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혜화동지점 조은빈 계장(제15기 우리가족 편집위원)
2017년 가을, 버석거리는 마음으로 초가을을 맞이하던 중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가 있었다. N포세대의 삶을 배경으로 그린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한창 방영 중일 때 나는 처음으로 취업준비를 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자신감 없는 하루들을 보내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상황 때문이었을까? 극중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꽤 큰 위로를 받으며 생각의 변화를 할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신피질의 재앙’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여주인공이 “스무 살도 아니고 나이 서른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라고 넋두리를 늘어놓는 장면에서 남주인공이 한 말이다. 신피질은 스무 살, 서른, 이런 시간개념을 담당하는 두뇌의 한 부위인데 논리적 사유나 판단 등의 지적 활동을 하는 부분이다. 그에 의하면 고양이는 신피질이 없어서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우울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는단다.
서른도, 마흔도 고양이에겐 똑같은 오늘일 뿐인 것이다. 스무 살이라서, 서른이니까, 곧 마흔이라서, 시간이라는 걸 그렇게 나누어서 자신을 가두는 건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 오직 인간만이 나이라는 약점을 공략해서 감정을 소비하게 만든다. 이게 그가 말하는 신피질의 재앙이다.
시간이 흐르면 어른이 되고 무언가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아래 있던 나에게는 작고 신선한 충격을 주는 말이었다. 당시 나는 취업을 처음 준비하던 시기였기에 그동안 내가 쌓아온 모든 게 서툴고 아쉽고 당당하지 못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신피질의 재앙이라는 대사를 통해서 나를 대하던 나의 태도를 좀 더 여유 있게 바꿀 수 있었다. 어제오늘의 실수와 아쉬움을 ‘나도 이건 이번 생에 처음 해보는 건데 뭐~’라고 되뇌이며, ‘다음에는 더 잘해내 봐야지’라는 자기다짐의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시간을 더욱 긍정적인 감정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아쉽고 자신감 없던 나의 어제와 오늘이 달라 보이게 되었다.
신피질이 주는 시간이란 개념을 어떻게 소비할지는 각자의 태도에 달려있다. 신피질을 재앙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축복으로 받아들일지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오늘의 실수와 어려움이 신피질로 인해 내일은 더 잘해낼 수 있을 거라 다짐하게 할 수 있는 태도 또한 신피질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변화하는 계절의 한 순간에 서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기능을 지혜롭게 이용해 과거 현재 미래를 평화롭게 넘나들며 나 자신을 좀 더 있는 그대로 살 수 있게 하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