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만드는 웹진 2024.09 Vol.332

· 우리 백일장 ·

제20회 금융인문화제 장려상

모두가 본능이었다

우리은행 연금지원플랫폼부 조민주 계장

글.  우리은행 연금지원플랫폼부 조민주 계장

비좁은 견사에서는 썩은 분뇨 냄새가 났다. 개들은 창살에 매달려 울었고, 살가죽에는 상처가 즐비하고 진물이 줄줄 흘렀다. 컹컹 소리를 내는 짐승들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지 허공을 향해 짖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마냥 꼬리를 흔들었다. 밥그릇에 사료를 뿌린 남자는 창살을 등지고 폐공장으로 들어섰다. 개는 다시 짖었다. 널찍한 폐공장을 느릿느릿 둘러싼 산은 짐승의 울음소리와 오줌 냄새를 은밀하게 감추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링에 묶여있던 개 두 마리는 주인이 목줄을 풀어주자마자 서로에게 달려들어 아귀를 벌렸다. 핏불테리어가 매섭게 마스티프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마스티프 역시 질세라 몸을 뒤틀며 적의 목에 송곳니를 박았다. 새로 생긴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시멘트 바닥에 핏자국이 난무했다. 두 맹견은 본능적으로 제 동족을 물어뜯었다. 나는 창살에 계속 매달렸다. 땀이 난 손이 미끄러워 잠시라도 방심하면 떨어질 것 같았으나 고막을 후벼파는 개들의 비명이 팔을 휘어잡아 버틸 수 있었다. 음울한 피비린내가 쾨쾨한 폐공장을 뒤덮을 때까지, 나는 기어코 경기를 지켜보았다.

뒷다리로 버티던 마스티프가 주춤대며 숨을 몰아쉬다, 핏불이 사나운 기세로 턱에 힘을 주자 옆으로 쓰러졌다. 링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옆집 아저씨가 끼어들어 물었다. 삼백 없어? 여기 삼백오십이요. 아버지가 돈뭉치를 내밀었다. 옆집 아저씨는 아버지에게서 돈뭉치를 받고 삼백을 되뇌며 돌아다녔다. 개들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마스티프는 다리를 움찔거리면서도 핏불의 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쓰러지면 그대로 보신탕집에 가야 했다.

“버텨! 버티라고!”

마스티프에게 돈을 건 마을 사람들이 성을 냈다. 판돈이 커졌다. 핏불을 무는 아귀의 힘이 서서히 약해졌다. 핏불이 승리했다.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핏불은 피를 뚝뚝 흘리며 주인에게 돌아가고, 마스티프는 링 안에 홀로 남아 혀를 빼물고 지친 숨을 들이쉬었다. 마스티프의 주인은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며 침을 퉤 뱉었다.

나는 창문에서 떨어져 폐공장을 벗어났다. 아버지가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꼬리를 흔드는 개들을 지나쳐 허겁지겁 뛰었다. 개들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분뇨 냄새와 폐공장 냄새가 섞이지는 않았을까, 팔뚝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다행스럽게도 옷에서 나는 건 오래된 장롱 냄새뿐이었다.

아침에 뵌 아버지는 여느 때보다 표정이 밝아 보였다. 어머니와 사별한 후 2년 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밥 먹고 가라.”

아침밥을 차린 적이 드물던 아버지가 손수 국을 끓여 상에 내놓았다. 탕 안에는 고기가 섞여 있었다. 반찬들 역시 고기였다. 문득, 죽어가면서도 핏불의 목을 놓아주지 않았던 질긴 송곳니가 떠올랐다. 빈속인데도 속이 메스꺼웠다. 창살을 붙잡았던 손을 쥐락펴락했다.

“이거 무슨 탕이에요?”

“감자탕.”

