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여행을 통해 느꼈던 모든 경험은 훗날, 옅은 미소 한 번쯤 짓는 기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애틋하고, 소중하게도 말이다.
정리. 편집실
23살, 나에게 제 2의 고향이 생겼다. 바로 러시아 제 2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다. 그곳에서 교환학생을 수료하고 다음 해에는 모스크바에서 인턴을 했다. 인턴십 중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휴가를 떠났는데, 반년 동안 머물렀던 기숙사는 물론이고, 도시 곳곳에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도 매년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지구 다른 편에 제 2의 고향이 있다는 건 마음 한켠을 든든하게 만든다. 물론 유학 시절에 만난 친구들과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만나기 어렵지만, 그렇기에 그때가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2019년 10월, 입행 동기인 동탄호수지점 유하윤 계장과 함께 입행 1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 장소는 프랑스 파리. 우리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만큼은 파리지앵이 되어 보고자 샌드위치, 마카롱, 과일 등을 포장해 피크닉을 했다. 당시 에펠탑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던 우리를 어느 한국 관광객이 사진으로 남겨주셨다. 예쁘다는 칭찬과 함께. 덕분에 우리는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을 잘 간직할 수 있게 됐다. 이 자리를 통해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해외여행의 그리움을 대신하기 위해 캠핑을 시작하게 됐다. 캠핑은 시원한 자연의 공기를 맡는 것 자체만으로 힐링이 됐다. 특히 충주호를 배경 삼아 멋진 뷰를 자랑했던 ‘충주카누캠핑장’을 소개하고 싶다. 충북 충주시 동량면에 위치한 충주카누캠핑장은 사이트(자리) 전체 뷰가 호수다. 좋은 자리를 고르기 위해선 일찍 출발하는 걸 추천한다. 텐트를 치다 보면 절로 배가 고파 라면, 고기, 조개구이 등 17끼가 거뜬하다. 해가 지면 캠핑의 묘미, 불멍의 시간이 찾아온다. 멍하니 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랄까. 멋진 뷰를 자랑하는 충주카누캠핑장, 이번 여름에 방문해보길 권하고 싶다.
군 복무 당시 모은 군 적금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하지만 20대 청춘의 지갑 사정으로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그중 하나가 아이디어와 경험담을 활용할 수 있는 공모전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외항사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1등으로 선발됐다. 포상으로 UAE로 떠나는 항공권 2장을 거머쥘 수 있었다. 당시 항공권으로 어머니와 함께 UAE를 거쳐 아프리카, 이집트까지 다녀왔다. 특히 이집트에서 맞이했던 2018년 새해를 잊을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총 36개국이라는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아니다. 여행은 마음이다. 여행은 소유가 아닌 존재다. 어떤 마음으로 자연과 문명 그리고 사람을 품는가에 따라 여행은 달리 보인다. 달리한 생각, 경험 그리고 앎의 깊이와 폭을 키워 세월이 흐를수록 존재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정신문화의 수도라 이름 붙은 안동. 이곳에서 마주한 풍경에서 옛사람을 보았고, 옛사람의 생각을 읽었으며, 분주한 농촌의 일상을 마주쳤다. 굳이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에 골몰하였던 옛사람으로 빙의하지 않더라도, 안동의 풍경은 여행자에게 유교의 가르침을 떠올려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녁이 되자 동쪽 봉우리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소쩍새가 수줍은 노래를 시작하고, 계곡의 물길은 볼륨을 높였다. 달빛은 별빛을 삼켰다. 나는 달빛과 물소리를 벗 삼으며 강호(江湖)에 깃든 선비가 된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이 고장에서 만든 막걸리를 도구 삼아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