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트 있는 말

피, 땀, 눈물이 담긴

내 소중한 자격증, 자랑 좀 할게요!

피, 땀, 눈물이 담긴 내 소중한 자격증, 자랑 좀 할게요!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성장이 끝난 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배운다.
어쩌면, 아이보다 어른이 된 지금이 성장하기 좋은 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어른들의 치열한 성장의 결과물, 내 특별한 자격증 이야기.

정리. 편집실 일러스트. 배지혜



“험난한 여정 끝에서 맛본 달콤한 열매”

2018년 하반기 중 두 달간 주말마다 2시간 30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어렵사리 취득한 자격증이기에 소개합니다. 삼성동 무역센터 내에 있는 아카데미로 합격하지 못할 시에 비용 720,000원도 함께 사라지는 아주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늦여름에 외환관리사 자격증 첫 강의를 들었으며, 종강 후 시험을 마치니 초겨울이었습니다. 주말마다 쉬지도 못하고 먼 길을 떠나 종일 학과에 시달린다는 것이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내용도 매우 어려워 몇 번을 ‘괜히 시작했다. 그만 두고 편히 있자’라고 생각했지만, 비용이 너무 걸려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이란 시험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시험 일이 외환관리사 강의 일과 겹치는 참혹한 상황에 닥친 적도 있습니다. 오전 강의 시간에 빠지며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 시험을 치루고 바로 오후 강의에 참여하는 등 외환관리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운이 좋아서인지 공을 알아서인지 두 자격증 모두 취득에 성공했습니다. 그 고충과 너무 기뻤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알면 알수록 재밌는 바리스타의 길”

요즘 커피는, 흔한 마실 거리가 아니라 ‘소통’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들과 커피 한 잔을 두고 오래오래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바리스타 2급, 바리스타 1급 자격증에 도전해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자격증을 딴 후 성취감에 뿌듯했는데, 업무에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기존 거래처 및 신규 거래처 섭외 시 커피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 분위기가 한결 좋아지는 걸 느꼈거든요. 로스팅, 라테 아트 등 생소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운, 바리스타. 한번 도전해보는 건 어떠세요?


“맨해튼 바텐더가 되다”

뉴욕에 인턴으로 일하러 갔던 시절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일하면 인턴으로 받는 돈으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죠.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렇게 근근이 힘든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어느 날, 인턴을 하며 알게 된 동료가 “뉴욕 맨해튼(도시)에서는 맨해튼(칵테일)을 먹어야 힘이 난다”며 저를 위로해주려 칵테일을 마시자고 하더군요.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었어요. 그리고 술에 대한 팁이 엄청 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 이후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뉴욕 학원에 수업을 등록했습니다.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바텐더 자격증 필기 및 실기시험에 합격했어요.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로, 조그마한 ‘BAR’에서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팁으로 번 돈이 인턴 수입의 5배가 넘더라고요. 덕분에 인턴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맨해튼에서 맨해튼을 마시다가 딴 바텐더 자격증, 이쯤 되면 자랑할만 하죠?


“바다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점이 서산에 있기 때문에 평소 자주 보이는 건 논입니다. 일명 ‘논뷰’라고나 할까요. 그러다가 문득 바닷속 세상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다 보니 스킨스쿠버 다이빙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키나와섬 가보셨나요? 그곳의 스나베해안에서 투명한 바다에 물고기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힐링이 되거든요. 처음엔 물고기를 보는 것만으로 좋았는데, 깊은 바다는 어떨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깊이 잠수할 수 있는 딥다이빙을 전문적으로 배웠어요. 수개월 동안 열심히 해외투어를 한 결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분이 짜릿하더라고요.


“선생님을 꿈꿨던 은행원”

저는 지금 중국우리은행 심천분행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자격증’이 뭔지 생각해보니 하나가 떠오르더라고요. 바로 교원자격증입니다. 안타깝게도 2010년에 자격증 원본을 은행에 제출하는 바람에 자격증 이미지 파일은 없네요. 정식 자격증 명칭은, 중국어 중등2급 정교사 자격증(교원자격증)입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재학시절, 교직이수를 통해서 교원자격증을 취득했는데요. 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대학교 4학년 때, 4주간 고향으로 교생실습을 떠났습니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에피소드가 샘솟는 남녀공학에서의 설레는 교생실습 생활을 기대했어요. 현실은 그게 아니었지만요. 남고에서 4주간 후배들과 함께 수업하고, 축구하고, 농구하고, 땀 흘리다가 새카맣게 타서 돌아왔네요. 당시의 계획대로 선생님이 되지는 못했지만, 은행원이 된 지금도 교원자격증을 떠올리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20대의 모습과 함께요.


“슬럼프를 벗어나게 해준 도전”

악성 민원 업무를 전담한지 어언 3년차쯤 되었을 무렵,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업무가 업무였던지라 악성 고객들로 하여금 매일 폭언을 들어야 했거든요. 퇴근하고 나면 우울감 때문에 술에 의지해 잠드는 날이 많아졌죠. 그러다 어느 날, 곤히 잠들어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일어나서 평소 하고 싶던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가맹사업(프랜차이즈)이 떠오르더라고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잖아요. 마음먹고 바로 관련 대학원에 지원해 해당 자격증 공부(가맹거래사)를 시작했습니다. 야간에는 사업주들의 사주에 맞춰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역술인협회에 등록해 ‘역학상담사’ 공부를 이어나갔죠.
한차례 좌절을 맛보긴 했지만 원하던 자격증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학위증과 자격증을 손에 쥐고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은행에서 ‘숍인숍’이나 편의점과 제휴를 할 때 등 써먹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퇴직하면 은행 경력과 자격증을 살려 제 사무실을 차리려고요. 소상공인들에게 힘이 되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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