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만드는 웹진 2024.03 Vol.326

· 우리동네 골목길 ·

문래동 바이브

골목골목 그려진 벽화는 유니크하고, 녹슨 간판들은 어쩐지 멋스럽기까지 하다. 오래된 느낌에 덧칠해진 선명한 색은 새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그 옛날이야 시끄러운 소리 가득한 철공소였다지만 누군가의 기억에는 재밌는 동네로 자리하는 문래동. 살아 있네!

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그 문래동이 이 문래동입니까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동네 문래동.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이곳은 도림천, 당산동과 인접해 있고, 구로구 신도림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어 여러모로 접근성이 좋다. ‘문래’라는 지명이 붙은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광복 후 문익점 목화의 전래 이름을 따서 ‘문래동’이라는 것, 또 실을 감아 만드는 ‘물래’에서 변형되어 문래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 설은 비슷한 맥락이긴 하나, 전혀 다르게는 문래(文來), ‘글이 왔다’고 해서 문래동이라고 이름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확히 증명된 바는 없지만, 아마도 오래전에 문래동에 큰 방직 회사가 많았다는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앞의 두 가지 설이 조금 더 그럴듯하다. 하지만 요즘은 문래동에 방직 회사가 많았다는 것보다 철공소가 많았다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옛날에는 영등포구 일대가 공단 지역이었는데, 그중 문래동에는 철공소가 밀집되어 있어 다양한 기계 부품들을 생산하곤 했다.

호황기를 누리기도 했으나 1990년대 말부터 중국산 부품들이 국내에 대량 유입되어 문을 닫는 철공소가 늘어났고, 그렇게 문래동의 기계 소리 역시 희미해져 갔다.

문래동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다.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문래동 철공소가 있던 자리를 싼값에 임대한 후 입주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문래동 골목에서는 철공소 벽에 칠해진 다양한 그래피티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예술가들의 감각이 골목 곳곳에 더해져 오래된 공장이 즐비했던 문래동에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지금까지도 영업을 이어오는 철공소들 사이로 여러 공방과 카페, 술집, 사진관 등이 있는데 어색한 조화가 낯설다가도 곧 이 동네만의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느껴진다. 건물 옥상 또는 문 앞, 간판 등에 자리한 철 조형물들을 찾는 것도 이 골목만의 재미라면 재미다.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문래동 철공소가 있던 자리를 싼값에 임대한 후 입주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골목 골목이 보는 재미 짜릿해

철공소 골목 구경만으로 아쉽다면, 문래동 우체국 뒤편으로 가보자. 우리가 말하는 문래창작촌이 바로 이곳이다. 목적지를 찾기 위해 지도 앱을 켜 두었다면, 여기서라면 잠시 꺼두어도 좋다. ‘아까 왔던 곳인가?’ 싶던 골목도 다시 지나다 보면 지도 앱에 정신이 팔렸던 사이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감성으로 그려낸 벽화들이 시선을 멈추게 한다.

거기에 조금 번화한 골목으로 들어서면 요즘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 붕어빵을 파는 트럭, 빈티지숍, 소품숍들이 즐비하다. 비슷한 건물 속 사람들이 좀 붐빈다 싶은 곳은 입소문 난 카페다. 문래동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들어가도 좋다. 단, 주말은 자리가 없을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도 아쉬움은 없다. 인근 노포 감성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또 골목을 누비다 보면 카페 자리는 난다. 물론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골목골목을 돌다 보면 만나게 되는 빈티지한 철공소 느낌의 ‘올드문래’는 호프집인데, 요즘 문래동의 모습을 가장 잘 담은 곳이 아닐까 싶다. 송기연 사진작가는 2014년부터 문래동의 변화를 기록하고 2017년에 ‘올드문래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그 포스터가 올드문래 한편에 붙어있다. 올드문래를 지나 골목골목을 방황하다가 동네를 벗어날 때쯤 만난 갤러리문래 골목 숲길에 전시된 미술작품들과 벽화가 다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갤러리들이 많은 골목이라 그런지 이곳의 벽화는 어쩐지 더 독특하다. 그 틈에 있는 아트필드 갤러리에서는 다양한 화풍의 그림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끝으로 문래동 투어를 끝내본다.

최근 재개발 이슈로 문래동 예술가들의 활동 영역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시멘트 위로 녹슨 철 조형물, 단순한 듯 거친 질감의 간판들, 그 속에 피어난 아기자기하면서도 유니크한 벽화….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래는 어느 예술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더 많은 이가 알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문래동이라 쓰고 힙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좁고 불편한 자리여도 모든 게 다 용납된다. 문래동이니까. 풍요로운 문래 투어를 완성 시켜줄 공간들.

  • 문래 상징
    베르데커피

    ‘Verde’는 스페인어로 ‘초록빛의, 신선한, 싱싱한’ 의미가 있는데, 베르데커피 역시 이름 그대로 신선한 원두와 친환경 용품 사용을 지향하는 카페. 커피와 브런치 디저트 모두 맛있다. 적산가옥을 요즘 스타일로 리모델링해 오픈한 카페답게 건물 구조도 특이하다. 꼭 안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바깥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139가길 5

  • 가즈아 평화로
    평화

    골목 한 귀퉁이 모르고 지나치기 좋은(?) 곳에 있지만 묘하고 힙한 느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 커피와 간단한 안주와 주류를 판매한다. 인테리어라고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지만 그 틈 사이로 신경 쓴 티가 나는 소품이나 꽃의 배치가 멋스럽다. 바에 앉아서 음료 만드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 것 또한 재미다. 엄마가 알면 “여길 돈 주고 와?”라는 소리를 할 것만 같지만, 힙한 건 뭐든 용납되는 요즘 세대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이게 멋이야.”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131길 13

  • 괜찮아, 예쁘니까
    폰트 문래점

    문래동 메인 골목을 벗어난 곳에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정말 많다. 빨간 벽돌이 “그래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폰트야”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우뚝 서 있다. 외관을 봤을 때는 2층도 있는 것 같지만 1층뿐이다. 1층 긴 구조로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공간도 특이하고 커피 맛도 좋아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는다. 입구에는 커피 드립백과 굿즈를 판다. 커피를 주문하면 작은 조명을 주는데, 모든 게 셀프인 요즘 카페와는 달리 조명을 테이블 위에 두면 직접 가져다준다.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77가길 6

  • 세대 통합
    골목집

    힙한 카페 사이에 굳건히 자리한 식당이어서인지 더 힙하다. 문래동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 평일 저녁 시간대에 가면 대기해야 할 정도다. 주메뉴는 오리불고기, 오감탕, 날치알 볶음밥. 양도 푸짐하고 맛있다. 어르신들만 갈 것 같지만 들어가 보면 정말 남녀노소가 다 있다. 그만큼 세대 불문하고 사랑받는 곳이다.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39가길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