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상황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종이와 금속으로 구현하는 화폐를 사용한 지 수 세기가 지난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화폐의 형태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럼에도 최근 CBDC에 대한 논의가 급격히 불거지고 있는 것은 단연코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의 열풍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암호화폐로 인해 불거지고 있는 CBDC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글. 박정호 명지대학교 특임교수
사실 종이나 금속이 아닌 디지털 형태로 발행된 법정화폐에 대한 논의는 일부 저개발 국가에서는 적극적인 검토가 지속되어 왔다. 그것은 시장성을 확보하지 못한 낙후된 도서지역 내지 산간지역 국민들에게도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CBDC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들 낙후지역의 경우에는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민간 상업은행들이 지점을 개설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의 국민들은 저축, 대출 등의 기초적인 금융서비스마저 누릴 수 없는 상태이며, 이로 인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이 투여되는 오프라인 지점 형태의 금융서비스 구축이 아닌,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금융서비스가 큰 대안으로 부상했고, 이러한 서비스가 가장 보편적으로 제공되기 위해서는 CBDC가 최적화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구 규모가 작은 태평양 내지 서인도제도 상의 작은 섬나라 중에서도 CBDC를 고려하는 국가들이 많다. 인구 규모가 100만 명 이하 수준인 국가의 경우, 소량의 화폐 추가 발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내지 경제적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체적인 화폐 발행이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타 중대형 국가와는 달리 소량의 화폐를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화폐 발행 시 유발되는 인쇄비용 등도 커진다. 이 때문에 이들 소규모 국가들 역시 CBDC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우루과이, 튀니지, 마샬군도,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이 디지털 형태의 법정통화를 고민해 왔다. 최근 엘살바도르 국가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지정한 배경 역시 자체적인 가상화폐 발행 기술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비트코인을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최근 브라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에서도 비트코인을 통한 세금 납입 내지 기타 공적 지불 수단으로 인정하려는 추세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앞서 열거한 개도국 못지않게 주요 선진국들에서도 여러 이유들로 인해 CBDC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먼저 스웨덴의 경우 금속 및 종이 화폐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환경오염과 경제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CBDC 사용과 기술적 검토를 2020년까지 마무리한 상태이다. 네덜란드 역시 2016년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CBDC 개발을 마무리한 상태이며, 현재는 네덜란드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험 운영하는 상태이다. 러시아 역시 푸틴 대통령이 암호루블(CryptoRuble) 발행 계획(2019년 예정)을 공식 발표하였으며 2018년 1월에는 동 디지털화폐를 법정 지급수단으로 허용한 상태이다.
CBDC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역시 중국이다. 중국은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인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 선도적으로 추진하여 19년 말부터 일부 지역에서 일반인 대상 DCEP 시범 테스트 시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는 시점인 22년 2월에 맞춰서 세계 최초로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모든 국가에서 CBDC 사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뉴욕연준 총재가 CBDC 발행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등 아직까지 CBDC 발행계획이 없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일본과 영국의 경우에는 디지털화폐 발행을 중요한 연구 과제로 선정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CBDC 발행 계획은 현재까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CBCD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입장은 어떠한가? 현재 한국은행에서는 CBCD 발행에 대비하여 제도적인 연구와 기술적인 환경 구현을 위한 실질적인 내부 팀을 구성한 상태이다. 이를 통해 여러 차례 연구수행 및 관련 전문가와의 협의를 통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둔 상태이나 아직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발표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처럼 현재 CBDC는 국제사회의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CBDC가 실질적으로 보편적인 화폐 형태로 발행되기 위해서는 향후 수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 인류는 그동안 종이화폐에 근거하여 다양한 법제도를 구비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이 화폐 대신 가상화폐를 발행할 경우, 기존 금융정책과 통화정책에 미칠 수 있는 파장과 금융시장의 위축 등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불어 관련 법 개정 역시 수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현재 CBDC는 커다란 흐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