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다녀올게

낮과 밤 경주

경주의 밤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아는지.
천년의 역사를 품은 문화유산이 불빛을 입고 사람들을 맞이한 덕분인지 언제부턴가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경주의 밤이 빛나기까지의 시간을 인내해준 경주의 낮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낮과 밤의 경주, 그 사이의 기록.

글. 최선주 사진. 정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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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낮, 별 보기 좋은 밤…첨성대

첨성대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MAP

신라시대에 별을 관측했던 곳, 국보 제31호 첨성대. 낮에 첨성대를 찾으면, 한가롭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이면 많은 인파로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평일에는 비교적 사람이 적어 첨성대와 그 주변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다. 널따란 내물왕릉과 인왕동고분군 옆을 걷다 보면 왠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지고, 철마다 다양한 꽃과 식물로 옷을 갈아입는 자연식물원은 첨성대를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 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보며 첨성대의 밤을 기다렸다. 별을 바라보기에 좋은 날씨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 주변에서 별을 본다면, 느낌이 색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낮 더위는 느껴지지 않는 선선한 바람과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이 첨성대의 밤을 밝게 비췄다. 오롯이 자연과 함께하고 싶다면, 해가 진 밤에 첨성대로 향해보는 것은 어떨까. 바람과, 별, 풀벌레 소리가 낮의 피로를 덜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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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뜬다 달빛이 흐른다
내 어깨 위에 맑은 너의 눈동자에

달빛이 좋은 날에 경주의 밤거리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지나가네

설레는 마음으로 둘이서 걸어가다
손잡고 싶어지면 발걸음은 느려지고

내 마음 보였을까 두 눈이 마주치면
들켜 버린 마음 만큼 두 손을 꼭 잡는다

잊을 수 없을 거야 시간이 흐른대도
달빛 아래 두근대는 더 가까워진 우리

- 강원석 <달빛 흐르는 밤, 경주에서> 中 -

한적하거나 찬란하거나…월정교

월정교 경북 경주시 교동 MAP

월정교는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다리다. 민란이나 전쟁으로 불타 소실되었다가 오랜 고증을 통해 복원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경주 교촌한옥마을 옆에 자리하는데, 낮에는 월정교 앞에 있는 해바라기 군락지가 더 인기가 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도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들를 정도다. 해바라기가 아니라면, 낮의 월정교는 사실 한적하기 그지없다. 흐르는 남천을 사이에 두고 산책하는 사람들과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만 간간히 보일 뿐이다.

하지만 밤의 월정교는 다르다. 낮의 한적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화려한 불빛을 드러내는 모습을 담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남천 중간에 있는 징검다리에 옹기종기 모여 너도나도 월정교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없다. 낮에는 휑하기 그지없었던 도로도, 주차장도 월정교의 야경을 보기 위해 멈춰선 차로 가득하다.

신라시대 때는 월정교가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지만, 지금의 월정교는 화려한 불빛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밤의 월정교가 궁금하다면, 소등 전인 밤 10시 전에는 가기를.

낮보다 아름다운 밤…동궁과 월지

동궁과 월지 경북 경주시 원화로 102 MAP

신라 왕성의 별궁 터인 동궁과 월지는 예전엔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유물이 발견된 후 ‘월지’라고 불렸다는 게 확인되어 2011년부터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경주의 다른 곳과는 다르게 동궁과 월지는 밤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경주를 야경의 성지로 만든 것도 동궁과 월지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해가 환하게 비추던 낮부터 동궁과 월지를 천천히 둘러보았는데, 대낮에는 드문드문 사람이 보이더니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정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특히 주말에는 줄을 서야만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붐비니, 될 수 있으면 평일에 찾아보기를 바란다.

많은 이가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어둠이 짙어지자 연못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궁과 월지. 이곳의 낮보다는 밤이 더 아름답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붐비는 게 너무 싫다거나 야경에 별 흥미가 없다면, 낮에 찾아 쉬어가며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무 아래 마련된 벤치에 앉아 멍하니 동궁과 월지를 바라보는 것만큼 좋은 휴식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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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의 달빛이여 천년 세월 흘렀구나
변치 않는 네 모습에 떠난 님을 원망하네

​불꽃같던 그 마음도 타고 나면 그만인 걸
영원하잔 그 맹세는 하룻밤의 꿈이었네

저 달 보고 언약하던 그 사랑은 어디 갔나
다시 못 올 님이시여 눈물일랑 가져가오

달빛 아래 불국사는 세월 가도 그대론데
천년을 살자 하던 그리운 님 간 곳 없네

- 강원석 <천년지애>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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