그제야 식탁 앞에 앉았다. 아버지가 국자로 고기를 떠 그릇에 담았다. 나 역시 아버지를 따라 젓가락으로 고기를 건져 그릇에 옮겼다. 돼지 등뼈를 잡고 살코기를 짓씹었다. 넌 개고기는 안 먹으면서 돼지고기는 왜 먹냐. 언젠가 아버지가 물은 적이 있었다. 이유는 당연했다. 링 안에 남겨진 개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그냥, 개잖아요. 동족에게 물려 죽은 개를 보아서인지, 나는 개고기만 앞에 두면 일종의 허세에 가까운 정의감이 들곤 했다. 개고기를 눈앞에 두고 채소를 집어 먹었다. 채소의 맛을 억누르는 개고기 냄새는 그때마다 코를 찔렀다. 우습게도, 탕 안의 고기를 볼 때마다 움츠러드는 주제에 투견장으로 나서는 아버지의 뒤를 쫓아 투견장을 훔쳐보는 짓거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등뼈를 잡고 물어뜯었다. 마스티프를 물어뜯던 핏불이 머릿속을 스쳤다. 비좁은 견사에서 싸구려 사료를 먹고, 살기 위해 동족을 물어뜯는 개들의 기분을 인간은 이해하지 못할 테다. 고깃국물이 아버지의 손끝을 따라 팔뚝으로 뚜욱 뚝 느리게 흘러내렸다. 어머니를 보내고 홀린 듯이 투견장을 드나드는 아버지는 링을 붙잡고 열렬히 개를 응원했다. 마을 사람들도 유흥과 돈을 좇아 응원했다. 개들이 피를 흘리는 동안 그들은 땀을 흘렸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해, 그때마다 개들이 인간을 먹는 상상을 했다.

살코기를 씹자 육즙이 흘렀다. 마스티프의 상처에서 흐르던 진물이 입가에 묻은 기분이었다. 어제 막 세탁한 와이셔츠에 고깃국물이 묻었다. 한숨이 터졌다. 국물이 떨어지는 돼지 등뼈에서는 비린내가 풍겼다.

더운 날씨는 얼룩을 드러나게 했다. 점심때가 되니 셔츠 위에 걸친 니트 조끼가 답답했다. 교실에 있는 사람 중 겨울 조끼를 입은 놈은 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채질할지언정 조끼를 벗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내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을 즐겼다. 그들은 별것도 아닌 일로 혀를 놀리곤 했다. 오늘은 머리가 까치집이네. 옷에서 우리 할아버지 냄새 나더라. 신발도 다 해지지 않았어? 집에 돈 없다잖아. 입을 가리는 손은 소리를 가리지 못했다. 힘없고 왜소한 놈들의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고등학교로 올라오기 전에도 있던 일이었기에 의연히 무시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나를 입에 올리는 유흥은 늘 익숙했다.

“야, 돈 좀 줘. 끝나고 피시방 가게.”

놈이 왔다. 나는 눈치를 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른 건 전부 무시해도 놈은 무시하지 못했다. 내가 한낱 말티즈고, 아이들이 웰시 코기라면, 그는 거대한 로트와일러였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놈에게 나는 소형견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일방적인 요구에도 말없이 주머니를 뒤졌다. 천 원짜리 세 장과 오백 원짜리 하나가 나왔다. 이게 다야. 그의 손바닥에 조심히 돈을 올렸다. 놈에게 돈을 줄 때면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몰래 찔러버릴지 곰곰이 생각하다, 한 달 전 그에게 담배를 피운 벌로 겨우 교내봉사가 내린 것이 생각나 알량한 용기는 지워버리기로 했다.

“거지새끼답네, 씨팔. 삼천 원이 뭐냐?”

그는 혀를 차며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툭툭 쳤다. 미안. 궁상맞게도 반항은커녕 잘못을 구걸했다. 놈의 손길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가벼운 폭력으로 더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했다. 말티즈 따위는 로트와일러에게 이길 수 없다. 당연하다. 그것은 먹이사슬의 필수불가결한 법칙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불가피한 감정이 들어도, 죽은 듯이 살았다.

놈은 삼천 원으로 내 머리를 치다가 물러났다. 나와 놈을 숨죽여 지켜보던 아이들도 자리로 돌아갔다. 겨우 벗어났다. 돈을 빼앗겼지만, 나는 놈이 더 이상 몸에 손을 대지 않은 사실만으로 안주했다.

