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만드는 웹진 2024.08 Vol.331

· 우리 백일장 ·

특! 명!
폭풍우 속 쿠바에서 살아남기

우리은행 공항금융센터 이종민 계장

글.  우리은행 공항금융센터 이종민 계장

2018년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저는 50여 일간 홀로 남미여행을 떠났습니다. I의 성향이 가득한 제가 유일하게 E의 기질을 보이는 분야가 바로 여행이었고, 저는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너무나도 들떠있었습니다.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한 국가 쿠바. 제가 가장 기대하고, 다른 세상과 단절되어있어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쿠바이기에 도착 전부터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멕시코 칸쿤에서 쿠바의 수도 하바나까지 무사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나오자마자 시작된 과거로의 여행. 올드카 택시부터 과거의 건물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거리의 모습까지 제가 그려왔던 쿠바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대로 부풀었던 가슴은 스트레스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태풍은 쉬지 않고 비바람은 몰아쳤고, 수화물에서 분실된 것인지 우산도 없어져서 비를 쫄딱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산품이 귀한 쿠바에서는 돈이 있어도 우산을 구할 수 없었고, 저는 폭풍우를 그대로 맞으며 홀로 말레콘 비치를 터벅터벅 거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록 끊이지 않는 폭풍우에 버스표를 끊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비를 몰고 다니는 것인지, 당도한 새 도시에 폭풍우가 시작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버스 길이 잠기는 상황까지 발생해 오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인터넷도 되지 않는 쿠바에서, 저는 온종일 숙박집에 틀어박혀 우울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숙박집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말도 통하지 않아 느껴지는 고립감과 외로움은 더욱 커져만 갔는데요. 혹시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날까지 떠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불안감이 급습하던 가운데, 다행스럽게도 이틀을 남겨놓고 드디어 육로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잽싸게 짐을 챙겨 가장 먼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고, 숙박집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웃는 저를 보면서 숙박집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미소를 지어주셨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다시 달려 도착한 쿠바의 중심 하바나에서는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빗방울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반짝이는 햇볕 아래 그동안 보이지 않던 쿠바 현지인들과 즐거움에 가득 찬 관광객들도 거리를 북적이며 수놓고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를 거닐며 저도 말레콘 비치도 거닐고, 하바나 곳곳에 제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하니 드디어 제가 그토록 고대하던 쿠바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놀지도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저는 보복성 소비를 시작했는데요. 고급 레스토랑에 혼자 들어가서 랑고스타(랍스타)요리를 즐기고, 숙소도 인터넷이 가장 잘 터지는 곳으로 예약해 짐을 풀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문명의 즐거움에 저를 감싸던 우울한 마음도 훌훌 씻겨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쿠바에서의 마지막 날, 다시 한번 쿠바의 거리를 거닐고 아쉬운 마음을 가슴에 묻은 채 다시 올드카 택시에 올라탔습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지 않던 쿠바의 매력들이 하나, 둘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공항에 도착해 칠레로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면 남아있던 쿠바 페소를 다 써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쿠바를 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상점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지금도 우리집 식탁 위에 남아있는 쿠바 페소, 요즘 쿠바와 대한민국의 수교가 진행되었다는 뉴스를 보니 쿠바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는데요. 다시 한번 애증의 국가 쿠바에서 말레콘 비치를 거니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뒤늦게나마 반짝이던 쿠바의 매력 다시 한번 꼭 느껴보고 싶어지는 요즘입니다.

COMMENTS

  • 여행선호가

    너무 이색적이고 재밌었을꺼 같아요^^

  • 띵구리

    '쿠바가 올았다 '라는 책이 있죠? 인간의 욕망이 있는 한 이상적인 복지국가는 가능한 지 ... 그래도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국가시스템. 저도 꼭 가보고 싶은 나라입니다.

  • 남미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쿠바여행 거기까지 휴가내고 날아가기가 너무 어려워 퇴직 후엔 꼭 가볼 생각입니다. 부럽네요 젊음이, 청춘이

  • 클래식

    폭풍우가 있었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뚜렷한 기억이 유지되는 거겠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세상부럽

    휴가 갔다왔는데 또가고싶네요..

  • ㅎㅎ

    사진이 딱 쿠바 느낌이네요

  • 떠나즈아

    저 지금 공항 갑니다 .. (주섬주섬)

  • ㅋㅋㅋㅋㅋ

    사진만 봐도 즐거운 게 느껴져요ㅋㅋㅋ

  • 쿠바

    정말 가보고싶은 곳인데 대리만족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