들을 친절하게 대하지 못한 점을 뉘우치게 된다.

그나저나 올봄엔 꿀벌 때문에 말썽도 많았고 걱정도 많았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문학관 정원에도 꿀벌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 봄이 와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건 매실나무와 산수유와 앵두나무. 해마다 봄이면 그들 나무에 꿀벌들이 와서 붕붕대면서 꿀을 빨곤 했다.

하지만 올봄엔 꽃이 피었는데도 벌들이 오지 않았다. 왔다 해도 몇 마리 쓸쓸하게 오갔을 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후 변화와 드론 방제 때 사용한 농약 원액이 꿀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어 월동하는 동안 꿀벌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노라는 이야기다.

오늘도 나는 꿀벌이 걱정되어 문학관 정원을 오랜 시간 서성였다. 며칠 사이 새롭게 피어난 꽃은 산사나무다. 심은 지 몇 년이 되어 제대로 자리 잡은 산사나무가 올해는 아주 많은 꽃을 매달았다. 새하얀 너울을 뒤집어쓴 것 같은 산사나무. 그 밑으로 갔을 때 붕붕대는 꿀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벌들이 돌아왔구나.’ 가슴속에 기쁨의 강물 같은 것이 멀리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내일도, 또 내일도 나는 산사나무 꽃이 다 지는 날까지 문학관 정원의 산사나무 그늘 밑을 서성이면서 꿀벌 소리에 귀를 모으고 또 모을 것이다.

나태주(시인)

4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직 생활을 마친 뒤, 시를 짓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등단 이후 50여 년간 끊임없는 창작 활동으로 수천 편에 이르는 시 작품을 발표해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풀꽃>이 선정될 만큼 사랑받는 대표적인 국민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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