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난 8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현재의 경제 회복이 계속된다면 3개월 뒤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준은 경기 부양을 지원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매달 1천억 달러 이상의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 왔다.
이러한 자산 매입 규모를 축소하는 이른바 ‘테이퍼링’을 연내 시작하겠다는 의미이다.
글. 박정호 명지대학교 특임교수
출처 : 연합뉴스
연준(FED)이 긴축의 방향으로 서둘러 선회하는 이유는 더 있다. 주요국의 물가압박이 커지면서 인플레이션 및 통화정책 정상화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의 주식시장은 코로나19 사태와 실물 경제의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역대 최고치를 구가하고 있다. 이에 더해 미 연준의 테이퍼링 논의 본격화에도 국채금리는 좀처럼 반등하지 않고 오히려 더 낮아지고 있다.
물론 연준의 테이퍼링의 기조가 조금 이른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최근의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을 보면 외견상으로는 양호하나 직관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델타변이가 다시 확산하면서 주요국들의 경제개방이 늦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경제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중국의 2분기 성장률 하회 등으로 글로벌 성장세 둔화(peak-out)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주요국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가 완만하게 하향 조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논란 속에서도 최근 미국은 긴축을 위한 준비를 단계적으로 진행 중인 듯하다. 하지만 또 다른 경제축인 EU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긴축을 위한 그 어떠한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ECB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0%로 유지하고,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0.50%와 0.2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향후에도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에 도달할 때까지 기준금리를 유지하거나, 심지어 더 낮은 수준으로 내릴 수도 있다는 방침을 천명하였다.
최근 물가 급등 우려에도 경기부양에 더 집중한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도입한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의 채권매입 규모를 내년 3월까지 1조8,500억 유로(약 2,500조 원)로 지속한다.
물론 EU의 경우에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로존 단일통화로 인한 구조적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유로존 회원국들은 유로화 채택과 동시에 자국의 고유 통화를 포기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할 수가 없다. 통화정책은 경기가 침체 되어 디플레이션의 우려가 있을 때는 기준금리 인하 등을 통해 경기를 회복시키며, 경기가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있을 때는 기준금리 인상 등을 통해 경기를 진정시키는 경기조절 수단이다.
그런데 유로화 도입으로 인해 통화정책의 기능이 각국 중앙은행들에서 유럽중앙은행(ECB)으로 이관되었다. 이 과정에서 ECB의 통화정책이 모든 회원국의 경기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해 왔다는 데 있다. 특히 ECB의 물가안정 정책으로 유로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면서, 강력한 수출 기반을 갖추지 못한 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수출 경쟁력이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당시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내부에서는 유로존 가입이 아니라 과거처럼 자국의 통화가 있다면, 통화가치를 절하시켜 수출 경쟁력을 회복시킬 수 있지만 유로화 사용으로 인해 그렇게 할 수 없어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남유럽 재정위기의 경험이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코로나19로 이와 유사한 상황을 우려하게 되었다. 2021년 현재 이탈리아는 막대한 재정투입 결과 올해 국가 부채 비율이 GDP 대비 160%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약 100년 만에 최고치다. 그리스 역시 GDP 대비 부채비율이 20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가장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ECB는 과거와 같이 조속한 긴축 전환을 시도하여 재정 상황이 열악한 국가들이 더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고심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지는 분위기이다. 사상 초유의 질병으로 인한 경기 조정을 요구받고 있으며,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박과 미·중 간의 무역 갈등으로 인한 경기 충격 등 그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난수표와 다름없는 요인들을 고려하여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어떠한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