일찍 퇴근한 모양인지 현관에는 아버지가 아침에 신고 나갔던 신발이 놓여있었다. 설마 싶어 신발장을 뒤졌다. 등산화가 없었다. 투견장에 갔구나! 나는 안방에 가방을 던져두고 신발을 구겨 신어 급히 집을 뛰쳐나왔다. 교복 차림으로 뒷산을 허겁지겁 넘어갔다. 나뭇가지가 몸을 마구 스쳤다. 팔뚝에 생채기가 났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산을 올랐다. 해질 때가 되면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에 일찍 도착해야 했다. 운동화 안으로 흙이 들어와 발바닥이 따끔했다. 헉헉대며 정신없이 산을 넘자 저 멀리 투견장이 보였다. 이미 폐공장 주위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개 짖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메마른 분뇨 냄새도 함께였다.

겨우 폐공장에 도착해 먼지가 낀 창문에 머리를 내밀고 안을 살펴보았다. 마스티프를 물었던 핏불과 셰퍼드가 싸우고 있었다. 링을 둘러싼 사람들 중에는 좀체 본 적 없는 이들이 몇 있었다. 연승한 핏불의 소문을 듣고 외지에서 온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사람들 틈에서 옆집 아저씨에게 돈뭉치를 건넸다. 링 앞에 서서 돈을 건네는 순간 아버지의 눈에는 한 줄기의 섬광이 번뜩였다. 돈을 따낼 때보다 더 기쁜 얼굴이었다. 오로지 창살을 붙잡을 때, 그때야 비로소 아버지의 서슬 퍼런 송곳니가 존재를 드러냈다.

핏불이 셰퍼드에게 목덜미를 물렸다. 핏불은 효후하며 반격할 준비를 했지만 셰퍼드는 쉬이 목을 내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링을 콱 붙잡았다.

“물어! 밀리면 죽는다! 더 세게 물어!”

싸움은 쟁쟁했다. 아버지는 악착같이 링에 매달려 소리쳤다. 사람들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물어! 물어라! 인간의 언어를 알 리가 없는 개들은 오로지 본능에 충실했다. 돈다발이 오갔다. 판이 커졌다. 오백. 오백오십. 개들의 울음소리가 폐공장을 덮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발악하는 놈들을 유흥거리로 삼았다.

핏불이 맹렬하게 셰퍼드의 목을 물어뜯었다. 상처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기가 죽은 셰퍼드가 낑낑대며 항복을 선언했다. 정세는 핏불 쪽으로 기울었다.

우욱! 나는 토기를 참지 못하고 온종일 먹은 것들을 모두 게워냈다. 아침에 먹은 돼지고기가 떠올랐다. 함성이 벽을 뚫고 숨을 움켜쥐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개들과 웃는 사람들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돌아가지 못했다. 다시 창문에 악착같이 매달려 눈을 뜨고 폐공장을 지켜보았다. 기어코 알아야만 했다. 투견에 미친 이유를. 아버지가 빚을 져서까지 개에게 돈을 내걸고 피투성이를 보는 이유를 알아야만 이 짓거리를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속은 계속 요동쳤지만 창살을 놓아주지 못했다.

핏불이 승리했다. 함성 속에서 아버지는 안심하고 있었다. 패배한 개가 주인의 손에 질질 끌려 나갔다. 문 앞에 서 있던 개장수가 셰퍼드를 건네받았다. 셰퍼드는 맥없이 늘어져 있었다. 저 핏불 놈, 값이 많이 올랐겠는데. 벌써 네 번째 연승이야. 누군가 창문 쪽으로 붙어 담배를 피우며 중얼거렸다. 담배연기가 창문 틈으로 새어 나왔다. 놈이 피우던 냄새와 닮아서 목이 아팠다. 다시 속이 울렁였으나 억지로 참고 아버지의 얼굴을 살폈다. 아버지는 영광의 상처를 새긴 핏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굣길에 놈을 만났다. 우연인지 의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친구들과 무리를 진 놈은 나를 골목으로 불렀다. 여느 때와 다르게 화가 뻗친 얼굴이었다. 야, 담배 피웠다고 또 찌른 새끼가 너냐? 놈이 나를 벽에 밀어붙이고 사납게 일갈했다. 당장이라도 목을 쥐어틀 기세여서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비굴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난 오늘 교무실 들어간 적도 없어.”

“그럼 왜 담임이 날 불러서 담배 운운하는데?”

