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읽는 세계사

돈만 있고 산업은 없었던 나라의 미래

*AI GENERATED

콜럼버스, 세계의 절반을 찾아내다

1492년은 세계가 또 다른 세계를 만난 해다. 아시아를 찾아 항해에 나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탐험가가 드넓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것은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발견하겠다는 야망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망상이라도 비웃었지만 야심은 단단해져만 갔다. 인도로 가는 새 항모를 발견하겠다는 콜럼버스를 비웃던 사람들은 모두 합죽이가 되었다. 제2의 콜럼버스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엔트라다(entrada: 탐험을 의미하는 스페인어)’가 시작되었다.

도전은 멈출 줄 몰랐다. 일단의 사람들이 안데스산맥을 오른 끝에 마침내 은 광산을 발견했다. 세계 최대 규모였다. 볼리비아 포토시에 위치한 이 산에 스페인 정복자들은 ‘세로 리코’라는 애칭을 붙였다. ‘부유한 산’이라는 의미였다. 스페인에는 그야말로 금은보화가 넘쳐났다. 멕시코 아스테카 왕국을 무너뜨리고 찾은 황금과 포토시에서 채굴한 은화가 스페인에 넘실댔다. 은의 도시 포토시는 사람과 물산으로 가득했다. 어느새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한 이곳에 스페인은 은화 주조소를 건립한다. 제국에 통용되는 은화를 만드는 곳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왕이었던 카를 5세는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제국을 운영하는 데 드는 엄청난 재정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였다. 그는 가톨릭에 대한 절실한 믿음이 마침내 응답받았다고 여겼다. ‘신의 선물’인 은화는 응당 신을 위해 쓰여야 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개신교도들을 혼내주는 일이었다. 교황을 배신하고, 이교도적 믿음을 가진 존재들을 쓸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카를 5세의 인생 첫 번째 목적이었다.

스페인의 은 사용법

넘치는 은화는 시민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대부분 용병과 군인에게 흘러갔다. 끊임없는 전쟁 탓이었다. 지급할 은화가 부족해지자, 왕은 포토시 관리들을 더욱 채근한다. 더 많은 은화를 채굴하라고, 더 많은 돈을 본국에 바치라고, 은화 채굴 속도가 돈이 쓰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안톤 푸거(Anton Fugger)라는 독일인 은행가에게 은 광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도 했다.

카를 5세가 죽은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들인 펠리페 2세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은화가 주는 풍요에 취해 전쟁과 향락에 빠진 것이다. 엄청난 은화량에도 1557년부터 몇십 년 시차를 두고 세 차례나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기도 했다. 경제 위기에도 펠리페 2세의 국정 운영은 바뀌지 않았다. 가톨릭 국가의 맏형으로서 유럽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대외적으로는 전쟁을, 대내적으로는 가톨릭적 권위를 세우기 위한 과시용 예술에 돈을 쏟아부었다. 모두 ‘고비용’의 정치 행위였다.

펠리페 2세가 지은 마드리드 인근 ‘엘 에스코리알’ 왕실 수도원이 그 결과물이다. 가톨릭을 향한 신실한 믿음이 물씬 풍기는 이 공간은 웅장하지만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호화로운 장식은 배제되었으며,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화이불치(華而不侈)의 전형이었다. 신을 숭배하는 행위에 예술가도 빠질 수 없었다. 펠리페 2세를 비롯한 스페인 왕가는 예술가를 후원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엘 그레코(El Greco),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이라는 걸출한 화가들이 스페인 회화의 시대를 열었다. 그들은 몰랐다. 황금시대(Siglo de oro)를 맞은 예술은 반짝거렸지만, 경제는 금은보화의 독에 취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폭포수처럼 들어온 은화는 축복의 탈을 쓴 저주였다. 돈으로 해결한다는 배금주의가 스페인 경제를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 돈이 넘쳐날수록 노동의 가치는 폄훼되었다. 농산물이든, 공산품이든, 힘들게 생산할 필요가 있을까? 넘치는 은화로 외국서 사 오면 그만이었다. 땅을 직접 경작하고 추수해서 더 많은 생산물을 얻으려는 고민도 사라졌다. 노동의 근면함과 상인의 반짝이는 창의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다. 스페인이 걸린 덫이었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척박한 국토의 단점을 무역과 제조로 극복하고 부를 일굴 때, 스페인은 ‘은의 늪’에 빠지고 있었다.

