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대한 생각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일의 방향이 바뀌지요

글. 김민철 카피라이터 그림. 오하이오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 있을까

‘엎질러진 물’ 같은 일은 수시로 우리를 공격한다. ‘엎질러진 물’ 같은 일이란 말 그대로 이미 벌어져 버린 일, 내 의도와는 상관 없는 일,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일들을 말한다. 그 일들은 정말로 물처럼 매순간 모양을 바꾸며 우리를 가격한다. 때론 ‘잘못 탄 지하철’이 엎질러진 물이 되기도 하고, 때론 ‘오래 열심히 준비했지만 실패한 프로젝트’가 엎질러진 물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건, 그 모든 것이 소소하게 우리의 일상에, 마음에 균열을 가한다. 애써 담대한 척 해보아도, 균열 사이로 물이 새기 시작한다. 분노가, 좌절이, 실망이 스멀스멀 우리를 장악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정말로 ‘엎질러진 물’일까? 그러니까 정말로 모든 것이 다 결정되어 버린 걸까? 바뀔 수 있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나?

엎질러진 물 앞에서 나는 종종 여행자일 때의 나를 떠올린다. 여행자로서의 나는 매 순간 다른 변수 앞에 놓인다. 애써 찾아갔지만 문 닫은 미술관,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기차,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을 가로막는 비. 여행은 매 순간 내 계획을 비웃는다. 망가트린다. 체코 프라하에 갔을 때에는 그곳에 도착한지 30분도 되지 않아 내가 벌써 3번의 사기를 당했다는 걸 깨닫고, 여행 가방을 바닥에 내팽겨치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여행이 내 마음과 너무 달라서. 모든 게 엎질러진 물 같아서. 주워담기엔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건 내 태도 뿐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모든 것이 정해진 건 아니었다. 정말로 모든 것이 정해졌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도 정해지지 않은 단 하나의 것이 있었다. 바로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나의 태도. 한참을 울다가 생각했다. 이 사기가 금전적으로는 나에게 치명적인가? 그렇지 않았다. 다 합쳐봤자 2-3만원의 손해였다. 그렇다면 이 손해가 내 여행에는 치명적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눈물이 쑥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정도 사기가 내 여행을 망치도록 두는 건 확실히 내 손해였다. 마음이 절망으로 치닫는 걸 막아야했다. 아직 내 여행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길을 잃었을 때도, 비가 내릴 때에도 나는 이때의 깨달음을 생각한다. 낯선 길 위에도 행복은 있고, 비가 내리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경험이 따로 존재하는 법이다. 절망은 이르다.

여행에서 배운 이 태도를 나는 일상 속 나에게도 적용한다. 아니, 적용하려고 애를 쓴다. 엉망이 되어버린 일 앞에서, 내 뜻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맺은 프로젝트 앞에서,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도무지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회의 속에서. 쉬운 건 절망이고, 안락한 건 포기다. 그냥 엎질러진 물로 생각해버리는 것은 쉽다. 남 탓을 하거나, 실패로 결론 내려버리는 것. 하지만 그런 태도가 거듭되다보면 어느새 내 삶이 실패로 얼룩질 것 같아 나는 다급해 진다. 내가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에 따라 일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더라도, 내 인생의 모양은 달라질 것이다.

엎질러진 물을 뒤집어서 생각해보기. 태도를 살짝 바꾸었을 뿐인데 때론 그것만으로 그 순간 다른 국면이 펼쳐지는 마법을 맛본다. 엎질러진 물 위로 햇살이 살짝 비친다. 그 순간에 나는 인생의 비밀 한 조각을 알아버린 것만 같다. 기억하라. 물은 엎질러졌을지 모르지만, 아직 나의 태도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최후의 결정은 아직 내 몫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김민철

남자 이름이지만 엄연히 여자. 광고회사 TBW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자주 책을 읽고, 때때로 글을 쓰고, 매번 떠나고 싶어 한다.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하루의 취향>, <치즈 :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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