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시선이 과거의 소제동을 지금에 이르게 했다.
어쩌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이 동네가 품은
이야기와 역사에 주목했고 옛것을 지켜 새로움을 입혔다.
이제 꽤 많은 사람의 시선이 소제동에 머문다.
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대전역 동광장으로 나오면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소제동. 부담 없이 걷기 좋은 위치라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옛날 가옥들에 요즘 감성을 더한 카페, 숍, 식당들이 오픈하면서 유명해졌다.
제아무리 길치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동네지만, 그래도 어렵다면 대전역 동광장에서 나오면 보이는 ‘대전전통나래관’을 향해 걸어보자. 역에서 동광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보이는 곳이라 무작정 그쪽으로 향하다 보면 딱 거기부터가 소제동이니까. 대전전통나래관 앞에 작게 마련된 입간판에는 소제동 약도도 그려져 있다. 소제동에서 인기 있는 가게들도 안내되어 있어 소제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찾은 사람들에게는 꽤 쏠쏠한 약도이지 싶다.
어느 한 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찾지는 않았던 지라, 동네 골목골목을 발길 가는 대로 일단 걸었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붙어있는 서로 다른 이름의 카페, 소품숍, 식당은 저마다의 역할은 다르지만 어쩐지 감성적이다. 그리고 익숙하다. 왜일까. 익숙함의 정체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느 동네가 하나 떠오른다. 바로 서울의 익선동! 알고 보니 소제동은 익선동과 꽤 깊은 연관이 있는 동네였다.
대전역 동광장으로 나오면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소제동.
부담 없이 걷기 좋은 위치라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2014년 익선동을 발견하고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한 크리에이티브 단체 익선다다. 이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익선동 한옥 거리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거리로 만들었다. 익선동에 이어 그들의 눈길을 끈 동네가 바로 대전의 소제동이다. 옛 철도관사촌이 있던 소제동에 이름하여 소제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왜 하필 소제동이었을까? 익선다다는 본래 아름다운 호수 소제호가 있던 자리에 생겨난 동네, 소제동의 탄생에 귀를 기울였고, 그 위에 이뤄진 철도관사촌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역사적 가치가 있던 동네 소제동. 한국전쟁과 도시화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전역 주변 총 100채의 관사 중, 동관사 40여 채 만 남았고, 점점 불빛이 꺼져가는 회색 도시로 변해갔다. 익선다다는 소제동의 빈집과 버려진 공간에 가치를 채워 나가기로 마음먹었고, 지난 2017년부터 소제호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그들은 소제동의 역사적, 물리적 가치와 의미를 남기되 재해석하고 바꾸는 작업에 집중했다. 버리고 없애는 것보다는 쓰임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소제동은 옛 가옥들이 보존된 독특한 골목길, 계절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대동 천변의 산책로, 멋스러운 가게들이 어우러진 동네로 주목받게 되었다. 불과 2만 명에 그치던 방문객이 소제호 프로젝트 후 50만 명으로 급증했다고 하니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제동 낮은 담장을 따라 걸어본다. 그러다가 대숲이 인상적인 카페 앞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다시 또 걷는다. 걷다 보니 옆 동네 대동의 천변에서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뒤를 따르니 어느새 동서교까지 닿았다. 대전역과 함께 대전의 산업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동서교에는 철도문화 시대를 담은 그래피티와 트릭아트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골목길 하나에 삶이 이어져 있고, 벽화 하나에 역사가 담긴 곳, 소제동. 돌아보니 이런 마음이 든다. 이 동네의 이야기가 ‘END’가 아니라 ‘AND’이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정겨운 담벼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목 좀 축이고 쉬다가, 배가 고프면 예쁜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그러다가 조금 지루해지면 동네 산책에 나서면 된다. 그러다 보면 소제동에서 잘 놀았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소제동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채워줄 가게들.
미도리카레
쉽게 먹을 수 있는 카레를 왜 소제동까지 와서 먹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맛있으니까. 미도리카레는 선술집스러운 느낌의 인테리어가 눈길을 끄는 곳이다. 인기 메뉴는 미도리카레와 명란와사비크림파스타, 마제소바. 메인 메뉴에 토핑을 추가하는 시스템이다. 미도리카레는 살짝 매콤한데, 자극적인 매콤함이 아니라 먹기가 좋다. 함께 나오는 단호박 튀김, 고추 튀김도 바삭하고 맛있다. 명란와사비크림파스타는 와사비 덕분에 느끼하다는 편견을 깨는 메뉴다. 단, 와사비는 골고루 잘 비벼야 먹다가 당황하는 일이 없다. 바로 옆 미도리컬러는 카페이니 헷갈리지 말 것. 대전 동구 수향길 75 1층 오픈 AM 11:30
볕
밥 먹었으면 디저트 먹는 게 국룰이다. 볕은 수플레 팬케이크 맛집으로 유명해진 카페다. 플레인 수플레, 바나나 수플레 2가지 종류가 있다. 주문과 동시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최소 20~30분의 기다림은 필수다. 조금의 기다림을 감수하면 3층짜리 세상 부드러운 수플레 팬케이크가 나온다. 부드럽고 다디단 디저트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치커피를 곁들이면 최고의 조합이다. 달콤한 팬케이크 한 입, 쌉쌀한 더치커피 한 모금 번갈아 먹다 보면 어느새 접시와 컵이 비어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대전 동구 수향2길 7 오픈 AM 11:00
여기소제
간판부터가 딱 요즘 감성이다. 하다못해 간판 속 여기소제 위의 로고도 감성 그 자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은 카페 조리 공간, 왼쪽은 소품숍이다. 그리고 그 안은 음료와 디저트를 마시다 갈 수 있는 좌석들이 있다. 돌자갈 마당에도 좌석이 있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천변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면 이게 행복이지 싶다. 여기소제만의 감성이 묻어나는 소품은 이곳의 자랑. 감성 로고가 새겨진 잔은 인테리어용으로도 선물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대전의 상징 꿈돌이 인형부터 그립톡 등 다양한 소품을 보는 재미가 있다 대전 동구 대동천좌안5길 25 오픈 AM 11:30
소제점방
슈퍼인 듯 체험 공간인 듯한 소제점방. 점방이라는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옛날 장난감, 간식 등을 판다. 점방 옆 공간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옛날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데 지나가는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소제점방의 가장 큰 재미는 쫀디기와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 있다는 것. 결제하고 옆에 마련된 마당 공간에서 장작불에 구워 먹으면 된다. 요즘에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이기에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대전 동구 대동천좌안5길 45 오픈 AM 08:30(가게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