민간 경제에도 서서히 청구서가 도착한다. 실물 경제에 기반하지 않은 막대한 화폐는 재앙에 가깝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포토시 은 광산을 발견한 뒤 약 100년에 걸쳐 스페인의 물가는 약 45배 이상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펠리페 2세 통치 막바지에도 곡물 가격이 4년 만에 45퍼센트나 올랐다는 연구도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시민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였다.

적국 영국과 네덜란드는 달랐다. 두 나라를 지탱하는 건 왕도 은화도 아니었다. 상인과 무역업자, 시장과 금융기관이었다. 1588년 영국 함선이 무적함대를 무찌른다. 1648년에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을 쟁취한다. 세계를 호령하던 스페인이 황혼에 저물고 있었다.

그 많던 스페인 은화는 어디로 갔을까?

15세기에 세계적 제국이었던 스페인이 300년 후인 18세기에는 유럽의 동네북이 되었다. 왕정도 점점 곪아갔다. 스페인 왕가 합스부르크 가문은 천한 피가 섞이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근친혼을 장려했다. 조카가 삼촌과 결혼하고, 또 그 아들이 다시 사촌과 부부가 되었다. 1665년 즉위한 국왕 카를로스 2세(Carlos Ⅱ)sms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했다. 근친혼의 영향으로 턱이 지나치게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병치레가 잦은 만큼 국정 운영은 언제나 공백 상태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여전히 은화로 가득한 배가 대서양을 건너오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빚을 갚는 데 사용되었다. 무역은 영국과 네덜란드 상선이 틀어쥐고 있었고, 스페인 시민들은 프랑스의 밀가루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가 무너지고 있었지만 카를로스 2세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생식 능력도 부족했던 탓에 갖은 애를 쓰고도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1700년 11월 결국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나이 불과 39세였다.

그는 죽기 전에 스페인 영토를 보존해줄 후계자로 루이 14세(Louis ⅩⅣ)의 손자를 지목했다. 그러자 이를 반대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를 필두로 여러 나라가 프랑스와 전쟁을 벌인다. 스페인을 차지하기 위한 대혈투, ‘스페인 계승 전쟁’이었다. 그리고 카를로스 2세의 선택은 옳아서 프랑스가 승리를 거두었다. 지금도 스페인 왕가가 프랑스계인 ‘부르봉’(스페인어로는 보르본) 왕조인 이유다.

19세기 스페인의 역사책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영광의 빛과 환희에 찬 웃음소리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하면서 경제는 더욱더 처참하게 가라앉는다. 남아메리카에서는 본격적인 독립 전쟁이 뒤를 이었다. ‘종이호랑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영국을 선두로 모든 유럽 국가들이 ‘제국’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상업·무역·산업 혁명을 토대로 만든 질서였지만, 스페인은 여전히 낡은 농업에만 의존하는 후진국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 그들은 외려 땅을 빼앗기고 말았다. 1898년 후발주자인 미국에 패배하면서 식민지인 필리핀과 괌마저 잃었다.

제국이 무너진 건 역설적으로 모두가 축복이라고 했던 은광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은광과 금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스페인은 제법 괜찮은 역사를 썼을지도 모른다. 스페인판 ‘자원의 저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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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일 1998년 12월 1일 / 발행인 정진완 / 편집인 박준태 / 담당자 우리은행 브랜드전략부 서경 과장(02-2002-4479) / 기획·디자인 경성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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