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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0
3월의 공기는 묘하다. 겨울의 차가움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볕에서는 어딘가 모를 간질간질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 공기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신입’들이 탄생한다. 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 새 직장에 첫발을 딛는 사회 초년생, 혹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부모님까지. ‘신입’이라는 단어는 설레지만, 동시에 무겁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관 속 화가들은 말한다. 그 서툼과 두근거림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새로운 시작 앞에 선 우리 가족에게, 용기를 건네는 그림 세 점을 소개한다.
(1858)
첫 번째 그림은 농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첫걸음>이다. 텃밭에서 일하던 아빠가 잠시 삽을 내려놓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고, 엄마의 품에서 벗어난 아기가 아빠를 향해 뒤뚱뒤뚱 걸음을 떼는 순간이다.
밀레는 평생 농민들의 고된 노동을 성스럽게 그려왔지만, 이 그림에서만큼은 노동의 땀방울 대신 햇살 같은 가족애를 담았다. 훗날 빈센트 반 고흐가 이 그림에 깊이 감동하여, 흑백이었던 원작에 자신만의 색을 입혀 새롭게 다시 그렸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고흐가 이 그림을 다시 그린 것은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1890년, 동생 테오에게 첫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이었다. 고흐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밀레의 ‘어린이의 첫걸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은 끝내 갖지 못한 소박한 가정의 온기를, 붓끝으로나마 만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세히 보면 아기의 몸은 앞으로 쏠려 있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롭다. 하지만 아기의 표정은 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뒤에서는 엄마가 단단히 잡아줄 것을, 앞에서는 아빠가 안아줄 것을 본능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신입다움’이란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처음부터 잘 뛰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처음엔 엉거주춤하고, 중심을 못 잡아 비틀거린다. 중요한 건, 넘어졌을 때 뒤에서 잡아줄 사람과 앞에서 두 팔 벌려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다. 3월의 우리가 겪는 실수들은 아기의 첫걸음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 그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 말해 보자. “넘어져도 괜찮아. 그건 내가 걷기 시작했다는 증거니까.”
(1818)
두 번째 그림은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다. 가파른 바위산 꼭대기에 한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그의 눈앞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재미있는 점은 남자의 옷차림이다. 험한 산을 올랐다기엔 어울리지 않는 격식 갖춘 정장, 짙은 초록색 프록코트를 입고 있다. 이는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대자연이라는 거대한 신비와 마주하는 엄숙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는 뜻이다. 화가는 이 뒷모습에 우리 자신을 겹쳐 보게 함으로써, 저 높은 곳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인 ‘신입’의 심정이 딱 이렇지 않을까. 앞으로 내가 걸어갈 풍경이 어떤 모습일지, 안개에 가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말이다.
하지만 그림 속 남자는 뒷모습만으로도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는 안개를 두려워하는 대신, 그 광활한 풍경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신입의 특권은 ‘모른다는 것’이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그 안개 너머에는 무엇이든 있을 수 있다. 막막함을 ‘가능성’이라는 단어로 바꿔 읽는 배짱, 그것이 바로 새내기가 가져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다.
(1876)
마지막 그림은 미국의 국민 화가 윈슬로 호머의 <순풍(Breezing Up)>이다. 호머는 평생 바다를 사랑했고, 거친 파도와 싸우는 인간의 숭고함을 즐겨 그렸던 화가다.
푸른 바다 위, 작은 돛단배 한 척이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나아간다. 배에는 앳된 소년 셋과 어른 한 명이 타고 있는데, 배가 한쪽으로 꽤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표정엔 겁이 없다. 오히려 키를 잡은 소년은 먼 수평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다른 아이들은 뱃전에 기대어 그 속도감을 즐기고 있다.
이 그림이 완성된 1876년은 미국 건국 100주년이었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소년은 곧 젊은 나라의 미래에 대한 낙관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신입’의 패기를 가장 잘 보여준다. 어른이 된다는 건 파도를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입 시절에는 모든 게 서투르지만, 그렇기에 재지 않고 일단 바람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용기가 있다. “순풍에 돛 단 듯이”라는 말처럼, 3월의 시작이 이 그림 속 아이들처럼 거침없고 시원하기를 바란다.
새로움은 낯섦의 다른 말이다. 낯설어서 서툴고, 서툴러서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불안한 공기 속에 성장의 씨앗이 숨어 있다.
밀레의 아기처럼 비틀거리며 걷고, 프리드리히의 방랑자처럼 안개를 당당히 마주하고, 호머의 소년들처럼 거친 바람을 즐기는 여러분의 3월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