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대한 생각

진실한 사랑에 대하여

글. 백영옥 작가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의 저자)
그림. 오하이오

가장 좋아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낌없이 주며 사랑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그것’이 상대가 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없던 때였다. 몸에 좋은 콩밥과 따뜻한 미역국을 아이에게 먹이는 엄마의 정성이 콩 비린내를 도무지 참을 수 없어하는 아이의 식성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방문을 담그고 수 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던 한 은둔형 외톨이 남자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아침마다 엄마가 끓이던 미역국과 콩밥이 싫었다고 했다. 몸에 좋다며 밥 위에 콩을 얹는 엄마가 자신을 학대한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허약한 아들에게 몸이 좋은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사랑은 이처럼 아들에겐 고통으로 남았다.

사랑은 생각보다 쉽게 폭력으로 오염된다. 그렇게 우리는 종종 ‘사랑’과 ‘집착’ ‘소유욕’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것이 때로 ‘너무 사랑해서 때렸다’거나 ‘사랑하기 때문에 잔소리를 멈출 수 없다’는 말로까지 이어진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 수없이 문자를 보내고, 사랑하기 때문에 앞에 있는 온갖 ‘장애물’을 제거해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집착 같은 사랑에 시달린 연인은 점점 지쳐가고, 제때 실패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니?”라는 말은 많은 자식들이 부모에게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죄책감을 건드려 마음을 조종하려는 ‘심리’를 심리학에선 ‘정서적 협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정서적 협박’은 부모 자식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연인관계나 동료, 친구, 형제자매 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 가령 “네가 이렇게 화를 내기 때문에 나는 거짓말 할 수밖에 없었어!”라고 말해 애초에 거짓말한 자신의 잘못을 상대에게 투사하거나 “헤어지자고 말하면 내가 무슨 짓 할지 나도 몰라!”라는 식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정서적 협박’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를 꽉 끌어안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대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그 사람이 우는지, 화가 났는지, 도움이 필요한지, 아니면 시간이 필요한 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랑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나는 그걸 ‘안전거리’라고 부른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 그 안전한 거리가 상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느껴지지만, 가장 어려운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일 수도 있다. 답답하다고 해서 대신 해주지 않고, 묵묵히 실패를 옆에서 지켜보며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게 어른의 사랑이다.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안전거리’는 그 사람이 지구 옆에 있는 ‘달’같은 위성일 때 가능하다. 나는 이상적인 관계는 ‘예측 가능한 사이’라고 믿는다. 힘든 일이 생겨도, 피치 못하게 떨어져 있어도, 혹여 내가 실패해도, 내 곁에 있어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한 사람이 되는 일 말이다. 30분 후에 돌아오겠다는 부모의 말을 믿는 아이는 울지 않고 혼자서도 놀 수 있다. 부모가 돌아올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말’과 ‘행동’으로 아이에게 자신의 말이 언제나 지켜진다는 걸 수없이 인지시켰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되는 것이 ‘안정 애착’이고 이것이 바로 ‘안전거리’다. 상대가 떠나도 돌아올 것임을 아는 일. 그렇게 혼자일 때 외롭지 않을 수 있고, 둘일 때 더 행복해지는 사랑.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다.

백영옥

2006년 단편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08년 첫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산문집으로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다른 남자>,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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