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VOL.306
text. 정철진(경제칼럼니스트, 진 투자컨설팅 대표)
‘기대 인플레이션’이란 경제 주체들이 향후 1년간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에 대한 전망치이다. 가령 지난 6월 국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6%였는데, 기대 인플레이션도 10년 만에 최고치에 육박했다. 한국은행의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6월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전월 대비 0.6% 포인트 오른 3.9%로 집계됐다. 2012년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였고, 상승 폭은 역대 최대치였다. 즉, 우리 국민들은 현재 물가가 엄청 높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추세가 1년 후까지도 계속 이어질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급격한 물가 상승 시기에 이렇게 기대 인플레이션까지 비정상적으로 치솟아 버리면 상황은 또 다른 국면으로 빠지게 된다.
가령 이렇게 생각해 보자. 현재 물가 상승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국제유가 폭등, 나아가 원자재 가격 급등이다. 그런데 유가가 잡히기 시작했고 세계 곡물가격도 안정돼간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제 물가는 바로 안정될 수 있을까. 아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상황이라면 경제 주체들은 다른 생각을 한다. 이런 물가 안정은 일시적인 것이고, 오히려 이참에 물건을 더 사놓아야 하고, 임금을 더 올려 받아야 하고, 음식 가격이나 서비스 비용도 더 올려야 한다고 대응하는 것이다. 즉,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시작한 물가 상승이 이제 전방위적인 가격 인상으로 전염된다. 그러다 유가가 갑자기 조금이라도 상승한다면? 다들 “그럼 그렇지” 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이건 마치 자기실현적 예언처럼 더 강화되기 마련이다.
중앙은행들은 한번 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중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현재 물가가 잡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 참여자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인플레이션’이란 기대도 완전히 없애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뿌리를 뽑는 거다. 생각해 보자. 금리는 0.5% 포인트, 0.75% 포인트, 아니 1% 포인트 올린다고 해서 국제유가가 떨어지고 국제 밀 가격이 급락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중앙은행은 이런 과정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을 확실하게 꺾어버리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과도한 물가 상승이 나오면 이를 누르기 위해 과도한 금리 인상을 선제적으로 진행하면서 물가와의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 있다. 바로 경기 침체이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결국 시중금리가 함께 오르는데 이러면 시중 대출금리도 오르고 원리금 부담이 늘어난 가계는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도 급등한다. 이것이 바로 중앙은행이 갖고 있는 딜레마이다. ‘산불’을 생각해 보자. 산불을 잡으려면 숨어있는 불씨 하나까지 다 꺼뜨려야 한다. 언제든 이 불씨가 큰불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때 불씨가 기대 인플레이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산에 있는 모든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다 파헤쳐 버릴 수도 없다. 그래서 금리 인상 과정에서 늘 경제지표를 챙겨야 하고, 경제 참여자들에게 “경제는 튼튼합니다”라는 신호를 주면서 긍정적인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 이게 바로 중앙은행의 ‘실력’이다.
미국은 지난 6월 0.75% 포인트 금리를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시장은 오히려 탄탄하게 버텨냈다. 이러면 통화정책을 펼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추가적인 자이언트 스텝 여력이 생기고, 확실하게 기대 인플레이션을 꺾는 발판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경제 참여자들에겐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물가만 잡히면 다시 경기 부양할 수 있습니다”라고 우회적인 신호도 줄 수 있다.
이제 한국은행의 차례이며, 이어 유럽중앙은행(ECB)도 인플레이션, 나아가 기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굳이 물가가 먼저냐?” 아니면 “경기도 고려해야 하냐?” 중 선택하라고 하면 무조건 물가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미 한국은행도, 또 각국 중앙은행도 이 길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