놈은 내 어깨를 움켜쥐고 위협했다. 폭력에 학습된 몸은 반사적으로 웅크리며 그를 계속 부정했다. 네가 담배 피우는 거 다른 애들도 다 아는데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속으로 저항했으나 입 밖으로 내뱉을 용기는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바로 몸에 시퍼런 멍이 드는 것도 모자라 뼈 하나가 부러질 걸 아는 까닭이었다.

감사하게도 그는 몸에 멍을 남기는 것으로 화풀이를 끝내주었다. 오랜만의 구타라 버티기가 힘들었지만 이 정도로 끝나면 감지덕지였다. 놈은 한층 가벼워진 얼굴로 친구들과 골목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어딘가로 끌려가지 않는 것에 다시 감사했다. 집에 도착해 대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교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못 보던 개와 개집이 마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턱뼈가 단단한 새하얀 불독이 나를 보며 짖자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밖으로 나왔다.

“조심해라, 큰돈 주고 사온 거야.”

“어디서요?”

아버지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질문을 달리했다. 이름 지어주셨어요?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맥스,라고 답했다. 새 가족은 나를 올려다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생긴 건 장군인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푸들이었다. 만져도 돼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살 만져. 자칫하다 물린다. 물리는 나를 걱정하는 건지, 맥스에게 흠집이라도 날까 염려하는 건지. 아버지의 의미심장한 말을 들을 때면 문득문득 의문이 속을 비집어 비틀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후자임을 확신했다. 투견장에 있는 아버지는 아들과 밥을 먹을 때보다 항상 기쁜 얼굴이었다.

맥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맥스는 얌전히 내 손을 핥았다. 왜 맥스예요? 제일 센 개가 되라고. 제법 불독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나는 왜 아버지가 맥스에게 제일 센 개가 되라고 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주에 세 번 투견장에 갔던 아버지는 이제는 투견장 대신 개 훈련장에 갔다. 맥스도 함께였다. 산 밑에 딸린 개 훈련장에서는 투견들이 훈련을 했다. 러닝머신을 달려 체력을 기르고 사냥감을 쫓는 법, 턱에 힘을 주어 힘껏 무는 법을 익혔다. 자리를 비운 아버지와 맥스는 저녁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맥스는 집으로 돌아오면 허겁지겁 물부터 마셨다. 고급 사료를 사온 아버지가 맥스의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주었다. 견사에 갇힌 개들이 생각났다. 맥스는 그나마 그들보다 나은 형편인 걸까. 먼지가 끼고 오래된 싸구려 사료가 아닌, 깨끗한 고급 사료를 먹는 것으로 안주해야 하는가. 맥스는 제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사료만 먹어댔다.

훈련장을 드나들수록 맥스는 투견용 불독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턱뼈는 튼튼해지고 몸에는 근육이 붙었다. 값이 천은 되었다는 핏불에 맞설 수 있을 정도였다. 맥스는 더 이상 꼬리를 흔들지 않았다. 처음 가족이 될 때 맥스의 눈에 비쳤던 빛은 점차 바래졌고, 맥스는 나와 아버지를 보면 주변을 살피다가 제 집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맥스는 사료를 먹거나 훈련장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개집에 들어가 누웠다. 나는 구태여 개집 앞에 쪼그려 앉아 맥스의 몸을 쓰다듬었다. 처음 집에 들어온 날을 생각했다. 훈련에 지쳐 쉬거나 나태함에서 비롯한 게으름이 그 까닭은 아니리라. 마당과 훈련만이 전부인 맥스는 삶에 무상한 노인처럼 무기력했다.

“맥스.”

나는 늘어진 맥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맥스는 내 손을 힐끗 흘겨보다가 눈을 피했다. 조심해라, 큰돈 주고 사온 거야. 맥스를 내려다보며 내게 경고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개고기를 앞에 두고 채소를 먹었을 때처럼, 다시 속이 역했다.

허벅지와 허리에 멍을 달고 돌아왔다. 관심이 있던 아이에게 고백을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맞았다. 다행히 놈은 골목에서 때렸던 곳을 피해 구타했다. 아무리 놈이라도 또다시 경찰서에는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개집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또 훈련장으로 간 걸까. 집으로 들어가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신발장 맨 아래 구석 등산화가 있어야 할 곳이 비어있었다. 나는 가방을 현관에 두고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이끌어 뒷산으로 향했다. 아직 산은 넘지도 않았는데, 맥스가 짖어대는 환청이 사정없이 귀를 괴롭혔다.

