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초남지점 김현정 계장
은행-집-은행-집의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한 지가 어언 1년이 넘었다. 이젠 코로나19 이전의 내가 무엇을 하며 여가를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이다. 단조로운 생활이 다소 고착한 느낌이 들던 화창한 어느 주말, 집콕하여 TV를 보니 내 생활과 달리 각종 예능, 다큐, CF의 초점은 온통 '아웃도어'를 향해 있다. 유해 환경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자연에서의 활동, 예를 들면 캠핑, 낚시, 골프 등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럴 듯한 장비들로 즐기는 모습이 생각보다 좋아 보인다.
마침 오랜만에 안부를 묻게 된 친구가 ‘낚시’가 취미라며, 이것이 굉장한 힐링을 선사한다고 내게 함께하자고 권유를 한다. 나는 다소 낯선 장르에 거절부터 했으나, 친구는 근래 낚시터에 2-30대의 여성 앵글러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회유를 해왔다.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날씨 좋은 주말에 콧바람이라도 쐬자 싶어 이내 낚시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살면서 전혀 하지 않을 법한 일도 시도하게 하는,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내 삶의 모습이랄까?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채, 우리는 양평의 한 저수지로 향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혹은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해서인지 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낚시 초보자인 내게 우중(雨中) 낚시의 의지는 있을 리 만무했고, 비릿한 비내음이나 맡자는 결론을 내렸다.
비를 피해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소위 ‘물멍’의 시간을 가져 본다. 또 다른 한 쪽에는 수십 잔의 커피를 소비해, 사은품으로 치열하게 획득한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에픽하이의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를 선곡했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 어둑한 저수지는 생각보다 그 모양새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고, 내심 그리던 첫 어획의 꿈을 이루지도 못했지만, 뭔가 그 순간의 고즈넉한 마음이 좋았다. 이런저런 잡념들이 스쳐 가며 평온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어떤 기사를 보니, 근래의 유통·소비의 트렌드가 '디깅 소비'라고 한다. 이는 적극적으로 취미를 즐기고 좋아하는 영역을 깊게 파고드는 '디깅족'의 소비가 큰 축으로 자리를 잡았음을 의미한다. 낚시에 심취해 꽤나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고, 명당을 찾아다니는 친구를 보면서 처음에는 굳이 취미생활에 저렇게 비용과 에너지를 소비할 일인가 의아해했다. 그런데 막상 경험해보니, 취미나 이색적인 경험들은 루틴한 주중의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워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삶의 전반을 바꾸어놓은 코로나19는, 한편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 가치 있는 여가를 보낼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취미와 즐거움에 대한 고민과 투자는 곧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성찰로 연결될 것이며, 직장 생활을 포함한 삶의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라는 어려운 미션에 한 발짝 다가가기 위해, 흥미롭고도 의미 있는 취미들로 가득한 한 주를 보내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