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였다. 강릉은 바다와 커피 거리가 다일 것이란 생각이. 이 동네를 거닐다 보면 그 오해가 절로 풀린다. 작은 골목길에 담긴 이야기가 깊어 쉬이 발을 떼기 어려운 동네, 명주동을 두루 살폈다.
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멋진 여행지보다는 정겨운 골목길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한 지 오래다. 우리의 일상과 맞닿은 풍경이라 익숙해서일까. 골목길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덕분에 골목상권이 부활했고, 활기를
찾았다.
전국의 골목길이 활기를 찾은 데는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의 역할이 컸다. 서울의 평범한 동네 골목길에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지내는 모습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지금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골목길 대부분은 지역의 앞 글자와 경리단길의 ‘리단길’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 많다.
하지만 강릉의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명주동 골목길은 다르다. 유행을 따르고자 했다면 ‘명리단길’이라 불리어야 맞겠지만, 명주동 골목길은 이름 그대로 불리며 강릉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명주예술마당,
햇살박물관, 작은공연장 등의 예술 공간은 물론이거니와 적산가옥의 형태를 유지한 카페들,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가꾼 화단들이 명주동 골목길의 분위기를 더욱 정겹게 만들어 가는 중이다.
명주동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머물던 강릉대도호부 관아가 지금까지도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강릉시청과 강릉대도호부 관아가 나란히 있었지만, 시청이 이전하면서 지금은 강릉대도호부 관아만이
명주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소가 되었다.
명주동 골목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강릉대도호부 관아 맞은편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민속화가 그려진 정겨운 담벼락이 나온다.
옛 가옥을 리모델링해 빈티지한 멋이 드러나는 카페들부터 마을의 역사가 담긴 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에는 마을 주요 장소와 옛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가 그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옛 성벽 터와 구빨래터
자리는 마을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하게 해준다.
옛 성벽 터는 강릉읍성이 있던 자리로, 지금은 정말 흔적만 조그맣게 남아있다. 그 옛날 강릉과 주변 지역을 관할하던 강릉대도호부 관아를 둘러싼 성곽이 여기 있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날 만큼 말이다. 이정표를 따라 구
빨래터 자리를 찾아본다. 아무리 찾아도 모습이 보이지 않아 지나가는 마을 어르신께 여쭈었더니 “지금은 없어~ 빨래터를 덮고 길을 만든 거야~”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지금 걷는 이 길이 그 옛날 사람들이 모여 빨래하던 곳이었다니, 세월의 깊이가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강릉의 중심지였던 명주동이 다시 생기를 찾게 된 건 낡은 건물을 활용한 문화 공간이 여럿 들어서면서부터다. 옛 명주초등학교 건물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꾸민 명주예술마당이 시작이었다.
공연장과 연습실을 운영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명주동에 예술가들을 모이게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58년 세워진 건물을 고쳐서 만든 작은 공연장 단, 2층짜리 주택을 리모델링한 강릉 최초의 마을박물관인 햇살박물관도 명주동을 예술의 성지로 만들었다.
햇살박물관에서는 명주동의 역사를 살필 수 있다. 명주동의 과거와 현재 사진, 주민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 올라가면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아기자기한 그림이 매력적인 마을 벽화를 따라가다 보면 명주동의 또 다른 상징과 같은 ‘봉봉방앗간’에 닿는다. 봉봉방앗간은 옛날에 방앗간이었는데,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매입해 빈티지하게 꾸몄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모든 커피를 주인 부부가 직접 내려주는 것도 특징. 맛있는 커피를 맛보고, 건물을 뒤덮은 담쟁이넝쿨에서 사진을 찍는 게 골목 여행자들에게 명주동 코스로 자리 잡았다. 그 옆의 능소화가 뒤덮은 파란대문집도 마찬가지다.
적산가옥이었던 이 집은 세 번의 리모델링을 통해 가족에게 딱 맞는 집으로 재탄생된 곳이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소나무, 풍성한 느낌을 주는 정원이 아름다워 절로 시선이 멈춘다.
소박하고 오래된 마을에 틈틈이 요즘 스타일의 카페와 숍이 어우러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명주동. 오래간만에 다시 색깔을 찾은 동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골목 사이사이를 빠짐없이 담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명주동 골목길에서 만난 가게들. 골목을 닮아 그런지 가게마저도 스타일이 확고하다. 취향껏 즐겨보기를.
명주예술마당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는 곳. 상가 2층에 자리해 자칫 지나칠 수 있으니 눈 크게 뜨고 찾을 것. 좁은 계단을 올라오면 사장님 취향대로 꾸민 카페가 나온다.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는 인테리어가 멋스럽고 캘리그래피로 메뉴를 써서 붙여놓은 게 인상적이다. 커피 맛은 단연 일품. 오늘의 커피와 새바람커피가 시그니처다. 강릉시 경강로 2019 201호
오래된 이층집을 카페로 꾸민 곳. 강릉대도호부 관아 맞은편 골목길로 들어오면 초입에 있어 찾기 쉽다. 커피를 주문하면 은쟁반에 내어주는데 옛날 쟁반 스타일이라 정겹다. 이곳의 시그니처는 배롱라테, 명주라테이지만 웬만한 커피류는 모두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 가게 그림이 새겨진 드립백도 판매 중! 강릉시 경강로2046번길 10
명주동골목길에서 조금 걸어야 만나게 되는 소품 가게다. 나니랜드의 ‘나니’는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주인의 댕댕이 이름이라고. 나니가 그려진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많다. 나니와 친구들, 강릉의 분위기가 담긴 그림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강릉시 토성로 144
명주동 골목길에서도 가장 요즘 스타일인 수제버거집. 한옥을 리모델링한 곳을 핫하게 꾸민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가게 이름 ‘미미즈’는 조카 이름에서 따왔다고. 딱 요즘 스타일인 수제버거집이라 시간 보내기 좋다. 물론 버거 맛도 굿! 강릉시 경강로2046번길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