폐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창에 매달렸다. 사람들이 링을 둘러싼 채 개 두 마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링 안에 있는 건 핏불과 맥스였다. 아버지는 맥스의 목줄을 꽉 쥐고 있었다. 핏불이 맥스를 보며 이를 드러냈다. 맥스가 링 바깥에 있는 아버지와 핏불을 번갈아 보며 낑낑대자 링 바깥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놈, 오줌이라도 싸지 않는 게 다행이겠는데. 누군가 손가락으로 맥스를 가리키며 빈정댔다. 아버지는 자존심도 상하지 않은지 묵묵히 맥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에게 눈길도 주지 않던 맥스가 아버지를 보고 급히 꼬리를 흔들었다.

“무는 거야. 저놈의 숨통을 물어버려.”

맥스와 눈을 맞춘 아버지가 맥스에게 명령했다. 맥스는 혼란스러운 듯 주춤주춤하며 핏불을 마주했다. 현수 아버지, 이제 시작해도 됩니까? 옆집 아저씨가 물었다. 아버지가 예에, 답하며 목줄을 풀 준비를 했다. 옆집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이고 가운데에서 물러났다.

“시작!”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목줄이 풀린 핏불이 맥스에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맥스가 먼저 목덜미를 물렸다. 맥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폐공장 밖으로 새어 나왔다. 견사의 개들이 전사의 울음을 듣고 덩달아 울었다. 맥스가 피를 뚝뚝 흘렸다.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나도 모르게 짓씹은 입술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맥없이 쓰러진 맥스를 보고 링에 매달렸다.

“일어나! 일어나 물어! 쓰러지지 마라!”

사람들은 이미 핏불에게 돈을 걸고 있었다. 아버지는 바닥을 뒹구는 맥스를 재촉했다. 이미 승리는 핏불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목덜미를 물린 맥스가 아버지를 보다가 뒷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나 핏불에 반격했다. 불독의 아귀힘은 굉장했다. 맥스가 핏불의 목에 이를 박아 넣자 핏불이 몸을 움츠렸다. 사람들의 주의가 순식간에 맥스 쪽으로 돌아갔다. 옆집 아저씨는 그 틈에 돈을 더 걷기 시작했다.

두 개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먼저 목덜미를 놓아주지 않았다. 두 투견은 본능대로 행동했다. 지면 죽는다. 기세는 팽팽했다. 물러서지 않던 맥스가 사납게 핏불의 상처를 물어뜯었다. 핏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맥스가 계속 목덜미를 씹자 핏불이 움찔거리며 결국 주둥이를 벌렸다. 맥스의 승이었다.

링을 둘러싼 사람들은 수선스럽게 박수를 치고 맥스를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아버지가 맥스를 핏불에게서 떨어뜨려 다시 목줄을 채웠다. 짧은 주둥이에서 핏불의 피가 흘렀다. 원체 순한 놈이던 맥스는 핏불을 노려보며 으르릉, 목울대를 긁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맥스의 밥그릇에 값비싼 송아지 목뼈를 넣어주었다. 맥스는 냄새를 몇 번 맡더니 급히 먹어치웠다. 밥그릇은 벌써 비어버렸다. 아버지는 맥스의 진물이 나는 상처에 소독약을 뿌려주었다. 나는 짐짓 무신경한 척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예요?”

아버지는 답하지 않고 상처에 소독약만 발랐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소독약을 묻혔다. 맥스가 혀를 내밀어 꼬리를 흔들며 간식을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쉬이 주지 않았다. 상처를 내려다보는 아버지는 맥스에게 또 이기면 주겠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맥스는 종종 아버지와 밖으로 나가 새로운 상처를 달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간식을 밥그릇에 넣어주었고, 맥스는 단숨에 삼켜버리곤 했다.

맥스와 핏불의 싸움을 보고 난 후, 나는 맥스가 아버지와 외출하는 날엔 산을 넘지 않았다. 목덜미가 피투성이 된 채 나를 올려다보는 눈이 나를 쫓아왔다. 맥스의 아문 흉터는 내 동정심에 상처를 냈다.

