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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만드는 웹진 2025년 4월  339번째 이야기

2025년 4월  339번째 이야기

여기가 거기

쉬엄쉬엄 걸어볼까, 서산의 봄 햇살 아래서

빨리빨리 돌아가는 일상이 가끔 버겁다면, 충남 서산을 추천한다. 이곳에서는 조금 느려도 괜찮으니까. 오히려 쉬엄쉬엄 여유를 가지고 도시 산책에 나설 때, 그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고즈넉한 한옥 뒤편에 펼쳐진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도 좋고, 예스러움이 가득한 읍성길을 살피며 늑장을 부려도 좋다. 봄 햇살 아래서 자연과 교감하는 이 시간이, 우리의 일상을 더 단단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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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이름 속에는!

충남 서산은 당진시, 예산군, 태안군과 인접해 있는 도시다. 지금이야 교통편이 좋아져서 인근 지역들을 쉽게 오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외부와 교류하기 불리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유배지로 이름이 높았을 정도라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한 고집 한다는 사람들이 유배 가는 곳’으로 알려졌다고. 하지만 세월이 흘러 2000년대 중후반부터 테크노밸리 및 여러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늘고 있다.

서산의 한자는 상서로울 서(瑞) 자에 뫼 산(山)이다. 한자 이름대로 ‘길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산’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지형적으로는 ‘서쪽에 위치한 산’이라는 뜻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해미현, 해미군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산군’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서산만의 독특한 사투리와 발음도 알아두면 재밌다. 서산 토박이들은 게국지를 께꾹찌, 게를 그이, 개를 가이라고 발음한다. ‘시절’이라는 사투리는 ‘바보나 한심한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서산 여행 시 이런 부분도 알아두고 가면 쏠쏠한 재미가 될 것이다.

기방가옥의 건축학적 가치

유기방가옥은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에 지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한옥처럼 보이지만, 서산 지역의 전통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덕분에 2005년 10월 충남 민속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북쪽으로 ‘ㅡ’자형의 안채와 서쪽의 행랑채, 동쪽 사잇담과 비교적 현대에 지어진 주택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원래 안채 앞에 중문채가 있었는데, 1988년에 철거하고 누각형 대문채를 세웠다. 가옥 곳곳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좌우 대칭구조로 배치된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양반가 건축의 특징이다. 전통 양반 가옥의 건축양식을 지켜 만들어져서 향토사적,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크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관리를 하면서 역사적 가치를 지켜 나가는 중이다.

선화, 비자나무, 송림이 어우러진 곳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이곳의 가치는 꽃피는 계절, 봄이면 배가 된다. 딱 오르기 좋은 정도의 야산에 소나무숲과 노란 수선화가 빼곡히 들어차기 때문이다. 수선화라고 하면 왜인지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수선화는 우리나라 옛 선비들의 글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수선화는 과연 천하의 큰 구경거리”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조선 후기 문인 이덕무는 수선화 향기를 “군자의 향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매력적인 꽃으로 알려진 수선화는 유기방가옥과 서산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3~4월이 되면 이곳의 수선화를 보러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 정도로 말이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올해는 유독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지만, 아쉬워 말자. 한편에는 울창한 소나무숲과 수령 350여 년의 비자나무가 있으니까. 소나무가 빼곡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비자나무를 직접 바라보면 자연의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기록에 의하면 1675년 제주도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인데, 보통 제주에서 군락을 이루는 비자나무 특성상 중부지방에서 이렇게 장수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 산림학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미읍성, 아픈 역사를 품고 쉼터로!

해미읍성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조선 태종 14년에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해, 세종 3년에 완성했다고 알려진다. 원래는 동, 남, 서 세 방향에 문루가 있고, 두 개의 옹성과 동헌, 객사 두 동, 총안, 수상각 등이 있는 큰 규모였으나 지금은 복원된 동헌과 객사만 남아있다. 읍성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러 조형물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옛날 무기들과 회화나무다. 해미읍성에서는 매년 병영체험 축제가 열리는데, 관아체험, 옥사체험, 군영체험 등을 해볼 수 있다. 그리고 회화나무는 1866년 천주교 박해 때 관아가 있는 해미읍성으로 1,000여 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잡혀 와 고문당하고, 처형당한 역사적 흔적이다. 충청도 사투리로 ‘호야나무’라고 고유 이름처럼 불리는데 제대로 된 학명은 ‘회화나무’다. 그 옛날에는 아픈 역사가 서려 있지만, 지금은 봄나들이 나온 가족들, 친구 연인과 함께 여행 온 여행자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주민들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여유를 누리며 힐링하는 곳으로 거듭났다. 108계단을 지나 청허정까지 올라 보면 읍내가 한눈에 보이는데, 이 또한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힐링 포인트다.

Taste

자극적이지 않은 추억의 맛 떡볶이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성마을4길 24-1

해미읍성에서 걸어서 3분 정도 지나면 나오는 ‘얄개분식’은 <응답하라 1988>의 배경지다. 주인공 덕선이와 친구들이 모여 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브라질떡볶이 가게가 바로 여기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드라마 속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쉽지만, 떡볶이 맛은 아쉽지 않다. 자극적인 떡볶이가 넘쳐나는 요즘, 오히려 반가운 맛이다. 메뉴가 떡볶이 하나뿐이라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Place

추억의 목욕탕이 카페로?!

카페 바뇨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성마을4길 19

카페 바뇨는 20여 년간 방치된 시골 목욕탕 ‘용천’을 개조해 만든 카페다. 목욕탕 굴뚝이 여전히 남아있어 찾는데 어렵지 않다. 이곳을 탄생시킨 곳은, 사회를 위한 디자인 협동조합이다. 그들은 버려져 폐허가 된 곳을 재생하자는 의미로 해미마을의 디자인을 시작했고, 카페 바뇨 리모델링은 그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이곳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해미 사람들 추억의 한 자락이 퍼져 나가는 프로젝트의 출발’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 마음은 지금까지 잘 유지되는 중이다. 마을 주민들은 추억이 서린 목욕탕이 다시 문을 연 것 같아 반기고, 여행자들은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간다. 메뉴는 일반적인 커피와 디저트가 있는데, 여기서는 목욕탕 콘셉트에 맞춘 사우나 세트(식혜, 아메리카노, 구운계란)를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예스러워 오히려 힙해!

목장슈퍼

충남 서산시 운산면 해운로 761

목장슈퍼는 편의점이 넘쳐나는 요즘, 레트로 감성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누군가가 이곳의 레트로한 외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올린 게 SNS에서 핫해지면서, 포토존이 되었다. 간판부터 실내, 외관까지 세월을 그대로 담은 인테리어가 정겹다. 정겨운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 자리에서만 50년이 넘게 슈퍼를 해온 주인 할머니가 반겨준다. 무뚝뚝한 말투로 “커피 한 잔 먹고 가요”라며 권하시는데, 정이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요즘 스타일의 과자 말고 예스러움이 듬뿍 담긴 뽀빠이, 뻥튀기, 식혜가 더 잘 어울린다. 거기에 주인 할머니가 직접 구워주는 쥐포까지 곁들이면, 레트로 ‘한 상차림’ 완성! 슈퍼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주인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