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반복적인 삶에 산소를 불어 넣고 싶을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서점의 에세이 코너 앞을 서성거리곤 합니다.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그러다가 만난 책입니다. 저자의 여러 매체에 기고된 칼럼과 인터뷰 등을 엮어 놓았는데요.
본질적이되 지루하지 않은 질문과 명쾌하되 가볍지 않은 대답으로 리듬감 있게 쓰여진 글들이 담겨있습니다.
모든 글이 재미있지만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이자, 또 곧 추석을 앞두고 있는 우리가족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편인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추석 때 친척들에게 의례 듣는 질문에 대해서 김영민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글·음성. 혜화동지점 조은빈 계장 사진. 정우철
사람들은 평상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내가 누구인지, 한국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한국이 어떤 정책을 집행하는지, 즉 정체성보다는 ‘근황과 행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 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이한 사태’가 발생하면,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추석을 맞아 모여든 친척들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취직은 했는지, 결혼할 계획은 있는지,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인지, 살은 언제 뺄 것인지 등등.
“그런 질문은 집어치워 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라고 답하라.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하니”라고 하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라고 답하라.
이렇게 글 곳곳에서 김영민 교수의 명쾌한 농담과 신선한 문장들을 볼 수 있는데요. 몇 문장들은 좀 외워서 어디에선가 써먹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생각하게끔 만들어주는 질문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문득, 우리에게 일상이 반복되는 시간으로 다가올 때, 이런 거침없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게끔 만드는 책을 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가벼우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대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의미 있고 리듬감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우리가족분들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가족들과 함께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