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

인플레이션 자극, 스태그플레이션 촉발할 수도

‘공급부족’ 발 원자재 가격 폭등

“모든 것이 동났다(We’re out of everything).”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지난해 연말부터 최근까지 원자재 시장의 흐름에 대해 평가한 말이다.
원자재 시장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구리는 겨우 일주일 치 재고만 쌓으며 연명하고 있고, 알루미늄도 부르는 게 값이 됐다.
원유는 말할 필요가 없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배럴 당 -37달러까지 대폭락했던 국제유가는 어느덧 배럴 당 100달러를 넘보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곡물값도 폭등중이다. 밀 옥수수 등 가격이 추세적 상승을 이어가고 커피는 1년만에 100% 넘게 급등했다.
대체 원자재 가격은 왜 이렇게 급등하는 것일까.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글. 정철진
(경제칼럼니스트, 진 투자컨설팅 대표)

원자재 가격 상승, 현재 상황은

지금까지 나타났던 원자재 가격 상승은 대부분 수요가 많아서였다. 지난 2005년~2009년의 ‘원자재 슈퍼 사이클’을 보면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원자재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곡물가격 상승 역시 ‘많이 먹어서’였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전혀 다르다. 수요가 많다기 보다 공급이 부족해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불과 1년~2년 사이에 이런 현상이 나온 것인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대부분 설비투자를 줄였고, 근로자를 대폭 구조 조정한 터라 공급망이 완전파괴됐다. 또한 원자재를 싣고 나르는 물류도 멈춰선 ‘물류대란’까지 더해졌는데 이런 가운데 야외활동이 가능해지자 수급이 깨져버렸다. 수요는 살아나는데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게 된 것. 가령 최근 20% 넘게 오른 천연고무의 경우 아직도 농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낙관론자들은 “지금 원자재 가격 상승은 일시적이고 코로나19만 잡히면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원자재의 왕, 원유로 보는 문제의 심각성

원자재의 왕인 원유를 보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원유는 전체 원자재 가격을 리딩한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대부분의 제조원가가 다 올라 여타 원자재들의 연쇄 가격 상승을 이끌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유가 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산유국들의 의도적인 ‘공급조절’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경제는 탄소중립으로 가고 있고, 당장 5년~10년 후엔 석유는 신재생에너지로 대체될 것이다. 이에 위험을 느낀 산유국들이 공급을 조절해 유가를 끌어올려 최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이다. 여기에 설상가상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도 영향을 주고 있다. 원자재 강국인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켜 서방세계에선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수출제재를 가해야 하는데 이건 결국 ‘유가급등’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코로나19의 먹구름이 걷히고 ‘리오프닝’이 활성화되는 것 또한 양날의 검이다. 설비투자를 늘리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건 좋지만 역설적으로 원유 수요를 높여 국제유가를 더 올릴 수 있다. 그래서 상당수 투자은행들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또한 ‘원자재의 무기화’도 향후 변수가 될 수 있다. 미래산업에서 기득권을 잡으려 원자재를 통제한다는 것. 가령 전기차 배터리를 보자. 핵심 원자재는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망간, 구리 등인데 중국이 수급을 쥐고 흔든다. 흑연은 중국이 80%를 생산하고, 니켈은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생산되는데 그 배후엔 중국자본이 있다. 리튬도 호주에서 많이 생산되지만 마지막 가공은 중국이 90%를 책임진다. 무엇보다 중국은 ‘희토류’를 독점하고 있는 터라 여차하면 원자재 때문에 중국이 산업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있다.

곡물가격 역시 공급부족 때문이다. 이상기후가 벌써 3년 가까이 세계 작황을 망치고 있다. 이제 이상기후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돼 버렸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니아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세계적인 곡물수출국가인 우크라니아 쪽 물량이 묶여버리고 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

최악을 가정한 대처가 필요한 때

이처럼 수요 쪽이 아닌 공급 쪽 문제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경제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인플레이션)는 크게 오르는데 수요는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다. 세계경제는 지난 1970년대~1980년대 오일쇼크 당시 이런 상황을 겪었다. 이 때문에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으면 올 세계 경제성장률이 현재 전망치(4.1%)의 4분의 1 수준인 0.9%까지 폭락할 것”이라고 전했다. 더 큰 걱정은 지금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물가를 잡으려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재가격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다시 금리가 급등할텐데 결국 ‘부채폭탄’을 건드리게 된다. 한국경제 차원에서 보면 기업들은 원자재 부담에 휘청댈 수 밖에 없고, 가계부채 1850조 원 시대에 가계들은 빚에 허덕대 소비(수요)는 더 줄어드는 불황 국면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 막연한 낙관보다는 최악을 가정하며 대처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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