나는 종종, 개집에 늘어져 누워있는 맥스를 살폈다. 아버지 몰래 송아지 목뼈를 밥그릇에 넣어주기도 했다. 보기 싫은 상처를 느릿하게 온전한 손길로 쓰다듬어주기까지 했다.

투견장엘 가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감행했던 모험은 끝이 났다. 본능이었다. 아버지는 맥스의 울음을 듣고도 악착같이 링 앞에 섰다. 아마 본능이었다. 링에 매달리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전부 본능이었다.

놈은 등교하자마자 교무실로 불려 갔다. 그가 담배를 피운다고 누군가 담임에게 찌른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술집에 들어갔다고도 했다. 놈은 교무실에 들른 제 부모가 돌아가자마자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먹잇감으로 노려진 초식동물처럼 몸을 사렸다. 그러나 그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학교가 파한 후 놈과 그의 친구들은 나를 쫓아왔다. 촌스럽게도, 그는 나를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데려가 머리채를 잡으며 험악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너 진짜 죽고 싶냐? 그는 진부한 말을 지껄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가 내게 다시 화풀이할 거란 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느 때처럼 맞을 준비를 했다.

주먹이나 발을 들 줄 알았던 그는 나를 구석에 몰고 화를 삭이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물부리를 빨아들인 그가 내 얼굴에 후욱 연기를 뱉었다. 코가 매워 켁켁 기침이 튀어나왔다. 그의 손과 어깨에서 은밀하게 맡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독한 냄새였다. 찔끔 눈물을 흘리자 그가 내 뺨을 툭툭 쳤다.

“소리 지르면 죽는다.”

그는 내 셔츠를 걷어 올리고는 담배를 내 가슴팍에 비벼 껐다.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그는 치밀하게 내 입을 손으로 억눌렀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보다 배는 더 고통스러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네 거 줘봐. 담배를 버리고 제 친구에게 손을 뻗은 그가 담배를 건네받아 필터를 배에 문질렀다. 팔을 저으며 버둥거리자 놈의 친구들이 나를 저지했다. 죽을 것만 같아서, 그의 손을 깨물었다. 그는 개의치 않고 또 담배를 받아 내 몸에 지졌다. 놈은 몸에 여섯 개의 흉터를 새기고서야 물러났다.

발을 앞으로 딛자 흉터가 욱신댔다. 나는 벽에 몸을 기대 힘겹게 집으로 돌아갔다. 텅 빈 마당에는 비싼 개집과 비싼 밥그릇만이 놓여있었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찬물로 샤워를 했는데도 냉기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몸에는 발갛게 여섯 개의 흉이 남았다. 움직일 때마다 흉진 곳이 쓰라렸다. 볼품없는 주먹을 꽉 쥐었다. 화를 삭여야 했다. 먹이사슬의 순리란 정당하기에 분노하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의 관심을 차지하는 불독에 열등감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질 개에게 먹이 하나라도 더 던져주고 싶은, 그래야 할 것만 같은 연민이 더더욱 드는 것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맥스의 상처에 뿌렸던 소독약을 꺼내 무작정 솜에 묻혀 몸에 문질렀다. 치료는 아버지가 오기 전에 끝이 났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소독약을 쥐고 마당으로 나가 맥스의 상처에 뿌려주었다. 맥스는 평소보다 더 지쳐있었고, 접힌 살가죽에는 평소보다 많은 상처와 피가 얼룩덜룩 묻어있었다. 맥스를 개집에 밀어 넣은 아버지는 혀를 차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맥스를 흘겼다. 숨을 몰아쉰 맥스는 혀를 내밀고 늘어져 있었다. 나는 개집으로 들어간 맥스에게 달려가 상처를 살폈다. 맥스는 나와 아버지를 힘겹게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이제 그만 나가야 할 듯싶은데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으나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번은 더 쓸 수 있어. 음산한 음성이 귀를 잔인하게 후벼 팠다. 상처를 문지르는 손에 진물이 묻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가족이 죽어도 상관없어요? 이미 상실을 겪은 그에게 가족은 없었다. 나는 익숙했으나, 이때만은 맥스가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온전한 곳보다 상처가 무성한 맥스는 여전히 제 가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새벽에 아버지의 인기척에 눈을 떴다. 방문 너머로 봉투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봉투는 아버지가 저녁에 돌아오면서 들고 온 것이었다. 몰래 일어나 문틈으로 거실을 바라보았다. 그는 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를 눈으로 좇으며 창문을 한 뼘 열어 밖을 살폈다. 아버지의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있었다. 아버지는 자고 있는 맥스의 목덜미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으려다가 우뚝 손을 멈추었다. 그는 한참을 망설였다. 주삿바늘을 가까이 대었다가, 다시 뒤로, 아니 다시 앞으로, 그것을 반복했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주사기가 무엇이길래 아버지를 저렇게 고민하게 하는 걸까. 이렇게 신중하게 고뇌하는 아버지는 오랜만이었다.

