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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의 명화

나를 설명하는 말은 언제나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기대와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 사이. 우리가 마음속에서 세우는 다짐들도 결국 그 좁은 틈을 오가며 버티는 연습일지 모른다. 서양 미술사 속에도 이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한 화가들이 있다. 몸과 관계, 환경이 쉽지 않은 순간에도 남들이 원하는 모습 대신 자기에게 맞는 얼굴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이다.

NAME
프리다 칼로,
<짧은 머리의 자화상>

(1940)

1940년, 멕시코시티. 프리다 칼로는 거울 앞에 앉아 긴 머리를 한 번에 잘라낸다. 오랫동안 그녀를 상징하던 검은 머리카락이 바닥을 덮는다. 프리다는 얼마 전,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 생활이 끝났다. 반복된 외도와 다툼, 화해와 실망이 이어지다 마침내 관계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어린 시절 사고와 수술로 남은 흉터에 더해, 이번에는 관계가 남긴 흔적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 직후 그린 자화상에서 프리다는 멕시코 전통 의상이 아닌 남성용 검은 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의자에 앉아 있다. 짧게 자른 머리,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자세, 손에는 머리칼을 자른 가위가 들려 있다.

바닥에는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다. 작품 상단에는 스페인어 노래 가사가 적혀 있다. “네가 사랑한 건 내 머리카락이었지. 이제 그건 없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다.” 프리다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병든 몸, 헌신적인 아내라는 이미지로만 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 이미지를 상징하던 것들을 치운다.

풍성한 머리카락, 화려한 치마, 장신구. 그 뒤에 남은 것은 조건이 지워진 채 앉아 있는 한 사람이다.

이 자화상은 상처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관계와 역할을 덜어냈을 때 남는‘나’가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시도였다. 이제 그녀는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 누구의 시선도 상관없다. 프리다는 그 다짐을 과장된 외침이 아닌, 머리카락을 잘라낸 자신을 담담하게 내보인다. 나다움이란 말이 없어도, 그 선택의 무게는 화면 전체에 조용히 깔려 있다.

NAME
에곤 실레, <칠성초가 있는 자화상>

(1912)

1912년, 오스트리아 빈. 스물두 살의 에곤 실레는 이미 “불편하다, 병적이다”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클림트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도와주었지만, 대중과 평단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성공을 위해 귀족이나 부르주아를 그리기보다, 주변의 젊은이들과 연인, 자신을 계속해서 그려 넣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뼈가 도드라지고, 팔다리는 각이 심하게 꺾여 있다. 눈빛은 어딘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배경은 비어 있다. 당시 사람들이 기대하던 ‘단정한 초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실레 스스로도 자신의 삶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집안의 갈등, 돈 문제, 사랑 문제까지, 어느 것 하나 편안한 것이 없었다.

<칠성초가 있는 자화상>에서 실레는 화면 오른쪽을 거의 가득 채운다. 검은 옷 차림의 상반신이 왼쪽으로 비스듬히 틀어져 있고, 긴 목과 얼굴이 과장되게 꺾인 채 우리를 빤히 바라본다. 커다란 눈, 튀어나온 귀, 굳게 다문 입이 어색하고 긴장된 인상을 준다.

밝은 회색 배경 왼쪽에는 가느다란 줄기와 함께 주황색 칠성초 열매와 마른 노란 잎이 몇 개 매달려 있다. 인물의 검은 옷과 창백한 피부, 칠성초의 붉은 색이 강하게 대비되면서, 젊은 화가의 불안한 기운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실레가 원했다면 ‘보기 좋은’ 자화상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는다. 이 자화상은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려는 그림이 아니라, 정리가 되지 않아도 지금의 나를 피하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실레의 삶은 결국28살에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끊어졌지만, 이 젊은 시절의 자화상 속에서 그는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둔다. 아직 미완성이라도, 불안하더라도, 그 상태 그대로의 자신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NAME
앤드루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

1948년, 미국 메인 주의 한 농가.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는 이웃집 여성 크리스티나 올슨을 자주 창밖에서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장애로 인해 걸을 수 없는 몸이었다. 멀리 언덕 위에 회색 농가가 있고, 그 아래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와이어스가 본 크리스티나는 두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팔과 상체의 힘으로 몸을 끌며 들판을 가로지르곤 했다. <크리스티나의 세계>에서 화가는 그녀를 뒤에서 그렸다. 관객은 얼굴을 보지 못한다. 바닥에 엎드린 몸, 마른 팔, 약간 비틀린 등, 그리고 멀리 놓인 집과 언덕만이 보인다.

처음 그림을 마주하면 먼 거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저 집에 닿기까지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두고 “슬프다”고 말한다. 하지만 와이어스는 이 그림이 동정의 시선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에게 이 들판은 크리스티나가 수십 년간 자기 힘으로 오가며 눈에 익힌 세계였다.

집과 언덕, 풀밭과 흙길은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시골 풍경이지만, 크리스티나에게는 자신의 몸으로 측정한 거리이자 자기 삶의 반경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달릴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갈 수 있는 만큼의 세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 그림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없다. 대신, 한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에 닿아가던 풍경이 조용히 놓여 있다.

세 그림은 나다움에 대한 거창한 선언 대신, 각자가 선택한 방향과 속도를 보여준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대단한 자기 규정보다는, 오늘 하루 어떤 선택을
조금 더 나답게 할 것인가에 대한 조용한 확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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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일 1998년 12월 1일 / 발행인 정진완 / 편집인 박준태 / 담당자 우리은행 브랜드전략부 조영희 과장(02-2002-4595) / 기획·디자인 경성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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