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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3
미소 짓는다는 게 뭘까.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입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뭔가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는 그 찰나.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을 품은 채 살짝 웃고 있는 그 표정. 미술관 속 화가들은 말한다. 진짜 미소는 설명이 안 될 때 제일 아름답다고. 알 것 같으면서도 끝내 알 수 없는 그 미소 안에 사람의 모든 감정이 들어 있다고. 그 이야기를 담은 그림 세 점을 소개한다.
(1503~1519)
첫 번째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소이자, 500년이 지나도록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낳고 있는 미소다.
그림 속 여인은 살짝 웃고 있다. 그런데 자꾸 다시 보게 된다. 입꼬리는 분명 올라가 있는데, 왜인지 슬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시선을 조금 움직이면 미소가 사라지고, 다시 돌아보면 또 웃고 있다. 눈가와 입가의 선이 배경과 뒤섞여서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묘한 경험은 다 빈치가 일부러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스푸마토’라는 기법을 썼는데,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뜻이다. 윤곽선을 흐릿하게 처리해서 미소의 경계를 안개 속에 숨겨놓은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미소가 행복 83%, 슬픔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 17%가 섞인 표정이라고 분석했다. 이 그림은 가로 53cm, 세로 77cm 크기의 나무판에 그려졌으며, 다 빈치가 1503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519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작품으로, 지금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있다. 미소란 원래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딱 잘라 설명이 안 되는 것.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를 그 경계에 서 있는 것. 이 그림 앞에 서면,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미소가 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1665년경)
두 번째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미소라고 부르기엔 너무 조심스럽고 그냥 표정이라 하기엔 너무 깊은 무언가를 담고 있다.
그림 속 소녀는 까만 배경 속에서 고개를 살짝 돌려 우리를 바라본다. 커다란 두 눈,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 막 말을 건네려는 건지, 그냥 돌아서버리려는 건지 알 수 없다. 그 입술의 작은 벌어짐이 미소인지 아닌지조차,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녀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트로니’라는 방식으로 그려진 그림인데, 실제 누군가를 그린 게 아니라 감정과 표정 자체를 담기 위해 상상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래서 소녀가 누구인지는 끝내 알려지지 않았다. 가로39cm, 세로44.5cm 크기의 이 그림은 지금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미술관에 있으며, 베르메르가 서른세 살 무렵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저 입술은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수백 년이 지나도 그 말은 완성되지 않는다. 미소다움은 어쩌면 완성되지 않는 것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막 웃으려는 순간, 막 말을 건네려는 그 찰나. 베르메르는 그 찰나를 영원으로 만들었다.
(1624)
세 번째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프란스 할스의 <웃고 있는 기사>다.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보는 순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미소를 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남자, 웃고 있지 않다. 콧수염이 위로 치켜 올라가 있고 눈빛이 당당해서 웃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라틴어로 ‘AETA SUAE 26, AN° 1624’라고 적혀 있는데, 이 사람이 스물여섯 살이던 1624년에 그려졌다는 뜻이다.
<웃고 있는 기사>라는 제목은 1872년 런던 전시 때 관람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굳어진 별명이다. 남자의 옷소매에는 벌, 화살, 하트, 연인의 매듭 같은 문양이 가득 수놓아져 있어 약혼 기념으로 그린 그림일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표정이 바로 저 미소였던 것이다. 가로 67.3cm, 세로 83cm 크기의 이 그림은 지금 영국 런던의 월리스컬렉션에 있다.
미소다움의 또 다른 이름은 자신감이다. 저 남자의 미소에는 설명이 없다. 사과도, 변명도, 부탁도 없다. 그냥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내밀어진 얼굴 하나. 오늘 나는 누군가 앞에서 그런 미소를 지어본 적이 있었던가. 미소다움은 완성된 표정이 아니다. 다 빈치처럼 알 수 없어서 자꾸 보게 만드는 것, 베르메르처럼 끝내 말하지 않아 더 오래 기억되는 것, 할스처럼 아무 설명 없이도 충분한 것. 그 세 가지가 모두 미소다움이다. 오늘도 서툴게, 그러나 온 힘으로 미소 짓고 있는 당신에게 이 그림들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