몇 번을 망설이고 한숨을 내쉬던 아버지는 결국 맥스를 한 번 쓰다듬은 뒤 몸을 일으켰다. 맥스를 등지고 돌아오는 움직임에 나는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자는 체를 했다. 그 역시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나를 등지고 누웠다. 바람을 묻히고 온 아버지에게서는 진물 냄새가 났다.

나들이 따위를 가지 않는 가족에게 주말은 한산했다. 아버지와 나는 티브이 앞에 앉아 채널을 돌렸다. 나는 화면을 보면서도 마당을 살폈다. 맥스가 평소보다 힘차게 울어댔다. 아버지는 맥스의 모습에도 마당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다가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아버지에게서 맥스를 떼어놓아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불현듯 들끓었다.

“맥스 산책 좀 시키고 올게요.”

“평소에도 자주 밖에 나가는데 산책은 무슨.”

아버지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훑었다. 나는 대충 심심하다는 말로 둘러대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맥스는 나를 보고 반갑게 짖었다. 목줄을 쥐고 대문을 열자 맥스가 나를 앞질러 나섰다. 나와 맥스는 정처 없이 동네를 돌아다녔다. 맥스는 길을 가면서 계속 냄새를 맡았다. 나 역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각이 인간의 배로 발달한 개는 어떤 냄새를 맡을까.

인적이 드문 골목이 보였다. 그 안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예상했던 대로, 놈은 대낮부터 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뱃재를 털던 놈과 눈이 마주쳤다.

“야, 너 이리 와봐.”

놈이 손가락을 까딱댔다. 나는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숨죽여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가 맥스를 보더니 흠칫, 한발 뒷걸음질하며 미간을 구겼다.

“너 개 키우냐?”

나는 소심하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마저 담배를 피우며 맥스를 빤히 내려다보던 놈은 연기를 뱉고 맥스를 향해 꽁초를 튕겼다. 별안간 담뱃불을 맞은 맥스가 머리를 휘휘 흔들곤 눈을 번뜩이며 놈을 향해 짖었다. 그러나 놈은 낄낄대며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몸에 흉터 남았냐?”

놈이 라이터를 꺼내 담배 끄트머리에 불을 붙였다. 이 상황을 탈 없이 지나가기 위해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그의 말에 곧장 고개를 쳐들었다. 맥스는 짖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놈이 물부리를 빨며 저속하게 웃었다.

“야, 알지?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 정당방위니까. 어떻게 보면 인과응보의 결과 아니냐?”

그의 기만적인 말에, 핏기가 싸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정당방위인가? 뭐가 인과응보의 결과라는 말인가? 아니. 결코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당방위와 인과응보는 이럴 때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담임 앞에서 입을 봉인하는 건 물론 교무실 앞을 지나가지도 않았다. 아주 억울했다. 목줄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그를 빳빳하게 올려다보았다. 잠자코 앉아있던 흉터들이 다시금 통증을 호소했다.

맥스가 더욱 목울대를 긁자 놈이 위협하듯 맥스에게 손찌검 시늉을 냈다.

“어휴, 이 개새끼 진짜.”

놈의 몸짓에 맥스가 더 세게 짖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링 안에 있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핏불을 물어뜯던 맥스. 맥스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줄을 잡은 손바닥에는 땀이 났다.

맥스가 다시 놈에게 달려들었다. 놈이 움찔 물러서는 걸 보자마자, 나는, 목줄을 놓아버렸다. 맥스는 곧바로 놈의 정강이를 물어뜯었다. 핏불의 목덜미를 짓씹었던 것처럼, 놈의 살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놈이 욕지기를 퍼부으며 비명을 질렀다. 씨발! 살려줘! 나는 속으로 외쳤다. 더 물어! 세게 물어! 놈의 상처에서 줄줄 피가 흘렀다. 침을 꿀꺽 삼키며, 목줄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맥스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의 정강이를 문 주둥이는 벌어지지 않았다. 놈의 친구들은 맥스를 떼어내려 다가오다가도 피를 보고 겁먹으며 뒤로 물러섰다. 이 개새끼 좀 떼어내! 그가 울다시피 소리를 냈다. 그의 친구 중 하나가 주먹만 한 돌을 가져와 맥스에게 던졌다. 머리에 돌을 맞은 맥스는 끝까지 아귀를 벌리지 않았다. 돌이 하나 더 날아왔다. 맥스는 그제야 신음하며 다리를 놓아주었다.

친구들에게 부축을 받은 그는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온갖 욕을 내뱉었다. 다리는 피투성이로 엉망이었다. 씨발, 너 죽여 버릴 거야. 그가 시뻘게진 눈으로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놈은 친구의 등에 업혀 골목을 빠져나갔다. 짧은 주둥이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핏발이 선 눈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간식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맥스의 목을 조인 목줄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놈에게서 승리했다. 처음으로 그가 내게서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까지 했다. 속이 역하면서도, 쿵쿵 빠르게 뛰었다. 진작 맥스를 산책시켰어야 했나. 울음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습게도, 알량한 죄책감이 의무처럼 들이닥치는 가운데 괴이한 희열감이 스멀스멀 머리를 디미는 것이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맥스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다 아물지 못한 목의 상처는 터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상을 내리듯 그 상처를 문질렀다. 핏물이 손바닥에 묻어났다.

맥스의 목을 묶은 목줄을 풀어주었다. 맥스는 목줄이 풀리자마자 뒷다리에 힘을 주고 내 눈치를 보았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링에서 풀려난 불독은 골목의 바깥과 나를 번갈아 보다가 아주 느릿하게 골목 바깥으로 움직였다. 다시 목에 목줄을 걸까, 불현듯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짐짓 눈을 피했다. 나와 거리를 둔 불독이 점점 빠른 발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새하얀 몸뚱어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목줄만을 든 채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화를 내실까. 목구멍에 돌덩이라도 처넣은 것처럼 목이 턱 막혀왔다. 그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산책 잘 시키고 왔냐.”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우물쭈물 말을 삼키다가, 목줄과 손바닥에 굳은 핏자국을 문지르기만 했다. 답이 없어서인지, 아버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바닥을 본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고는, 곧장 다가와 손목을 붙잡고 이곳저곳을 살폈다. 물렸어? 아뇨. 피뿐인 걸 확인한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제야 목줄을 내려다보았다.

“개는?”

“······도망갔어요.”

“허, 참······.”

아버지는 안 쓰길 잘했네,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티브이 앞으로 가 앉았다. 빨리 피 닦아라. 재수 없다. 나는 그 말에 머리를 주억거리곤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고 손바닥을 벅벅 문질렀다. 흐르는 물에 손을 대자 굳은 핏물이 조금씩 흐려졌다. 거울이 눈앞에 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정의로운 얼굴이 있을 게 당연했기에 구태여 보지 않았다. 놈의 다리에 생긴 상처들을 다시금 되짚으며, 눌어붙어 물로는 지워지지 않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를 비누로 거품 내 닦아냈다.

피가 남지 않은 맨손을 다시 확인했다. 손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살가죽에서는 비누 냄새만이 풍겼다. 환청이 들렸다. 어딘가에 있을 개의 울음소리가, 필사적으로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귓가를 어렴풋이 맴도는 것이었다.

COMMENTS

  • 맥스2

    저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몰입되네요

  • 맥스

    와, 집중해서 끝까지 읽었습니다!! 놓아줘서 고마워 현수야!!! 컹컹!! 현수의 말죽거리 잔혹사 기대됩니다~~

  • 멍멍

    와... 첫 줄 읽었다가 버스 기다리면서 망부석처럼 서서 끝까지 다 읽었어요... 브런치같은 서비스에 연재하는 건 어때요?

  • 자까님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작가님~~

  • 크으으으

    이야.. 진짜 수상할만 하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